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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23: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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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이었다면 농기구를, 농군이라면 지배층인 관리가 사용하는 필기구나 관복에 사용하는 띠걸이를 같이 넣어 묻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 이런 되도 않는 소리를 주장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지배층 무덤에 농기구가 들어있다는 증거를 보여드리죠.
http://contents.history.go.kr/mfront/km/view.do?levelId=km_005_0060_0020_0040 , 가야 고분
또한 가야의 무덤에서는 백제계 유물에서 보이는 것처럼 쇠도끼, 낫, 살포 등 다양한 종류의 도구를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껴묻었다. 이것은 실생활 도구를 그대로 작게 만든 것으로 죽은 이가 사후에도 현실 생활을 유지하게 하려는 내세관과 함께, 농업을 중시하는 풍조를 알 수 있다.
이 시기 지역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농기구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살포이다. 살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우리나라 특유의 농기구로서, 김매기할 때 사용한다. 살포의 등장으로 U자형 따비(갈이), 살포(김매기), 낫(걷이)이라는 단계적인 지배층의 농기구가 완성되었다. 수장층의 무덤인 옥전 M3호에서 출토된 살포는 논농사를 장악하고 통치하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print.do?levelId=km_005_0060_0020_0030&whereStr= , 백제 고분
백제 지역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소형 철제 농기구 모형도 특색이 있다. 이것은 백제의 금강 유역과 영산강 유역, 대가야 지역에서도 출토되는데, 대체로 4세기 초에 금강 유역에서 출현하여 5∼6세기를 지나면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모형 농기구란 실제 사용하는 농기구를 모델로 하여 3∼10㎝ 정도 크기로 작게 만든 것으로, 낫, 살포, 따비, 도끼 등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실용 농기구를 상징화한 의례 도구이거나 껴묻거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용구일 것이다. 이렇듯 철제 농기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작은 모형으로 만들어 껴묻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사회에서 농업을 상당히 중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형 농기구는 지역 지배자의 무덤에만 다량으로 껴묻히는데, 지배자가 농업 생산에 필요한 농기구를 분배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 의례를 주도하는 등 경제적 기반인 농업 생산력을 장악하였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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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백제 지배층 무덤에서는 농기구 나온답니다.
심지어 백제는 지배층 무덤에서 농기구가 나옵니다.
문성재 박사가 누군데 지배층 무덤에 농기구가 없다는 개소리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