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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2 15: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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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출신인 내게 서울은 뉴욕과 어떻게 다르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내게 ‘서울’은 골목의 도시다. 뉴욕의 거리는 규칙적이고 넓다. 끝에서 끝까지 고층건물이 계속되는 뉴욕의 풍경을 ‘콘크리트 캐니언’이라 부른다. 뉴욕에서는 숫자로 구분된 길들을 오가며 사는 게 일상이다. 예를 들면, ‘34가에 있는 어느 바’, ‘6 애비뉴에서 비즈니스 미팅’과 같은 식으로. 서울도 물론 뉴욕처럼 대로가 많은데 테헤란로와 12차선 영동대로가 만나는 삼성역 사거리는 아마도 내가 지금껏 본 가장 큰 교차로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삶은 그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진짜 서울의 삶은 이름조차 없는 작고 수 많은 골목에서 매일 숨쉬고 먹고 마시고 논쟁하고 사랑하고 헤어지며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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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목적으로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은 서울의 이런 진면목을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교보타워에서 택시를 타고 강남역으로 간다면 강남대로를 지나가며 강남의 모습을 보긴 하겠지만 지오다노 뒤편에 있는 골목은 보지 못한다. 학생, 군인, 신입사원 등 수많은 인파로 북적대는 강남 메인 거리의 뒷골목. 그 골목들은 15년 동안 변함이 없다.여전히 존재하는 야구 배팅 게임장에서는 남자들이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펀치백을 날린다. 선술집에서는 남자들이 헌팅 기회를 엿 보고, 지하 호프집에는 2차를 즐기는 회사원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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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과 강북 어떤 동네든 이름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늘 존재한다. 딱 한 대의 차만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골목길, 걸어가는 앞 사람에게 조심하라 빵빵거리는 택시 아저씨, 늦은 밤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비 오는 날 물로 첨벙거리는 길모퉁이, 한겨울 얼음으로 뒤덮인 미끄러운 빙판길, 출근길 전쟁터와 흡사한 복잡한 거리의 모습 등. 이것이 진짜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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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골목은 전혀 부끄럽지 않은 솔직하고 꾸밈없는 공간이다. 결코 서울의 최고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다. 날 것 그대로의 편집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좋은 모습 나쁜 모습까지 모두. 거룩한 교회의 십자가부터 늦은 밤 노래방의 간판까지 모두 빨간 네온 불빛으로 빛나고 있다. 골목 모퉁이에는 노부부가 운영하는 세탁소가 있는데 출근 길에 보면 그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고 있다. 밤 늦게 퇴근할 때 봐도 노부부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그 분들이 아마도 내가 본 중에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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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맛있는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곳 또한 골목길이다. 작은 골목에 이름 없는 맛있는 낙지집이 있다. 이름이 있긴 있지만 솔직히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르고 신경도 안 쓴다. 음식도 맛있고 주인 할머니는 가족같이 친근하다. 만약에 그곳이 어디냐고, 어떻게 가냐고 물으면 난 그냥 나중에 내가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어차피 말해줘도 못 찾을 테니까.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이 골목들은 이름조차 없었다. 지금은 누군가가 이름을 지어줬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 또한 그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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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은 메인 도로에서 택시를 탄다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택시기사에게 ‘P턴’을 해달라고 요청한 뒤 골목에 들어서면, 갑자기 커튼이 걷히면서 서울 사람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사는지, 진짜 서울라이프가 무엇인지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