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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4 2015-06-23 17:46:1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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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나 다른 매체들은 어떻게든 '실제처럼 느끼게' 한다는게 다르죠
특수효과지만 선혈이 낭자하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등등

저같이 뇌속에서 '저건 그냥 효과야'하고 인지해버려서 공포영화같은건 시시해서 못보는 사람도 있긴하죠

만화? 웹툰만 봐도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 하는게 많이 나옵니다
얼마전에 다시 정주행한 웹툰에선 못된 양아버지가 여주?의 칼을 뺏어갔다가 저주로 인해 타죽은게 나옵니다
일행중 한명이 섬뜩한 주장을 하기도 하죠..

다른 웹툰은 더 심한게 많죠......정주행하고 있는 다른 웹툰에선 터트리고 자르고 때려죽이고..등등 주인공은 고등학생... 그 주인공 눈앞에서 죽이기까지 하고.. 그 고등학생 눈앞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하죠

살인은 성폭행과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요? 둘다 흉악하고 비교할수 없다지만 성폭행은 트라우마를 이겨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만 죽으면 그럴 가능성은 0.이죠 (뭐... 별사탕 7개를 모은다던가 하면 달라질수도...)

또 아직 스토리가 진행중이고 실제 청소년을 강간했다라고 단정할수도 없는데 너무 섯부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중에 정부?에서 문제없다 하고.. 이래저래해서 레진이나 작가측에서 고소나 역고소 할수도 있는 부분들이라 사뭇 흥미롭게 볼려 합니다
2283 2015-06-23 17:19:12 91
"내가 병원 비공개결정했다” 문형표 “국내 병원문화가 문제" [새창]
2015/06/23 16:03:40
하지만 사람들은
'사스'때의 기억을 못하죠

왜? 너무 잘해서 피해가 없어 실질적으로 느끼지 못해서....
2282 2015-06-23 17:16:43 0
인도네시아가 우리보다 선진국??? [새창]
2015/06/23 17:02:24
흠...
이런거 보면

어째선지 이번 오바마의 이민자법이라던가 몇년전 오바마연설할때 방해했다던 한인불체자가 생각나네요
게시글의 논조로 보면
미쿡은 후진국이 되는건가...?
2281 2015-06-23 16:39:00 11
일본에서 스시집 갔을때 유용한 생활일본어 강좌에양♡ [새창]
2015/06/17 12:11:14
어째선지...

게시글은 아재가 어느정도 여유있게 일본여행 하면서 좀 격식있는 스시야 가는거 같고

첫댓은 베낭여행이나 뭘좀 사거나 구경하러 갔을때 배고픈데 초밥이라도 먹어볼까? 하고 대중적인 스시야? 가는거 같네요

청년과 아재의 차이랄까...

서로의 입장이 다른거로 그럴수 있는데 중간에 몇 댓글은 좀 날이 섰네요

게시글껄 회전초밥이나 체인점 같은데서 하거나 첫댓글을 스시야에서 하면 개그될텐데..ㅋ

상상했네요..
회전초밥집에 딱 앉아서.. '좃또! 오마카세데구다사이! 시로모노 시로모노데!!'

주인장 왠지 뒷목을 잡으며 '으.. 프레샤....시로모노와 렌뽀~노 닝교다.. 아카이모노와 산바이다!..
........

재미없네요 죄송....
2280 2015-06-23 16:23:21 2
19후방)아니 레진코믹스 미친거 아니에요? [새창]
2015/06/23 03:20:27
나중에 어떻게 될지...

성지가 될지.. 궁예질이 될지...

작성자가 본삭금 걸면 참 재미지겠다
2279 2015-06-23 16:20:31 0
19후방)아니 레진코믹스 미친거 아니에요? [새창]
2015/06/23 03:20:27
참...논쟁이 흥미진진하니...

하지만 좀 고려해봐야 할건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저 청소년 남자아이의 일방적인 '진술(또는 망상)'이라는 것이죠

보이는것처럼 옷이 찢겨지고 술에 취해 이상행동을 하는 여성이 보여지고

'당했다'는 듯이 말하고 서네 어쩌네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이것이 '실질적인 강간'을 표현하는것이냐
아니면

오덕녀가 흥분한건 쇼타콤이라 그것에 반응했을뿐
옷이 찢겼거나 강간을 당했다라는건 '자작극'일수도 있다는 거죠

아직 더 구체적인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또는 구체적으로 '강간'을 했다라는게 나오지 않는 이상

성급한 판단은 미뤄야 할것 같은데요
2278 2015-06-22 22:00: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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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arez/

하아.. 삼국사와 삼국사기가 다른 책이다..라는게 아니라

현재 삼국사로 써진걸 삼국사기로 읽는데 원래는 삼국사가 원래 제목이지 않느냐,,라는 의문에서 시작한겁니다
같은 책이에요!

