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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1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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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움직임'이라는 단어를 너무 제한적으로 해석하신 듯 하네요.
부패라는 과정은 분자의 움직임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는지요?
—> 그러면 그 분자의 움직임이 시간이 되는거겠죠?? 이 말을 왜 자꾸하냐하면 "사물이 변하므로(그리고 움직이므로)(인간이라는 지구상의 특정한 종의 생활 상의 편의를 위해)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정도가 바른 표현이 되는 것이죠. 이라고 본인이 앞서 말해놨기 때문에 저는 거기에 맞춰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2. 인위성과 가상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시간은 인위적으로 만든 가상의 개념입니다. 실상은 인간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죠. 과거의 사과를 기억하고 있으니 현재의 사과와 비교를 하게 되고, 그 차이를 시간의 흐름이 만든 것이다 라고 정하는 것입니다.
3초 전 과거의 자동차를 기억하고 있으니 3초가 흐른 지금의 자동차 위치를 3초 전의 위치와 연관지어서 '움직였다'라고 정의하는 것이죠. 즉, 시간은 기억의 산물입니다.
—> 물리학의 부분인 분자를 이야기 하면서 철학의 기억을 같이 이야기하는건 모순이라고 느껴지네요. 분자의 움직임으로 사과가 부패하게 되고 이는 곧 시간이 되는 것인데 여기서 어떻게 기억을 적용해야될지 저는 감이 안잡히네요.
시간이 존재하시는걸 부정하시는건가요? 그럼 공간이 지금 팽창하시는것도 부정하시는거죠?
3. 도박사의 오류 예시의 본질은 '1/2이라는 동전의 확률'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생각하는 그 오류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따져보라는 의미에서였어요. 동전이 나올 확률이 1/4이든 동전이 아닌 주사위든 이 예시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거죠. 내가 이전에 다섯번 동전을 던져 모두 앞면이 나왔다는 '기억'이 있음으로 해서 현재의 객관적 실체나 사실(동전을 던져서 뒷면이 나올 확률은 1/2이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오도, 왜곡되고 있음이 이 오류의 핵심입니다. 즉 기억이 현재의 객관적 실체를 왜곡하고 있는 거죠. 시간에 대한 우리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은 과거에 대한 기억일 뿐인데 현재의 실체에 뭔가 그 흔적이 남아 있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양 착각을 하는 것이죠.
존재하는 건 현재입니다. 과거에 동전을 던져 몇번 앞면이 나왔든 지금 이 동전을 던져 뒷면이 나올 확률은 1/2입니다.
"시간과 기억, 개념에서 자유로워지면 좀더 정확하게 객관적 실체를 보고 접근할 수 있다. "
이것이 본문 글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요지입니다.
—>제가 왜 과거와 현재의 연관성을 이야기 하지 않았냐면 스틸하트님이 제게 다신 댓글 중에 과거 (이미 실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학적으로는요)라고 스스로 제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본인께서 과거를 아예 연관선상에 놓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안했습니다. 스틸하트님 말대로 움직임이라면 기억이랑 상관이 없죠. 내가 기억을 하던말던 그 움직임이 있었던 거니까요. 뉴욕에서 지금 사람들이 걷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처음 있었던 장소를 기억 못한다고 해서 다음 장소로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되는건 아니잖아요? 내가 그 사람들의 움직임을 기억 못한다고 해도 그 움직임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거죠. 따지고 보면 현재라는 것은 없죠. 현재와 과거 미래가 동시에 공존할 뿐입니다. 스틸하트님 말대로 기억에까지 들어가면 뇌에서 현 상황을 인식하는것 까지 이야기 하셔야죠. 뇌를 움직이는것도 원자의 움직임이고 빛에 반사되어 사물을 인식하고 액션을 취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리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인식하는 시간은 현재인가요 과거인가요?
좀더 직관적이고 일상적인 비유를 해볼까요? 과거의 형, 누나, 동생이 현재의 시점에도 실재합니까?
지금 과거의 형, 누나, 동생 이라고 불릴 수 있는 뭔가가 남아 있다면 그건 오로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거 아닐까요?
지금 이 시점 살아 움직이고 있는 동생은 우리가 기억하고 알고 있는 그 동생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뭔가와 실제의 것은 닮았을런지는 몰라도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시간이 기억이고 기억이 곧 시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우리가 멋대로 제단하고 판단하고 각색하여 기억 속에 저장해 둔 동생은 우리가 현재의 동생을 '객관적으로' 실체적으로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과거에 사고치고 말 안 듣던 동생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현재의 동생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나 관점, 평가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불가의 선승들이, '매 순간 비워라'라든가 '공' 즉 비어 있음 추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불가든 어디든 모든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득도'라는 게 별 게 아닌 것이 맑게 비친 거울처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인식하는 것이거든요.
'있는 그대로' 이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과거의 시간, 기억, 흔적은 실재하지도 않는 주제에 우리의 관념을 지배하고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있는 그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님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참'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과학적 논증에서 철학적 논의에 이르기까지, 시간이라는 게 실상은 우리의 기억이 만들어 낸 허상, 아니 우리의 기억, 마음 그 자체라는 건 거의 직관에 가깝게 입증되고 있지 않나 생각되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 설명해 드려야 할 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인위적인 시간(철학)과 실제인 시간(과학)을 혼동하고 계신거라고 제가 말씀드린겁니다. 어떤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먼저 정의하시고 논의를 진행하시는것이 좋겠습니다. 과학에서의 시간인지 철학에서의 시간인지 전혀 감이 안잡히네요. 이대로 이제 불교 이야기까지 나오면 물리학에서 양자역학도 이야기해야되고 블랙홀 이야기를 하면서 정보로써 이루어져 있어 실존하는 것 자체가 없다는 등등 불교와 연관지어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길어질 것 같네요.
철학에서의 시간을 이야기하시고 싶으시다면 인간의 시간의 대한 인식과 실존에 대한것을 이야기하시고 과학에서의 철학을 이야기 하고 싶으시다면 시간은 상대적이며 관찰자에 따라 다르고 등등을 이야기 하셔야겠죠. 이 두가지를 섞어버리면 발전적인 논의가 진행이 안되죠.
일단 움직임, 시간, 그리고 실존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제시하신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시면 더욱 매끄러운 논의가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누기를 고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