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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2017-02-25 11:58:20 1
일본의 선전포고(?)는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나? 과거와 현재 [새창]
2017/02/20 22:21:04

http://www.repository.law.indiana.edu/facpub/2233/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 요건 설명. 바깥이라 번거롭지만 텍스트 대신 PDF 캡쳐로 갈음합니다.
244 2017-02-25 11:09:57 1
일본의 선전포고(?)는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나? 과거와 현재 [새창]
2017/02/20 22:21:04
일본어위키를 언급한 게 쓸데없는 오해를 불렀군요. 그걸 언급한 건 '일본어위키가 그거 선전포고라는 말 못하고, 선전조서가 공식적이라고 하더라. 팔이 안으로..'라는 정황을 이야기하려던 건데, 애초에 제대로 된 근거로 삼을 수 없는 내용을 언급한 제 잘못입니다.

Article I.
The Contracting Powers recognize that hostilities between themselves must not commence without previous and explicit warning, in the form either of a reasoned declaration of war or of an ultimatum with conditional declaration of war.

문언상 요건을 봅시다.
###previous### and ###explicit### ###warning###, in the form either of ###a reasoned declaration of war###
사전의(시간적 요건), 명백한(내용적 요건) 경고, 이유를 붙인 선전포고문

네, 조약문언에 명시적으로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최후통첩 이야기는 이 사안과 무관합니다. '사전의 명백한 경고를' 이유를 붙인 선전포고 또는 조건부 최후통첩으로 하라는 건데, 저희가 다투는 건 선전포고인지의 여부입니다.

a reasoned declaration of war
or of
an ultimatum with conditional declaration of war.

해석은 문맥 이전에 문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저지른 실수처럼 있는 걸 없다고 잘못 보고 계시네요.

---
켈로그 브리앙 조약이라는 전시법 외의 다른 전시법으로 처벌할수 있는 부분은 중복되거나 입증 실패 등으로 채택 되지 못하였다
---

이건 문맥 이전에 영어해석이 아예 틀렸습니다. 침략전쟁이라는 건 최고 수준의 범죄이고, 대는 소를 포함하므로, 국제법 조약 협약 등에 대해서는 검토할 필요가 없다고 했죠. 포함되는 것 중에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도 들어가니까, 그 법이 부과하는 의무의 정확한 범위에 대해서는 설시하지 않겠다고도 했고.

'살인죄도 침략전쟁의 와중에 있었던 것으로 침략전쟁의 일환으로 포함된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이건 '진주만 공습에 의해 사망한 미국민들에 대한 살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거 다 침략전쟁 하나로 모인다는 거죠.

비유로 레포트제출을 드셨죠. 비유는 오해를 부르는 첩경입니다. 그래서 전 비유를 고민하다가 엄밀하게 동일한 사안을 찾지 못해 포기했고요. 명백한 전쟁의사를 내용으로 해야하는 선전포고를 내용적 완성도와 관계없는 레포트에 비유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243 2017-02-24 23:44:22 7
(영화속에서) 외계인을 상대한 미군들 [새창]
2017/02/24 22:39:00
월드 인베이전은 '역시 우리 미해병대가 최고다!'라는 느낌의 영화라서 참 좋아합니다. 데굴데굴 구르는 인간승리의 맛이란.
242 2017-02-24 23:19:55 1
일본의 선전포고(?)는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나? 과거와 현재 [새창]
2017/02/20 22:21:04
일본어판 위키를 언급한 건 "일본측에 유리하게 기술했을 여지가 있는 일본어판 위키에서조차도 14part letter을 선전포고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그 이후의 말은 일본어판 위키의 서술을 그대로 번역했을 뿐이고요. 게다가 그 이하의 댓글에서 진주만 공격 후 66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일본의 공식선전포고가 워싱턴에 도달했다고 적어두었습니다.

조기성 저 국제법의 내용을 근거로 삼으신 건, 제가 저지른 것만큼이나 큰 실수십니다.

1.2 선전 포고
선전 포고는 전쟁 개시 전에 선행해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공식 개전의 절차이다. 1907년 적대 행위의 개시에 관한 헤이그 협약(III)에서 체약 당사국은 교전 당사국 간에 적대 행위를 선전 포고, 전쟁 사유 통보, 조건부 선전 포고로서 최후 통첩의 형식에 의한 사전 경고 없이 개시하여서는 안 된다(제1조)고 규정하고 있다.