태종 세종 세조도 다 '김부식의 삼국사'라고 했다고요 지금도 유물을 보면 표지에 '삼국사'라고 써져있고요
제가 중딩땐가 왜 삼국사로 써진걸 삼국사기라고 읽어야 되는가 했던 기억도 있었다고요

그리고 김부식이 그랬다..라는건 동선문의 '진삼국사기표' 외엔 어디에 있는데요?
2277 2015-06-22 21:56: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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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타가 좀 있네요...

다시금 말하는데

삼국사로 써진걸 삼국사기라 읽어야 되는 결정적인 근거가 무엇인가요?
서거정의 동선문? 양성지의 상서? 그외에는요? 어디 인터넷에서 고급진 자료라도 보여주세요

그렇다면 동선문 이전의 왕들이 직접 '삼국사'라 말한건 뭐가 되는데요?
님들은 그걸 무마하기 위해 '혼용론'을 들먹이는 거 아닌가요?
태종이나 세종이 뭐하려고 삼국사기를 삼국사라고 했을까요? 삼국사라고 제목이 되있으니 삼국사라고 한거겠죠

아니면 님들이 이 주장에 반박을 할려면 태종 이전에 '김부식의 삼국사기'..라는 증거를 보여줘야죠
태종도 세종도 하물며 양선지가 상소를 올린 세조도 '삼국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양선지와 동선문이 나오니 '삼국사기'가 맞다? 그게 맞다면 어째서 그후로도 계속 '삼국사'일까요? 혼용이었다면서요
근대에 변화를 보인건 신채호선생에서나 보이는데요 신채호선생도 처음엔 삼국사라 했었네요?

이게 어디 헛소리고 무슨 제가 날조한건가요? 어디가요? 인터넷에서 긁어온 별 시덥잖은 자료인가요?
2276 2015-06-22 21:43: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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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arez/
외려 동문선에 집착해서 '진삼국사기표' 이거 하나로 삼국사기가 맞다고 하는게 더 이상할 따름인데요

여한심가문초요? 거기 삼국사라면서요? 그러면 더이상 뭐 할말이 있나요? 전 세조-성종 이외엔 (아마) 쭉~ 삼국사라 했을거다 라고 했는데요 (정약용이라든지) 그후 1910년까지 말이죠

그리고 수찬과 편찬은 그 뜻을 구분하지 못해 실수한겁니다 미리 나온 '동국통감 편찬'때문에 그랬을수도 있고 링크는 귀찮아서 안했습니다
이전글부터 실록에 나온거라 했으니까요 -제가 달아놓은(그렇다면 -태종 3권, 2년(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6월 8일(경신) 1번째기사-하윤·권근·이첨에게 《삼국사》를 수찬하게 하다 이건 동문선보다 더 이른 시기인데요?)

그리고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삼국사가 다르다라고 한적 없는데요
애초부터 삼국사라 적어놓고 삼국사기라 읽는데 의문을 가졌다고 했었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저더러 유사역사 퇴출 어그로 어쩌고 하는데
정작 여러분들이 내놓은 근거는 어떻습니까?
절대적인가요? 서거정의 동문선 외에 또 무었이 있나요?
양성지의 상서문? 그 외에는요?

서거정은 동문선 외에는 '김부식의 삼국사'라 했던데요?

아니 솔직히 말해서 태종은 삼국사라하고 성종은 삼국사기라 하고 중종은 삼국사, 연산군은 삼국사기..이렇게라도 했으면
아 혼용이네 ... 그럴 생각이라도 들지
내놓는 근거라는게 동선문....

참 유사역사라는 프레임이 좋긴 좋은가 봐요? 누군 몇시간 이곳저곳 못알아먹는 한자 고문보면서 자료찾는데
음모론이네 억측이네 어그로네 유사역사네~하고 동선문하나 보여주면서 이거 외엔 증거아님! 이래버리면 참 토론할 맛 나겠어요~

참.. 양성지가 누군지 몰라 상서올렸으니 지방관이렸거니 했던걸 참 찰지게도 걸고 넘어지고
편찬인지 수찬인지 실수도 걸~하네요
참.. 원본은 안보고 오역된거 갖고 와서 이렇다네~ 하는건 안중에도 없고....

