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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8 18: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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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관리소장이 산다.
관리소장이 관리사무소에 산다. 음. 근무한다. 잘 모르겠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우리아파트 관리사무소는 A동과 B동 사잇길을 따라 나가면, 아파트 입구에
위치한 건물인데, 거기 있는 관리소장은 출퇴근을 한다. 관리사무소 직원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관리사무소는 내가 사는 동 지하에 있는 곳이다.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관리소장도 여기에 있는 관리소장이다.
사실 한번도 내려가 본 적은 없다.
관리소장의 얼굴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게, 한번 보려고 해도 너무 오래되고 음침한 저 입구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호기심이 동해 입구를 향해 "계세요?"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힘차고 밝게
"반갑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말하는 중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실 냄새가 입구에서부터 퀴퀴하게 올라오는데다가 다가가기만 해도 습기가 온 몸을
덮는것 같은 그 음침함에 반하는 너무 밝은 목소리가 어쩐지 소름돋아 나는 입구를 서성거리다
말은 하지 않은 채 입구를 향해 고개만 꾸벅 숙이고 제갈길을 갔던 적이 있다.
그 뒤로 어쩐지 불편해진 나는 일부러 밤에 외출도 잘 하지 않고 되도록 출근할때도 '관리사무소'
가 있는 쪽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나날이 지나고 나는 어느새 내가 그곳을 향해
인사를 했다는 사실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거리낌없이 아파트 입구를 지나다닐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다시 저 음침한 입구를 향해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고싶지만 나는 애써 입을 다물곤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들은 것이 환청이길 바랬기 때문이다. 진짜로 사람 목소리라고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정말로 무서울 것 같았다.
우리 아파트는 오래된 곳이라 밤이 되면 가로등이 잘 켜지지 않는 곳도 있고, 관리업체가 하는거라고는
월말에 관리비 고지서를 세대 우체통에 넣는 일만 할 정도로 아파트관리에 신경도 쓰지 않아서,
풀숲은 무성하고 군데군데 철로 된 울타리는 녹이 슬어 발로 살짝 밀기만 해도 넘어진다. 만약
아파트 세대에 간간히 비추는 불빛이 아니면 사람사는 곳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음침하다.
어느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뒤에서 낯선 인기척을 느꼈다.
나는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꼈고 곧 그것은 두려움이 되었다. 뒤에 따라오는 남자가 나에게 "저기요"
하고 불렀기 때문이다. 나는 돌아볼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계속 걸었다. 그런데 남자가
"저기요. 저기요." 하고 자꾸 낮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주변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런데 그 스산한 아파트 단지 안에는 그날따라 마실나온 아줌마나 아저씨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을 향해 잰걸음으로 귀가를 재촉했다.
남자는 뒤에서 "저기요. 돌아봐요. 야. 야. 사람말이 말같지 않냐?" 하며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였다. 나는 거의 울며불며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남자도
같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집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문을 연 뒤에 닫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당할지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저 멀리 내가 사는 아파트 동 입구가 보였다. 그러나 기쁘지 않았다.
남자가 점점 나를 따라잡는 것이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에 갑자기 아파트 입구에서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반갑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그 목소리야! 언젠가 내가 계세요 라고 물었을때 답해주던 그 목소리. 그때는 그렇게 소름이
끼쳤는데 지금은 왜그렇게 반가운지! 나는 온 힘을 다해 "아저씨 살려주세요!" 라고 외쳤고
뒤따라오던 남자는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으며 날 쫓아왔던 반대방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검은 모자와 옷을 입은 남자는 누가봐도 위험해보였다.
나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 그자리에서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쉰 뒤에 나는 아파트 동쪽을 쳐다보았다. "반갑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실루엣이 외쳤다. 그리고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뜨듯 지하 관리사무실로 사라졌다.
어느 집이든 가택신이 산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읽어보니, 아파트가 생긴 이후로는 가택신이
설 자리가 없어져서 그 수많은 가택신들이 사라지거나 정처없이 떠돈다고 했다. 저 '관리소장' 아저씨도
누군가 살던 집의 가택신이였을까? 가택신이였는데, 현대화된 쪽을 선택한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불켜진 '관리사무소' 안에 대고 "계세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밝게 켜져 있던 불이 톡 하고 꺼졌다.
나는 다음날 '관리사무소' 앞에 '고맙습니다' 라는 글귀와 함께 직접 만든 머핀과 음료수를 놓고 출근했다.
관리소장 아저씨가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관리사무소에는 관리소장 '아저씨'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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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진보고 한번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