선전 포고에 대해서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1907년 적대 행위의 개시에 관한 헤이그 협약(III))을 그 국제 전시법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저 법의 내용을 다시 한번 반복해야 하나요? 시간적 요건 그리고 내용적 요건을 모두 충족할 것을 그 의무로 부과하고 있는 법입니다. 어느 체계화된 문건양식요? 아뇨, 이 법에서 부과하는 내용적 요건은 "명료할 것"입니다. 이미 언급하신 바처럼 '내용적 빈약함'을 두둔하시는 게 아니라면, 내용적 요건을 결한 노트에 대해서 '실질적인 선전포고'라는 결론을 내리실 수는 없을 겁니다.

---
선전포고의 부재와 같은 국제 전시법 위반의 내용은 없습니다, 그럼 이게 뭘 말하는 것일까요?
---

제 댓글을 다 읽기는 하신 겁니까? 이거 꽤 실망스럽네요. 그 이야기는 저 위에 이미 적어뒀습니다. 침략전쟁이 명백하기 때문에 그외의 국제법, 조약, 협약 등의 위반에 대해서는 다룰 필요가 없다고 재판부가 설시했다고. 또한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 위반에 대한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기소, 즉 별도의 소인으로 나누지 않았기에 재판부가 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토론에 진지하게 올바른 태도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면, 이 토론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240 2017-02-24 21:54:56 0
이해찬 의원 트윗, "우리 헌법에 권한대행이라는 직함은 없다." [새창]
2017/02/24 18:50:27

헌법상 그런 직함은 없지만, 행정실무상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라고 부르는게 그 자체로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닙니다.

고건 전 총리 시절에도 저렇게 불렀고요. 명패를 파거나 기념시계를 뿌리는 게 눈꼴사납게 느껴지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입니다.
239 2017-02-24 17:27:54 0
요즘 물총 클라스 [새창]
2017/02/24 16:46:18
너프건은 물총이 아니라 3M 귀마개(주황색)랑 비슷하게 생긴 걸 쏘는 물건입니다.
238 2017-02-24 13:39:53 2
일본의 선전포고(?)는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나? 과거와 현재 [새창]
2017/02/20 22:21:04
Accordingly, it is unnecessary for us to express a concluded opinion upon the exact extent of the obligation imposed by Hague Convention III of 1907.
###
It undoubtedly imposes the obligation of giving previous and explicit warning before hostilities are commenced,
###
but it does not define the period which must be allowed between the giving of this warning and the commencement of hostilities.

도교전범재판부는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이 국제 전시법에 해당한다고 문언으로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법의 내용은 전쟁 개시 전 사전에 명백한 내용의 통보가 있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즉 국제 전시법은 선전포고에 대해 그와 같은 요건들을 모두 충족할 것을 명합니다. 이외에 대체 어떤 국제 전시법이 내용적 요건은 미달해도 선전포고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는지 심히 의문입니다.
237 2017-02-24 13:02:23 2
일본의 선전포고(?)는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나? 과거와 현재 [새창]
2017/02/20 22:21:04
http://www.repository.law.indiana.edu/facpub/2233/
http://www.repository.law.indiana.edu/facpub/2232/

Surprise Attack: Crime at Pearl Harbor and Now, Robinson, James J., 1960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local/1980/05/25/james-j-robinson-dies-libyan-high-court-judge/3d005f12-b648-4b46-8c25-3d621a7c481d/?utm_term=.64b2ec5a3f29
-저자의 약력을 알 수 있는 부고기사

재판부는 말합니다. 침략전쟁은 '기타 국제법, 조약, 협약 등의 위반'도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침략전쟁임이 명백하므로, 개별 국제법, 조약, 협약 등의 위반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 Robinson, James J은 재판부가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 위반에 대해 따로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공소장의 기소내용 중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 위반'에 대한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기소가 없었던 탓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는 소를 포함하는데, 침략전쟁이 유죄이니 작은 건 따로 밝히지 않게 되었다는 거죠. 즉 시간적 요건에 대해서만 언급한 걸 가지고 맥락을 고려해, '재판부가 실질적인 선전포고로 인정했다'고 보기 곤란합니다.

조약의 흠결에 대한 재판부의 설시에 대해서 상기 논문에서는 해당 조약을 만든 사람들의 발언-"시간적 간격에 대해서는 적당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그걸 1.5초로 줄여도 된다는 식의 해석은 조약의 목적 자체를 형해화하는 것으로 용납될 수 없다"-등을 근거로 호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재판부가 시간적 지연에 대해 일본측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주장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지연은 선전포고의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그게 실질적인 선전포고의 인정은 아니라는 겁니다.

