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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21: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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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볍씨를 빻는 것보다 개를 죽이는 것에 더 큰 고통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죠. 볍씨보다는 개가 인간과 공유하는 유전자가 훨씬 더 많을 테니까요. 나는 나와 유사한 유전자의 더 많은 번성을 바란다는 이기적 유전자 같은 이론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우리와 훨씬 더 닮은 개라는 동물에게 더 많은 정을 갖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인 감정에만 기대어 도덕적 무게감에 차등을 두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나 싶습니다. 도덕이라는 게 여러 사람들의 주관적 가치관들을 공존 가능하도록 정리해놓은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저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도덕의 정체가 단지 그뿐이라면, 도덕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불변하는 도덕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 게 되겠죠.(+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흑인을 가축처럼 취급하던 백인들의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흑인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무게감이 감정적으로 덜했을 것이므로 당시 기준에선 도덕적인 게 되니까요.
그게 옳지 않음을 지금은 알고 있고, 흑인과 백인의 인권이 다르지 않음을 지금은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개를 방망이로 때려 죽이는 것과 볍씨를 방망이로 찧어 가루를 내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미래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또한 이는 윤리 감정을 팽창시키는 것은 맞지만 그리 극단적인 팽창도 아니고 무의미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기존에 먹어왔던 무언가에 대해서 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다시 회의하게 될 때는, 당연히 우리가 먹어왔던 다른 것들에 대한 탐구가 수반될 수 있고, 수반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위는 우리가 기존에 먹던 게 아니니 좀 지나친 논의가 될 테지만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도덕 문제를 야기하는 특정한 이슈가 처음 제시될 때에는 감정에 호소하는 게 효과적이고 그럴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사회를 지배하는 윤리적 명제가 되고자 한다면 개개인의 주관들을 취합하는 것 이상의 합리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착취당하는 극단적인 무슬림 국가에서조차도, 그 국가 구성원들의 주관적 가치관들을 취합하고 최대한 공존하게끔 만든 도덕적 결론이 코란의 경구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발언권이 더 강하고 숫자가 더 많아서 그들의 주관적 가치관들이 다른 이들의 것들보다 더 많이 반영될 수 있을 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진실을 직시하라는 말씀에 대해서는많이 공감합니다. 식물 동물 구별없이 먹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이러한 고민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인간이 세계를, 또는 생물을, 또는 인간을 도구화하는 이성적인 폭력의 가장 원초적인 뿌리가 먹는 것에서부터 기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설득력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만, 인간이 만약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지금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도 인간은 훨씬 덜 탐욕적이고 덜 야만적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fish님의 문장을 빌려와 쓰자면, 저는 인간은 무언가를 먹는 것에 익숙한 동물이기 때문에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진실을 회피하는 데 능숙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