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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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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분수대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제각각으로 흩어졌다. 의외로 분수대에 뛰어든 그 사람에게보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전혀 반대의,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한 몸에 받고 있던 관심을 빼앗긴 인형들은 탈을 벗고 사람이 되었다. 안그래도 소란스러웠던 광장은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달래거나 화내는 부모들의 소리, 그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경비원과 웅성대는 사람 혹은 동물들의 잡음으로 가득 찼다.
그 사람은 더이상 물줄기가 솟지 않는 분수대 한복판에서 헤엄이라도 치려는 듯 몸을 움직였다. 단지 있는대로 다리를 구부린 채, 팔을 휘저으며 걸어가는 것도 같았다. 오랫동안 갈지 않아 더러워진 물 한복판에서 기이한 몸짓으로 첨벙대고 있었다. 잘 보고 있자니, 그 몸짓은 은근히 규칙성이 있는 것도 같았다. 어느 고대신을 섬기는 부족의 춤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시 빠진 것이 아닌가, 모두 조금 거리를 둔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빠지기에는 너무나 얕은 깊이여서 누구도 그의 안전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일을 해야하는 경비가 소리쳤다. 거기 나오세요, 얼른! 그 사람의 몸짓은 경비의 고함에도 아랑곳않고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예능이나 만화에서 자주 보던, 효과음이나 자막을 제각각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확실하게 시선의 경로가 정해진 관객들은 흥미진진하게 경비와 그 사람의 공방을 구경했다.
60대의 경비원 A씨는 쌀쌀한 늦가을 날씨에 분수대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 따위는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가장 좋은 해결법은 저 사람이 제발로 분수대 밖으로 걸어나와주는 거였다. 어떻게 나오게 할 수 있는가? 창의력따윈 전혀 없이 살아왔던 그의 머릿속에 어디선가 보았던 해와 바람 우화부터 극단적인 방법까지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물론 쉴새없이 목청을 질러 채근하고는 있었다. 이제 그 사람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 커다란 분수대의 한가운데까지 들어가 있었다. 경비원은 그 사람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 결국은 분수대 밖으로 빠져나가길 바라며 간헐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나갈 때까지 기다리기엔 그 사람의 몸짓이 너무 느렸고 또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경비원 A씨의 모자가 날아가버렸다. 모자는 분수대 한복판에 떨어져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A씨는 분수대에서 헤엄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소리쳤다. 어이, 그 모자 좀 집어줘요! 집어서 나와요! 그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않았다. 새까만 뒤통수와 허우적대는 두 팔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듯 했다. A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덧 남자와 경비원 A씨는 광장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다시 마법에 걸린 듯 사람들은 인형으로 변해 춤을 추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솜사탕 판매원 앞에 모여있었다. 부모들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온통 정신이 쏠려있었다. A씨는 알 수 없는 고독함과 한기에 잠시 몸을 떨다가, 팔다리를 걷어붙였다. 그 사람의 머리가 점이 되어 멀어져가고 있었다. 아니 이젠 너무 멀리 가서 보이지 않는 것도 같았다.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차가운 물 속에 발을 담궜을 때, 생각보다 해가 쨍하게 비추는 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발을 겉어붙인 채 멍하니 서있을 즈음 한 아이가 다가와 A씨의 거동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A씨의 벗겨진 머리가죽과, 아이의 까만 눈동자 가을 햇볕 아래 선명히 빛났다. 잠시 그 눈과 마주하고 있다가 A씨는 물 속에서 한 발을 내딛었다. 한낮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