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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3 00: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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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님,
서운하다고 섭섭하다고 차별이라고 이야기해봐야 별로 나아지는 건 없을 거예요. 본인들이 뭘 하고 있는지도 나한테 어떻게 해왔는지도 인지 못 하고 계실 겁니다. 그 분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먹여가며 키워 놨더니, 굶기며 키운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감정 나부랭이 달라고 떼쓰는 걸로 보여서 되려 황당할 거예요.
저는 평생 동안 황당해하는 부모님의 표정과 면대하면서 서럽다고 억울하다고 성토해 왔고 나아지는 것은 전혀 없었어요. 돌아오는 말은 어릴 때부터 쭉 들어온 이기적인 계집애라는 소리뿐이었고요. 100을 다 오빠에게 빼앗기고 1을 겨우 받을 때마다, 내 지갑에 손을 대는 오빠를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오빠의 세심한 것까지 챙기고 돕는 것을 잊어버릴 때마다 들어왔던 이기적이라는 소리요.
저는요. 부모의 공평한 조건 없는 사랑, 고귀한 사랑,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제가 모든 것을 잃고 혼자가 되면 세상 누구보다 가족이 저를 가장 먼저 버릴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든지 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성인이 된 지 오래 된 지금도 제가 뭔가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가족이 저를 버릴까봐 두려워요. 사람들이 모두, 제가 무언가를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얻을 것이 있으니까 저와 관계를 맺는 것 같아서 늘 무섭고 불안정해요. 가족이 제게 그랬으니까요. 죄다 퍼 주고도 늘 사고만 치는 오빠 말고 저에게 웃어주는 날들은 제가 뭔갈 잘 해낸 날들뿐이었거든요.
내가 좀 더 성숙해지면 이런 관계가 바뀔 거라고, 성인이 되어 이야기를 깊이 나누면 해소될 거라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어요. 하지만 가족은 변함없이 제게 남보다도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존재이고 상사처럼 저 자신의 능력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독립한 지 꽤 됐는데도 그래요. 그건 아마 이 관계에서의 책임이, 우리가 아닌 부모에게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미 곪고 있는 관계예요. 저는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할 거지만, 뭔가 나아지거나 오빠에게 갔던 것과 비슷한 애정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갖기에는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실패로 끝났네요.
어떤 관계는 기대를 버리는 것이, 눈을 돌리는 것이 나을 때도 있고, 그게 비단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가족일 수도 있어요. 그렇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