참 10개의 다른 근거를 대도 님들 입맛에 맞는 1개만 맞다고 하니 할말이 없네요
어이쿠.. 유사역사자들하고 토론하는 님들의 고충이 이해가 되네요
극과 극은 상통이랬던가?

님들이야 말로 삼국사와 삼국사기가 혼용이었다라는 증거를 더 많이 갖고와서 이런 분포로 있으니 혼용이었다 그러니 삼국사보다 삼국사기가 맞다
라고 하던가 해야지

동문선하고 양성지의 상소문 외에 더 뭐가 있는데요?
동문선을 만든 서거정이 다른 글에선 뭐라 했는데요?

누가 녹음기인지 모르겠네요
아몰랑~ 유사역사는 퇴출~

한량011
동선문에선 분명 '진삼국사기표'라고 원본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서거정은 다른 곳에선 '김부식의 삼국사'라 했씁니다 그러면 동문선에서는 왜 그렇게 '삼국사기'라 했는지 의문을 가져야 하는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왕이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삼국사'와 서거정, 양선지등의 '삼국사기'는 같은 책일지라도 다른 의미로 표현되었다... 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게 서거정이나 양선지등은 김부식의 역사관에 대해 어째저째해서 그렇게 했다..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이게 나중에 신채호선생도 삼국사라 했다가 삼국사기로 바꾼것도 역사의식이랄지 어떤 변화로 생긴거 아닐까?...라고요

이게 무슨 유사역사랍니까.. 하하하....
여기 어디에 환빠가 있어요? 아니면 일제의 왜곡이 들어가요??

인터넷에서 별 시덥잖은 자료나 긁어오는 주제에? 라....

님이 주장하는건 동선문과 양성지의 상서문 외에 무엇이 있는데요?
님이야 말로 왕들이 직접 '삼국기'라고 하는 말을 무시하는데요 어느 왕이 '삼국사기'라고 했나요?
수찬인지 편찬인지 하라고 말한 책이 '삼국사기'인가요 '삼국사' 인가요?

실록과 원본 확인해보면서 글 올리는데 시덥지 않는? 주제에? 오역본 보고 이게 근거네 했던 자신의 실수는 안중에도 없군요
2275 2015-06-22 20:55: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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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감///

-우리나라 '국가'는 '애국가' 입니다
우라나라의 국가는 국가입니까?

-(구)삼국사와 구분짓기위해 삼국사기라고 하는게 아니라 임금이 친히 삼국사라 하는데 그걸 삼국사기라 하니 그러면 다른거겠네 해서 반어적으로 비꼰 말입니다

-------
누구는 덜덜거리고 느려터진 컴퓨터로 이곳저곳 찾아서 글 올리는데
'너님의 주장은 어그로 유사역사' 이렇게 단정지어버리 참 쉽겠어요
만물일베설처럼 무슨 만물유사역사설인가요?

겨우 혼용이라고 내놓은 근거가 양성지의 상서문과 서거정의 동선문 뿐인데 또한 두 사람은 같은 일했을 사람들이고...
하핳.. 뭐 서거정이 동선문에선 '삼국사기'라 했지만 다른데선 '삼국사'라 했으니 혼용이다! 할수도 있겠네요

어째 파보면 파볼수록 '삼국사기'보다 '삼국사'가 더 많이 나오는데....이런데 의문을 갖는게 유사역사라...
무슨 짜장면과 자장면입니까? 국립어학원에서 옛사전에서 자장면이라 했으니 자장면이다! 이게 맞는거요?

참 재밌네요 재밌어요
2274 2015-06-22 20:34:1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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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슬쩍/

실록에서 '김부식의 삼국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임금이 직접 언급한 말이죠
그리고 정조시대 정약용 또한 '삼국사'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고신문들에서 데이터베이스로 찾을수 있는것중 오래된건 1890년대 삼국사라 했다는 것이죠

한량011님이 말하는 혼용은 세조-성종때 양성지의 상서문에서만 나옵니다(양성지는 세종-성종)
그러면 세조때 양성지 외엔 뭐라 했냐 보면 (실록상) 삼국사입니다
말을 정리하면 임금이 동국통감을 편찬하라할떄 참조한 서적으로 '삼국사'라 합니다 그런데 양성지만 상소에서 삼국사기라 하죠

학자들이 주장하지 않으면 잘못된거다라...뭐 4대강 개발할때 정부와 뭣같은 학자들이 '4대강은 좋은거'라 했으니 반대하면 잘못된 거였네요 하하

그리고 1478년 동문선에서 그랬으니까라..
그렇다면 -태종 3권, 2년(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6월 8일(경신) 1번째기사-하윤·권근·이첨에게 《삼국사》를 수찬하게 하다
이건 동문선보다 더 이른 시기인데요?
그리고 1478이면 성종9년때네요 양성지와 겹치는 시기인데요

무슨근거로 유사역사니 어쩌니 하는지 모르겠지만...

