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좋아했던 형이 있었는데, 이 버러지가 조강지처를 두고 바람을 피웠음. “내 아들은 수재 소리 듣던 앤데, 고졸인 너를 만나서 운도 못 틔워보고 산다”고 타박하는 시댁의 구박을 참고 견디며 살던 조강지처를 두고… 그러다가 버러지가 암에 걸렸음. 그런데, 암투병 중에 병실에 상간녀가 찾아와서 그짓을 함. 내가 참 좋아했던 형인데, 병문안도 안 가고 장례식에도 안 갔음.
히딩크가 ‘오대빵 감독’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게 축협의 정치질 때문이었음. 히딩크가 당최 축협 말을 들어쳐먹질 않았으니까… 쫓아내긴 해야겠는데 계약기간이 있어서 함부로 자르지도 못하고 애가 타니까 사생활까지 건드려가며 여론을 몰아갔었음. 휴가기간에 여자친구랑 네덜란드 갔다왔다고 깠었음. 결국은 히딩크가 해냈고, 국민적 영웅이 돼버리니까 축협에서도 더이상 건드릴 수가 없게 됐음. 그러나, 축협에게는 마지막 한방이 있었음. 재계약을 안 하는 거임. 히딩크는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한국에 남길 원한다는 시그널을 계속 줬음. 그러나 축협은 모른체 하면서 재계약을 안 하는 걸로 복수함.
합정역에 있는 메세나폴리스(mecenat polis) 이름이랑 완전히 따로 노는 아파트. 임대세대랑 분양세대 출입구를 따로 만들어 놓은데다 1~3층이 상가라서 동선이 상당히 복잡함. 입주민이 아닌 이상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길찾기 힘듦.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동넨 아주 작은 재해가 대형 재난으로 확대될 위험이 상당히 높음.
비석도 모양이 다름. 사병, 부사관은 이런 단순한 모양이고, 장교들은 더 크고 디자인이 가미됨 형태임. 장군묘역은 당연히 비석도 왕크고, 왕멋있음. 갈 때마다 내가 느끼던 것도 똑같음. 우리 아버지는 월남전에도 두번이나 갔다오셨고 평생 군인으로 살다 돌아가셨는데, 죽고나니 소위, 중위들보다 초라한 비석 하나 세워줬음.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건, 우리 아버지 묘역 아래쪽으로 대부분 장교묘역임. 위에서 아래로 굽어보는 맛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