The trial clearly exposed the misleading confusion that has been raised on this point of whether Japan ever made or tried to make a legal declaration of war. The Japanese Ambassadors at Washington delivered to Secretary Hull on December 7, 1941, a "note" terminating the diplomatic talks. This note had no resemblance to a Hague III declaration of war. The Japanese themselves recognized in effect that this
paper was not a declaration of war because they prepared a declaration of war after the attack. It was received by the U. S. Government in Washington sixty-six hours after the attack.' The note terminating the diplomatic talks has nevertheless often been called by Japanese defense sources a "declaration of war". Many unfortunate examples of this erroneous statement are found in the record of the trial and in Japanese writings about the trial.

일본측에서도 그 노트(14 part)가 제대로 된 선전포고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뒤에야 선전포고를 보냈고, 이는 공격 개시후 66시간 뒤에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일본측 방어자료에 따르면 그 노트가 선전포고라고 종종 불렸다. 이런 틀린 언급이 재판기록, 그리고 재판에 대한 일본인의 저작에서 많이 발견된다.

Foreign Minister Togo testified that Admiral Nagano and other Navy leaders tried to get him not to send even that "note", leaving the diplomatic talks to continue treacherously during the attack. Togo testified also that Admiral Shimada and Admiral Nagano later during the Tokyo trial "warned" him not to disclose these facts in his testimony (Transcript, page 35,538); and Shimada admitted on the witness stand that he and Nagano had "requested" Togo not to testify to these facts (Transcript, page 37,031).

도고는 나가노 제독과 다른 해군지도부들이 그 노트조차도 보내지 않고, 공격 도중에 기만적인 외교교섭을 지속하기를 바랬다고 언급했다. 또한 시마다 제독과 나가노 제독이 도고에게 '도쿄 전범재판 중에 그 사실을 공개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시마다 제독은 자신과 나가노가 도고에게 그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도고가 회의에서 그걸 논했다는 이야기는 "이 나쁜 해군 놈들이 그 노트조차 보내지 않자고 하길래, 그건 조약 위반이라고 반대했다"는 겁니다.

---
국제 전시법상 선전포고란 무력 행위 이전의 사전 통보를 이야기합니다, 어떠한 문건의 내용 양식, 규격 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예컨데 선전 각서의 내용이 선전 포고로서의 내용적 요건에 미달된다 하나 그 것을 전달하려한 의도나 접견의 이유 등을 본다면 선전포고로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

이 주장에 관해서 대체 어떤 국제 전시법이 이렇게 규정하고 있는지 근거를 명확히 대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날카로운 반응이 되겠습니다만, 학술적 토론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서, 막상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적시하고 계신 게 없습니다.
236 2017-02-23 19:49:28 0
데이터주의)소니 rx100 m3 액정에 검은줄이 생겼어요 [새창]
2017/02/21 20:15:20
http://ran.innori.com/m/647

링크를 참조하세요. 플리커 현상이고, 액정 뿐 아니라 사진 결과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235 2017-02-23 17:36:13 0
[유혈주의] 이 사진 출처가 어딘지 찾을 수 있을까요? [새창]
2017/02/23 16:31:27
http://www.newsworld.pk/2016/07/10/war-against-terrorism-pakistan-urges-kabul-to-exploit-zarb-e-azb-gains/

War against terrorism: Pakistan urges Kabul to exploit Zarb-e-Azb gains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Zarb-e-Azb

파키스탄군이 아프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중의 사진입니다. Zarb-e-Azb 작전 중.

이 사진을 찍은 저널리스트의 신상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pk.linkedin.com/in/journalist-sultan-dogar-b2502b1b

https://www.facebook.com/sultandogar

'Sultan Dogar'라는 이름의 저널리스트입니다.
234 2017-02-23 12:18:53 2
일본의 선전포고(?)는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나? 과거와 현재 [새창]
2017/02/20 22:21:04
The Japanese Note Delivered in Washington on 7th December 1941

