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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4 18: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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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던 곳에 있던 식당, 까페, 꽃집.
화려하진 않았지만 친근함이 좋았고,
정갈하진 않았지만 구수함이 좋았다.
어느날 동네가 뜨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내가 자주 가던 식당, 까페, 꽃집의 친근함과 구수함은
그들의 무기가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모이고 장사가 잘 되니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려달라 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인
친근함과 구수함에 건물주의 기여는 먼지 한톨 만큼 없으면서도
건물주는 장사가 잘 되니 보증금과 임대료를 올리겠다 했다.
보증금과 임대료를 올려주지 못한 상인들은
그대로 가게에서 쫓겨난 그날 이후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싼 임대료를 좇아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갔는지,
아예 장사를 접고 다른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저 친근하고 구수하게 반겨주던 식당, 까페, 꽃집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화려하고 세련된 가게가 낯설어 발길을 돌릴 뿐이다.
내가 자주 가던 식당,까페, 꽃집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전국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세련된 가게를 바라보는 내 표정은 심드렁하다.
친근함과 구수함이 사라진 동네엔 더이상 사람들이 오질 않는다.
간혹 지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화려하고 새련된 가게를
간혹 지나는 사람들은 심드렁하게 지나친다.
사람이 없는 곳에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화려하고 세련된 가게가 떠나갔다.
건물주는 비어 있는 건물에
“가게 임대. 보증금, 권리금 없음”이란 현수막을 크게 걸었다.
친근함과 구수함을 몰아내고 그자리를 차지했던
화려함과 세련됨은, 을씨년스러운 욕심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