실록을 근거로 임금이 직접 '삼국사'를 편찬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1402년
그러다 양성지라는 인물이 삼국사기라 합니다 동문선은 그와 유사한 시기에 만들어진거고요 (양성지 상소-성종13년 1482, 동문선-성종9년 1478)

그렇다면 동문선이 뭐냐.. 찾아보니 만든이가 서거정..이더군요
이름이 익숙해서 보니 동국통감 편찬에 관련된 사람이더군요
-세조 14권, 4년(1458 무인 / 명 천순(天順) 2년) 9월 12일(병신) 4번째기사-문신에게 명하여 《동국통감》을 편찬하게 하다- 여기 실록 원본엔 '삼국'이라고만 나와있는데
그후
-세조 31권, 9년(1463 계미 / 명 천순(天順) 7년) 9월 5일(신유) 2번째기사-최항·양성지 등에게 동국통감의 편찬을 명하다·명황계감을 수교하게 하다
-又命恒、誠之、處寬、坡及同副承旨金壽寧曰: “本國史錯亂無統, 予欲以《東國史略》、《三國史》、《高麗史》等書參酌損益, 勒成一書, 名之曰《東國通鑑》, 昭示方來, 以便考閱, 卿等其勉之. 확연히 삼국사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양성지'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네 실록에서 유일하게 '삼국사기'라 한 인물이죠
짜맞추면 세조께서 동국통감을 편찬하라고 서거정 양성지에게 명을 내리는데 세조는 '삼국사' 그런데 당시 서거정(동문선?)이나 양성지는 삼국사기라 합니다(성종떄까지...)

그렇다면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주장의 근거인 '동문선'이 어떤거고 어느 시기에 누가 만들었는지...
어쨰선지 임금은 '삼국사'라 했는데 양성지는 '삼국사기'라 했을까?

실록엔 이 시기(양성지)에만 '삼국사기'가 등장하고 그 후엔 '삼국사'입니다 동문선도 이기시에 만들어지고 말이죠
이게 혼용입니까?
1700년대 정조떄도 삼국사(정약용)고 근대1890년대에서 '삼국사'라 했는데요?

서거정이란 인물을 더 봐보니 '讀三國史'란 시구도 지었네요 과연 삼국사절요나 삼국사략..은 어째서 삼국사기절요나 삼국사기략..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서거정의 동문선에 나온 '진삼국사기표'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서거정이 삼국사절요에서 삼국사(기)를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내용을 찾을길이 없어 헤메는데 어느 블로그에 그나마 번역본이라 나온것에서
'김부식이 삼국지를 빌어 삼국사를 지었다'라고 나왔있긴 한데.. 능력이 되시는 분께서 확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한 서거정의 필원잡기(성종18년간행)란 책에서 또한 '김부식의 삼국사'라는 말이 나옵니다-(한국고전종합DB)

그러면 서거정이 동문선에 쓴 '진삼국사기표'는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까요 뭐..이게 혼용의 증거일까요? 아니면 '삼국사'와 다른 의미일까요

뭐 긴시간동안 인터넷질 하느라 골이 아파서 이만 하겟씁니다
님들처럼 대단하신분들이 저더러 유사역사니 하니 힘없는 제가 어찌하겟습니까.. 하하

하지만 생각해볼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신숙주나 양성지, 서거정들과 역사인식의 차이점이라는 겁니다 역사인식이랄까 서술한 책의 내용의 다른점..
그렇다면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부족한게 뭘까요? 그걸 보고 후대의 사람들이 다른 역사서를 만들때 채워 넣은게 뭘까요?
2273 2015-06-22 15:59:04 0
[삼국사기]가 맞는 표현입니다. [삼국사]는 혼용되던 표현이지요. [새창]
2015/06/22 01:38:50
푸쉬킨/

줄임말이라.. 자치통감을 통감이라 하듯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그 시절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참고했다던 (구)삼국사도 있었을겁니다
물론 1~200년만에 (구)삼국사가 사라져서 구분할 필요가 없다면 할말은 없습니다
줄임말이라면 삼국사절요도 삼국사라 불렀을까요?
2272 2015-06-22 15:56:11 0
[삼국사기]가 맞는 표현입니다. [삼국사]는 혼용되던 표현이지요. [새창]
2015/06/22 01:38:50
한량011님

중종이라.. 국역으로 옮긴거 말고 '원본' 이미지라도 한번 보셨으면...
중종은 정덕본이 찍혀진때라 더 중요할지도 모르지만..