여기에서는 침략전쟁이 명백히 유죄라서 다른 걸 다루는 건 불필요하다는 재판부의 입장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것 중에는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 또한 포함되고,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이 부여하는 의무의 정확한 범위에 대해서는 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죠. 그런 다음에야 시간적 요건 / 내용적 요건 중 시간적 요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 이하에서 시간적 요건의 경우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상 통보시기와 개전시기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의가 없었고, 그러한 흠결 하에서 기습의 성공에 집착한 일본이 여유시간을 대거 축소한 끝에 지연에 이르렀다고 평합니다. 이 부분을 일본측, 즉 피고인측에 가장 유리하게 보자면 도쿄전범재판부가 지연에 있어서는 흠결을 인정해서 일본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내용적 요건에 대해서는 심리도, 재판부의 설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의 소제목을 다시 봅시다. 'The Japanese Note'입니다. Declaration도 Ultimatum도 아닙니다. "그 문건은 왜 늦었냐?는 질문에 관해,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상 흠결의 탓이 있었다"고 평한 게 '그 문건이 실질적인 선전포고임을 전제로 한 것'이 된다는 말은 '내용적 요건 충족여부는 관계없다' 또는 '내용적 요건 충족여부를 다루지 않은 건 이미 그건 충족되었다고 본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을 형해화하는 주장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재판부가 언급하지도 않은 부분을 전후의 맥락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는데, 그러한 해석이 타당한지 심히 의문이고 전후의 맥락이 그걸 뒷받침하는 걸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The Formal Declaration of War

바로 그 다음으로 넘어가서 '14part letter' 대신에 '선전포고'라는 소제목 하에서 일본이 제대로 된 선전포고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도쿄 전범재판부가 전자를 실질적인 선전포고로 인정했다면, 굳이 일본이 제대로 된 선전포고를 이행했는지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https://ja.wikipedia.org/wiki/%E7%9C%9F%E7%8F%A0%E6%B9%BE%E6%94%BB%E6%92%83#.E3.80.8C.E5.AF.BE.E7.B1.B3.E8.A6.9A.E6.9B.B8.E3.80.8D.E9.81.85.E5.BB.B6.E5.95.8F.E9.A1.8C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 진주만공격 - 대미각서 지연문제

問題の覚書が宣戦布告とみなせるのかどうかについて議論の余地が存在する。覚書本文の最終部分(第7項3)は次のようになっている。

仍(よっ)テ帝国政府ハ、茲(ここ)ニ合衆国政府ノ態度ニ鑑ミ、今後交渉ヲ継続スルモ妥結ニスルヲ得ズト認ムル外ナキ旨ヲ、合衆国政府ニ通告スルヲ遺憾トスルモノナリ。

これは極めて強い調子の交渉打ち切り宣告であるが、正式な宣戦布告は「宣戦布告の詔書」において行われている。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일본측에 유리한 주장으로 가득찬 일본어판 위키에서조차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대미각서(14part letter)가 선전포고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있는데, 대미각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14번째 파트 번역은 생략합니다. 이 부분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논할 필요는 없겠죠?)
이는 아주 강한 어조의 협상중단선언이지만, 공식적인 선전포고는 선전포고조서에서 이뤄지고 있다.
233 2017-02-23 09:06:29 0
미국에서 개발된 새로운 방탄 방패 [새창]
2017/02/22 18:24:46
https://youtu.be/taIXXBJETEo

바퀴 달아서 밀고 가는 물건도 있고, 아예 크고 아름다운 방패에 궤도를 달아서 조종하는 물건도 있습니다.
232 2017-02-22 22:26:26 2
일본의 선전포고(?)는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나? 과거와 현재 [새창]
2017/02/20 22:21:04
재판부가 명시적으로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의 정확한 의무이행범위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고 언급했습니다.

시간적 요건, 즉 지연여부에 대한 심리는 있었지만 내용적 요건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지연에 대해서는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에 흠이 있었고(통보와 전쟁개시 간 시간적 간격에 대한 정의 부재), 기습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여유시간을 두지 않아 사전통보의무의 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졌고, 결국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걸 재판부가 '실질적으로 선전포고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나요?
231 2017-02-22 21:56:13 2
일본의 선전포고(?)는 실질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나? 과거와 현재 [새창]
2017/02/20 22:21:04
The Japanese Note Delivered in Washington on 7th December 1941

