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분들은 꼭 마무리글이나 이게 마지막으로 쓰는글이다 같은 동일한 패턴을 항상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에 근거도 논리도 최소한이 합리성도 결여되있는데다가, 관계도 없는 것을 묶어서 글의 노출에 기여하고자 하는 저급한 테크닉까지 쓰시면서 ( 덤으로 반박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후한무치함도 곁들여서요 )
그전엔 같은 소리 반복한다고 지겨워했는데 가면 갈수록 수준이 더 떨어지는군요. 이문영씨가 무슨 낙랑군이론을 주장했다는 건지 내용도 근거도 논리도 없고, 심지어 이덕일이 친일파라는 역시 근거도 내용도 논리도 없는 주장이라고 봐주기에도 난감한 잡설을 쓰고 의기양양해 하다니 참.
사회과학원에서 공신으로 지도를 간행했으면 온라인에서 확인이 불가능해도 하다못해 그 주장을 한 사람이 책을 봤을것이고 사진이라도 찍어서 확인이 되야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저렇다라는 주장말고 이재껏 단 한번도 중국사회과학원이 공식간행한 그 지도(장성이 한반도안까지 들어온)를 본 바가 없습니다. 이 지도가 국가기밀이라서 공개가 안되나요?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공식간행한 지도에서 만리장성을 한반도에가지 늘려놀았다라고 "주장"하는 글만 지금까지 보았지 한번도 명확한 자료를 내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언론을 통해서 확인된바는 2012년까지도 중국에서 만리장성이 한반도에 들어온적이 있다고 주장한적은 없다는 겁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nh&setId=59438&position=3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왜와 처음으로 접촉한 것을 아신왕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근초고왕 때부터 정치적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백제에서 七枝刀 1구와 七子鏡 1면을 보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 칠지도에 대해서는 현재 일본의 奈良縣 天理市의 石上神宮에 소장된 七枝刀를 그 당시의 유물로 생각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일본서기 기록(≪日本書紀≫권 9, 神功皇后 52년 9월 정묘 초하루 병자)에 따라 칠지도가 일본과 백제의 외교관계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당연하다고 한건은 기록에 근거해서 한말이 아니라 칠지도를 어떻게 해석하던 양국간의 관계의 산물이기때문입니다. ( 그걸 외교라고 부르죠 )
위에 올린글 다시 붙입니다. 일본서기 전체가 확실하다고 말할수 없으나 ( 고대역사 자체가 과장이 많으므로 ) 고대사 연구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인용하는 일본서기와 아무도 인용하지 않는 만주원류고를 동렬에 놓고 비교할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