그럼 실록을 다시 살펴보죠
인터넷에 나온것만으로 (조선왕조실록) 보면 태종이 최초로 보입니다
태종은 4차례 언급한거로 나오는데 보면 태종이 직접 '삼국사'라고 한걸로 보입니다
세종또한 자신은 '삼국사'라고 하지요
것또한 김부식의 삼국사라고 친절하게 설명하시죠
그리고 세조때 3회는 양성지라는 사람이 쓴 상소문에 의해 3번 나옵니다
성종떄도 마찬가지 양성지의 상소문입니다

임금이 직접 말한것과 지방관리가 말한것중 어느것이 중하냐..뭐 권위에 호소하는것일수도 있겠지만...

뭐 이걸 혼용이라고 하면 혼용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과연 어떨까 싶네요
조선학자들마다 다를수도 있을수 있다고 하지만 정약용선생은 '삼국사'라 했네요

그러면 한량011님이 제가 제시했던 초기조건의 오류의 반박이라고 한것이 어떻습니까?
임금이 여러번 직접 '삼국사'라 언급한것과 한명의 지방관리가 상소문에 '삼국사기'라 한것이 과연 널리 퍼진 혼용인가 하는것이죠

신채호선생이 줄곧 삼국사라고 했다가 어느 시기를 계기로 삼국사기로 바꾼걸(혼용의 사례가 있었을지?) 음모론이라 하면
과연 임금의 말과 한명의 지방관리의 표현이 널리 혼용의 증거라니...대단한 분석이시네요

다시 분명히 말씀드리면 애초부터 김부식의 진삼국사기표가 확실하고 '삼국사기'가 맞다면 태종 세종이 뭐하러 삼국사라고 표현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전글에 글이 길어질까 굳이 넣지도 않았는데 참 대단한 분석을 하시네요 못해도 국역된것만 아니라 이미지나 원본이라도 한번 보세요

그리고 근대에서도 그런?? 혼용이 인정되었다면 혼용의 사례가 있을겁니다 신채호선생도 같은 시기에 삼국사와 삼국사기를 같이 표기한게 있었을텐데.. 어째선지 삼국사로 쓴 시기와 삼국사기로 쓴 시기밖에 없네요 이게 혼용입니까? 아니면 책제목에 대한 인식의 변화입니까?
2271 2015-06-21 16:21:01 1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 [새창]
2015/06/20 22:18:38
한량011/

경솔하다라..

일제 시대에 변경이 되었지만 일본놈들과는 연관성이 없다는걸 알았다고 분명 밝혔습니다
그게 바로
신채호선생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변화로 설명이 된다고 했고요
1910년 3월에 어느 글엔 삼국사라 하고 며칠뒤에 한글로 삼국사기라고 바꿉니다
다른분이 그 신문이 발행인이 외국인이라 일제의 검열에 자유스러웠다고 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게 사실이긴 하죠

의혹이 어떤 요인에 의해 변했다라고 생각할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 일은 이마니시보다 수년전 일이고 그때 막 만주나 평양부근 발굴하고 있을때죠

또한 이게 부정되는게 신채호선생이 그 후로 동아일보(였나..?)에 기고한 글을 봐도 계속 삼국사기라 표기합니다
일제의 의도로 기존의 신문에서 바뀌었다고 해도 다른 신문이나 글에서까지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즉 신채호선생이 스스로 바꿨다라는게 유력하게 됩니다 아니면 일제와는 관계없는 조선의 지식인층의 변화라던가 말이죠
앞글에서 이점을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즉 신채호선생을 봐도 자신의 사상의 근간이 되는 서적의 이름을 어느 시점에서 바꾸었다...그 이유가 뭘까요? 그냥???