Hague Convention No. III of 1907, relative to the opening of hostilities, provides by its first Article "The Contracting Powers recognize that hostilities between themselves must not commence without previous and explicit warning in the form either of a reasoned declaration of war or of an ultimatum with conditional declaration of war". That Convention was binding on Japan at all relevant times. Under the Charter of the Tribunal, the planning, preparation, initiation, or waging of a war in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treaties, agreements or assurances is declared to be a crime. Many of the charges in the indictment are based wholly or partly upon the view that the attacks against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were delivered without previous and explicit warning in the form either of a reasoned declaration of war or of an ultimatum with conditional declaration of war. For reasons which are discussed elsewhere, we have decided that it is unnecessary to deal with these charges. In the case of counts of the indictment which charge conspiracy to wage aggressive wars and wars in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treaties, agreements or assurances we have co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charge of conspiracy to wage aggressive wars has been made out, that these acts are already criminal in the highest degree, and that it is unnecessary to consider whether the charge has also been established in respect of the list of treaties, agreements and assurances -- including Hague Convention III -- which the indictment alleges to have been broken. We have come to a similar conclusion in respect to the counts which allege the waging of wars of aggression and wars in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treaties, agreements and assurances.
We have come to a similar conclusion in respect to the counts which allege the waging of wars of aggression and wars in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treaties, agreements and assurances. With regard to the counts of the indictment which charge murder in respect that wars were waged in violation of Hague COnvention No. III of 1907 or of other treaties, we have decided that the wars in the course of which these killings occurred were all wars of aggression. The waging of such wars is the major crime, since it involves untold killings, suffering and misery. No good purpose would be served by convicting any defendant of that major crime and also of "murder" eo nomie.

대미각서(14part letter)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번역을 건너뛰는 부분이 많은 점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에서는 시간적 요건/내용적 요건을 준수할 것을 요합니다. 일본 역시 그 체약국으로 그를 준수한 의무를 집니다. 전범재판소 헌장에 따르면 ‘국제법, 조약, 협약 등에 반해 전쟁을 계획, 준비, 개시 또는 침략전쟁’을 하는 것은 전쟁범죄입니다. 공소장에 기재된 기소들의 많은 부분은 ‘영국과 미국에 대한 공격은 시간적/내용적 요건을 갖추지 않고 벌어졌다’는 관점에 대부분, 혹은 부분적으로 기반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진 논쟁상의 이유로 우리 재판부는 그런 기소들은 다룰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침략전쟁에 대한 기소가 명백히 유죄이기 때문에 조약, 협약 등(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을 포함)에 기초한 기소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Accordingly, it is unnecessary for us to express a concluded opinion upon the exact extent of the obligation imposed by Hague Convention III of 1907. It undoubtedly imposes the obligation of giving previous and explicit warning before hostilities are commenced, but it does not define the period which must be allowed between the giving of this warning and the commencement of hostilities. The position was before the framers of the Convention and has been the subject of controversy among international lawyers ever since the Convention was made. This matter of the duration of the period between warning and hostilities is of course vital. If that period is not sufficient to allow of the transmission of the warning to armed forces in outlying territories and to permit them to put themselves in a state of defence, they may be shot down without a chance to defend themselves. It was the existence of this controversy as to the exact extent of the obligation imposed by the Convention which opened the way for TOGO to advise the Liaison Conference of 30th November 1941 that various opinions were held as to the period of warning which was obligatory, that some thought it should be an hour and a half, some an hour, some half an hour. The Conference left it to TOGO and the two chiefs of Staff to fix the time of the delivery of the Note to Washington with the injunction that that time must not interfere with the success of the surprise attack. In short, they decided to give notice that negotiations were broken off at so short an interval before they commenced hostilities as to ensure that the armed forces of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at the points of attack could not be warned that negotiations were broken off. TOGO and the naval and military men, to whom the task had been delivered, arranged that the Note should be delivered in Washington at 1:00 p.m. on 7th December 1941. The first attack on Pearl Harbor was delivered at 1:20 p.m. Had all gone well, they would have allowed twenty minutes for Washington to warn the armed forces at Pearl Harbor. But so anxious were they to ensure that the attack would be a surprise, that they allowed no margin for contingencies. Thus, through the decoding and transcription of the Note in the Japanese Embassy taking longer than had been estimated, the Japanese Ambassadors did not in fact arrive with the Note at Secretary Hull's office in Washington until 45 minutes after the attack had been delivered. As for the attack on Britain at Kota Bharu, it was never related to the time (1:00 p.m.) fixed for the delivery of the Note at Washington. This fact has not been adequately explained in the evidence. The attack was delivered at 11:40 a.m. Washington time, one hour and twenty minutes before the Note should have been delivered if the Japanese Embassy at Washington had been able to carry out the instructions it had received from Tokyo.
We have thought it right to pronounce the above findings in fact, for these matters have been the subject of much evidence and argument, but mainly in order to draw pointed attention to the defects of the Convention as framed. It permits of a narrow construction and tempts the unprincipled to try to comply with the obligation thus narrowly construed, while at the same time ensuring that their attacks shall come as a surprise. With the margin thus reduced for the purpose of surprise, no allowance can be made for error, mishap or negligence leading to delay in the delivery of the warning, and the possibility is high that the prior warning which the Convention makes obligatory will not in fact be given. TOJO stated that the Japanese Cabinet had this in view, for they envisaged that the more the margin was reduced, the greater the possibility of mishap.

