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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9 02: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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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자세히 언급해드리면 본문에서의 말씀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12세기의 성리학의 끝판보스인 주자가 말하는 '중용'의 큰 의미중 하나가 시중(時中) 사상입니다. 일명 상황(時)의 중(中)입니다. 세상은 무한히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중입니다. "수시이처중야(隨時以處中也)라!" "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확한 중을 찾아 처해야 한다!" 여기서 '수시'는 상황의 변화입니다. '처중'은 그 상황분석에 따른 정확한 판단과 실행입니다.
또한 중용을 영어로는 golden mean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영어 단어 속에는 mean 즉 ‘중간’ 이라는 정지되어 있는 수치적 개념의 중용을 강조하고 있어 동양의 역동적인 중용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용이란 A와 B의 수치적이거나 기계적인 중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부인의 고부 갈등에 중용을 지킨다고 어머니가 계신 안방도 아니고 부인이 있는 부엌도 아닌 거실에 있는 상태가 중용은 아니라는 것이죠. 중용은 모든 개인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수학적인 중간이 아니라 개인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역동적으로 그 기준이 움직이는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수치입니다. 중용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진퇴를 아는 것이 중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 옳지 못한 결정이 내려질 때 중용을 지킨다고 가만히 침묵한다거나, 조직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불의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는 것 역시 중용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침묵과 불의에 타협하는 행태, 즉 안철수식 중도, 적어도 한국적인 정치지형에서의 중도라는 것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확신합니다. 작성자님이 말씀하시는 범주는 중용입니다. 중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