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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1 18: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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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서재필이 설립한 독립협회독립운동의 첫발을 ...[중략]...
그는 1919년 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추대되자, 스스로 대통령행세를 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P 256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knu=05091078&menu=cview&encrt=5Nv92a150wbTmATYMTA3OCZzZWNzdWJudW09NjU=&query=%C0%CC%BD%C2%B8%B8%C0%BA+%C0%D3%BD%C3%C1%A4%BA%CE+%C3%D1%B8%AE%B7%CE#middle_tab
1914년의 한국 임시정부의 초대 수반은 이승만이 아니라 보재 이상설이었다. 보재 이상설은 1914년 러시아에서 최초로 수립된 한국 임시정부의 초대 수반(정통령=대통령, 대한민국 정부수립 뒤에도 정부통령 선거라는 명칭에서 알수 있듯이 대통령과 정통령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했다.)으로 임명되었다. 대한제국 광무황제에 의해 헤이그 밀사로 이준 열사, 이위종 선생과 함께 파견된 3인의 밀사 중의 한사람이다.
임시정부의 초대 주석은 우남 이승만이 아니라 보재 이상설이었다. 그동안 임시정부의 초대 주석은 이승만으로 알려져 왔다. 1919년 4월 11일 한성 임시정부의 집정관 총재, 1919년 9월 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통합)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임시정부의 1대, 2대 수반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1925년 3월 3대 수반 박은식, 9월 4대 수반 이상룡 등으로 지도권이 승계된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초대 수반으로 이상설이 확인된 이상 이승만은 2대와 3대, 박은식(4대), 이상룡(5대)로 한 대씩 뒤로 밀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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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일찍이 미국에 머물면서 외교를 통해 독립을 추구하여 미국 정부에 청원서를 넣으며 소일했던 2류 독립운동가였다. [중략]
그는 친일 지주와 일제에 복무했던 일본군, 관리, 경찰 출신을 주위에 불러모았다.
백범 김구 선생은 스스로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청햇지만, 이승만은 대통령직이 아니면 임시정부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로 권력 지향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 같은 민족주의자는 이승만의 사대주의적 청원운동을 경멸하면서 임시정부와 모든 관계를 끊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P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