따라서 우리 재판부는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이 준수할 것을 요하는 의무의 정확한 범위에 대해 설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이 전쟁개시 전에 선전포고를 할 것을 요하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전쟁개시와 선전포고 사이의 시간적 간격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협약이 만들어진 이래로 계속 의견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시간적 간격의 문제는 물론 중요합니다. 시간적 간격이 부족하다면, 방어자는 방어의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도고는 회의에서 그걸 논했고, 90분, 60분, 30분 등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기습의 성공을 위해 전달시간을 수정하는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그에 따라 워싱턴 시각 오후 1시에 도달되도록 정했습니다. 그 시간은 진주만 공습 20분 전입니다. 하지만 기습의 성공에 집착하여 우발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여유시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전달이 지연되었습니다. 암호해석과 번역이 늦어져서 진주만 공습 45분 뒤 도착합니다. 영국령 코타 바루에 대한 공격은 당초 예정된 워싱턴 시각 오후 1시와도 무관했습니다. 그보다 1시간 20분 빠른 11시 40분에 일어났으니까요.

우리 재판부는 상술한 바가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1907 전쟁개시에 관한 법 자체의 흠결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시간적 간격에 대한 원칙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기습을 성공시키는 한편 이 법의 의무를 준수하는 것은 굉장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기습을 위해 여유시간을 줄이면서, 통보의 지연으로 이어지게 되는 오류, 사고, 과실은 용납되지 않았고, 법이 요구하는 사전통보의무는 사실상 이뤄지지 못한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도조는 일본 내각이 이런 관점에서 여유시간이 줄어듬에 따라 사고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직시했다고 말했습니다.

The Formal Declaration of War

The Japanese Privy Council's Committee of Investigation did not begin the consideration of the question of making a formal declaration of war upon the United States, Great Britain and the Netherlands until 7:30 a.m., 8th December (Tokyo time), when it met in the Imperial Palace for that purpose at that time. SHIMADA announced that the attacks had been made upon Pearl Harbor and Kota Bharu; and a bill declaring war on the United States and Great Britain, which had been drafted at the residence of HOSHINO during the night, was introduced. In answer to a question during the deliberations on the bill, TOJO declared in referring to the peace negotiations at Washington that, "those negotiations were continued only for the sake of strategy". TOJO also declared during the deliberations that war would not be declared on the Netherlands in view of future strategic convenience; and that a declaration fo war against Thailand would not be made, as negotiations were in progress between Japan and Thailand for the conclusion of "an Alliance Pact". The Bill was approved; and it was decided to submit it to the Privy Council. The Privy Council met at 10:50 a.m., 8th December 1941 and passed the Bill. The Imperial Rescript declaring war against the United States and Great Britain was issued between 11:40 and 12:00 a.m., 8th December 1941 (Washington time, 10:40 p.m. and 11:00 p.m., 7th December) (London time, 2:40 a.m. and 3:00 a.m., 8th December). Having been attacke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declared war on Japan on 9th December 1941 (London and Washington, 8th December). On the same day, the Netherlands, Netherlands East Indies, Australia, New Zealand, South Africa, Free France, Canada and China also declared war on Japan. The next day, MUTO stated in a conversation with the Chief of Operations of the Army General Staff that the sending of Ambassador Kurusu to the United States was nothing more than a sort of camouflage of events leading to the opening of hostilities.

선전포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사법수사위원회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에 대한 선전포고에 대한 논의를 도쿄 시각 12월 8일 오전 7시 30분(도쿄와 워싱턴의 시차는 13시간입니다. 즉 워싱턴 시각으로는 12월 7일 오후 5시 30분으로 진주만 공습 이후의 시점입니다)까지 시작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황궁에서의 모임에서 시마다는 진주만과 코다 바루 공격에 대해 밝혔습니다. 도조는 워싱턴과의 평화협상은 오직 전략을 위해 유지되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토는 육군참모총장과의 대화에서 쿠르스 대사를 미국에 보낸 건 개전에 대한 위장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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