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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19: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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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제 이유로 이 토성은 한(漢)의 낙랑군 치소가 아니라 어울동토성(평남 온천군), 운성리토성(황해 은율군), 청산리토성(황해 신천군), 소라리토성(함남 영흥군) 등과 함께 BC3-2세기경의 것으로 BC1000년경의 전반기 고조선문화(비파형동검문화)를 계승한 세형동검문화(細形銅劍文化)의 유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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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b.history.go.kr/item/level.do?setId=78&itemId=nh&synonym=off&chinessChar=on&position=5&levelId=nh_003_0020_0010_0010_0020
이외에도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구체적으로 비파형동검이 유입되는 시기)를 청동기시대로 보아서 비파형동검은 기원전 4세기 정도로 보고, 세형동검은 1기가 기원전 4세기 말∼기원전 2세기 초, 2기가 기원전 2세기 후반∼기원전 1세기 말, 그리고 3기는 제2식 세형동검(절대가 검의 하반부까지 내려오는 식)이 사용된 시기로 기원전 1세기 후반에서 기원후 1세기 말경까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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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형동검은 1기부터 3기까지 기원전 4세기말에서 기원전 1세기 후반까지 시기가 추산됩니다.
위에서 기원전 3~2세기라고 주장하시는데 근거가 뭔가요? 왜 BC4~1후반까지 걸치는 영역에서 1,2기에 걸친 영역을 주장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해당지역에서 1,2기 중간에 해당하는 세형동검이 발견이라도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