한량011님이야 말로 그냥이 답인것 같으면 그냥 넘어가라니.. 그게 더 경솔하신거 아닌가 생각되네요
이게 일제의 왜곡이 아닌 조선 학자, 지식인층의 변화라는게 확실하다고 다시금 밝히는데
그러면 그 당시 조선의 지식인층의 어떤 이유로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게 사소할수도 있지만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에 대한 변화로도 생각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외국의 어느 학자가 조선건국의 새로운 시각은 흥미로우시면서
실제 중요한 한국의 역사학자의 변화엔 관심은 커녕 그냥..이라고 넘어가려는데 좀 의아할 지경이네요

이 변화가 일제가 아닌 조선지식인층의 스스로의 변화라면 소위 환빠나 음모론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자료로도 사용될수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조선시대엔 혼용했다..라고 하지만 김부식이 분명하게 삼국사기라 밝혔고 (구)삼국사가 있다면 삼국사기라고 했어야 하지만
실록과 조선학자들은 어느 이유에선지 삼국사라 칭햇고
그걸 근대 일제시대까지 삼국사라 했다가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삼국사기로 바꿨다
더군다나 이것은 일제의 역사왜곡과는 관계가 먼 조선지식인층의 스스로의 변화이며 그들의 어떤 변화로 이루어졌냐... 그게 궁금하다는 겁니다

이게 음모론이고 어그로입니까?

lv26포마피/
짜장면 자장면은 표준어표현에서 비롯된걸로 알고 있는데요 더군다나 짜장의 한자에서 실수가 있었음이 밝혀졌고요 무슨 음모론이 필요한가 싶네요

korea와 corea 또한 고려라는 나라가 언제 외국으로 알려졌나... 어차피 중세유럽이나 근대영어권에서 c와 k의 차이인데 이게 무슨 일본놈들의 왜곡이 들어갈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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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삼국사의 표기 논란이 그 발단이 환빠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환빠의 음모론은 부정되고 일제의 역사왜곡과도 관계가 없다는게 밝혀졌다면

어쨰서 이런 혼용아닌 혼용이 되고 근대 조선의 역사학자는 그 굳이 그걸 다시 삼국사기로 바꿔야 했을까...하는 겁니다
조선시대에 삼국사기의 근본이 되는 (구)삼국사가 존재했을터인데 그것과의 구분은 어떻게 하며
근대 대한제국은 물론 일제시대까지 삼국사라 했던걸 어쨰서 조선의 지식인은 그걸 삼국사기라 바꾸었냐...

삼국사기와 삼국사는 어차피 동일한 표현이고 같은 책을 나타내는건 분명합니다
환빠의 음모론을 배척하고 남은걸로만 봐도 그 변화는 충분히 생각할만한 문제입니다
서로 동일한 표현이라면 차라리 책표지에 나온것처럼 삼국사라 해도 무방할겁니다
굳이 삼국사라 써진걸 삼국사기라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삼국사기라 해야 되는건 김부식의 원래 의도를 밝히는 것이다..라는 주장이 있듯이
신채호선생의 변화도 '그냥' 아닌 어떤 변화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이게 음모론이고 어그로다?
여러분은 충분히 근거를 밝힐수 없는 역사의 변화를 '그냥'이라고 말하는게 옳다 생각하시는지 의문이네요
2270 2015-06-21 00:24:28 0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 [새창]
2015/06/20 22:18:38
한량011/

음모론이라.. 제가 직접 찾아보기 전까지 솔직히 혹했죠 나쁜 일제놈들! 하면서요
하지만 저같은 사람이라도 몇시간 고신문 찾아보면
외려 신채호선생이 삼국사->삼국사기의 변화를 찾아볼수 있죠 이마니시류가 신문에 글을 쓰기 전에 말이죠 (1910년이면 이마니시는 만주나 평양근처에서 땅파고 있었을 시기..)
왜놈과의 관계설은 직접 찾아본 제가 더 잘 설명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면 중딩때나 가졌던 의문이 더욱 커집니다.. 삼국사로 써있는데 삼국사기라 읽는다(무슨 일에니에나 나올법한 대사...)
누군 자치통감이나 삼국지연의를 줄여 통감, 삼국지 또는 그냥 줄여서 쓰는거다라고 하지만 삼국사기는 동시대에 (구)삼국사가 있기때문에라도 구분지어야 했을거라 생각됩니다(구삼국사가 소멸하지 않은 이상...)

더군다나 근대에 신채호선생의 변화를 보면... 말줄임이나 그냥..이라고 표현하기 좀 웃기지않을까 싶네요
역사학자가 자신의 사상의 근간이 되는 중요서적의 명칭을 바꿨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지않는다라...

흐음....

GwangGaeTo/
책제목까지 가 아니라 책을 찍어낼때 표지의 제목까지 줄일 필요가 있었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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