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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 2016-01-24 17:00:09 3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역개루가 뭔지? 부흥은 또 뭐여.. 이 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 없으면 그만 끊죠.
1040 2016-01-24 16:52:55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그럼 님하고 이야기 할라면 임? 체 붙이고 이야기 해야하는 것임? 그렇게 해야하는 것임? 어차피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냥 이야기 안하면 안되는 것임?
1039 2016-01-24 16:42:20 5/6
[새창]
근대화 게시판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1038 2016-01-24 16:39:29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우리 게시판의 마스코트 레몬은 어디가고 니가 이렇구 앉아있냐.
1037 2016-01-24 16:24:03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그렇고 보니 먹이짤이 없네.. 하긴 앵무새 레몬도 모이는 먹어야겠지 ...
1036 2016-01-24 16:04:21 6
근대화 재탕 [새창]
2016/01/24 12:41:20
네 1단계 언어폭력을 통해서 게시판 유저들을 몰아낸다. 2단계 계속해서 식근론을 이슈화 시킨다.. 마지막 단계 공지가.. 굳이 본인들이 관리하지 않아고 시스템 돌아가게 만든다..유사역사 환빠 이런 식으로 일반 유저들 몰아서 접근 못하게 하고 가끔 식근론 글 올린다가.. 얘들 씨나리오 였던거 같아요.

레몬아 니 생각은 어떻니? 짤만 붙이지 말고 말을 해 이것아
1035 2016-01-24 15:52:14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코피나님 질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고유의 묘제가 되기위해서는 묘제의 양식, 묘제의 양상등이 여러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야하고 넓은 범위에 확인되며 꽤 오랜기간동안 유지되어야 합니다. 제가 전방후원분이 일본의 묘제라고 말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전방후원분은 일본열도에 넓게 분포하고 1~2년 보이다 만것이 아닙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학계에서도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묘제라고 연구성과들이 나왔른데 이를 어찌 단정이라고 하시는지요?

저는 딱히 일본, 한국이라는 관점에서 보고있지 않습니다. 제가 글솜씨가 부족하여 한반도계, 도래인 등의 단어를 써서 그렇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백제는 백제이고 신라는 신라는 신라, 일본은 일본이 맞습니다.
다만 저는 님께서 주장하시는 전방후원분이 부여의 고유의 양식이다라고 하신 부분에 의견을 제기한것 뿐입니다. 저는 그렇게 배우지않았기 때문이지요.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셨다니 유감입니다. 저에게 뭐라 그러실 것이 아니라 그렇게 가르키신 선생님께 따지실 문제.. 라고 이야기 하면 선생님들한테 찍힐려나 많이 진짜 학생이면 이런 이야기 하지 말고 그냥 삭히십시오. 그 동네 살벌한건 제가 좀 들은바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백제 신라 짬뽕형 고분을 만든 사람들이 어쨋든 일본인의 조상이니까 일본고분이라고 봐야 할까요? 저 사람들은 일본 한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고향 떠나서 열도까지 가서 개고생하다 죽은 백제 신라인들일 뿐입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시길..
1034 2016-01-24 15:47:00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에궁 북사 해석이 잘못되었넹.. 수정합니다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焉

그 왕은(신라 왕은) 본래 '백제'사람으로 바다로 도망하여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에서 왕을 하였다.

처음 백제의 속국이었는데, '백제'가 '고려'를 정벌할 때,

혹독한 사역을 견디지 못하여, 서로 따르고 귀의하여 강성함을 이루었다. 이런 이유로

'백제'를 공격하고,(백제의 풍습을 따르고) 가야국의 속국이 되었다.
1033 2016-01-24 15:44:04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코피나님 질문입니다

전공자의 개인적인 소망?으로 전방후원분이 한반도에서 파생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실제 일본학자들은 일본의 전방후원분은 주구묘에서 진화되었다는게 통설이였고 주구묘 또한 일본의 고유묘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일본보다 더 빠른 주구묘가확인되어ㅋ 주구묘도 결국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다로 학설이 바뀐상황입니다. 하지만 현재 전방후원분 전체를 한반도계로 보는것은 굉장히 위험한 관점일수있습니다. 본디 역사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위에 언급하신 고분의 경우 유물은 교류로 볼수도 있고 도래한장인이 만든것일수도 있습니딘. 무덤의 피장자가 친한파였을수도 있지요. 해석은 다양하게 여러 각도에서 해보는것이 공부에는도움이 되나 정답을 내리고 맹신하는것은 위험하다 여겨집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소망으로 공부해선 안됩니다. 불행히도 백제 신라 짬뽕형 고분은.. 그 기원이 백제 가야 신라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짬뽕이 발명된 것은 열도에서 였습니다. 아무리 친한파라고 해도.. 백제 금동관 쓰고 죽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거따대고 제사 지낸 사람들은 또 뭐고... 여러 각도에서 해석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료와 일관성 있는 해석이 가능하냐가 중요하자고 보여지네요
1032 2016-01-24 15:37:10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코피나님 질문입니다

일본열도로 한반도인들의 대거 도래하였을것이라는 의견에는 찬성합니다. 실제로 문헌, 고고학적인 증거로 이는 확인이 된다고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도래인들이 묘제를 바꿀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졌다면 왜 백제계도래인의 고분군이 따로 있을까요?? 가야계도래인의 고분군들도 따로 구획되어 조성되었습니다. 도래인들은 왜 고유의 묘제를 고수하였을까요?

처음부터 백제인 가야인들이 하나로 합친 것이 아니라.. 어떤 계기.. 본국 백제에 대해서 아 이제 우리 무기 만들고 이런거 안할꺼야 배째.. 이 시기에 열도의 가야 백제 신라가 하나로 되어집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이해 관계가 있습니다. 백제를 고수하고 연합에 거부한 세력도 있었습니다. 좀 복잡하죠
1031 2016-01-24 15:34:56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이 짤은 좀 약하네요. 전방 후원분을 전체 정리한게 있는데... 제가 워낙이 정리벽이 없어서 날려 먹었다는..
1030 2016-01-24 15:31:51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코피나님 질문입니다

모바일이라 오타가 많네요ㅜ 후나야마고분의 경우 한반도계인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유물이 일본스럽지않습니다. 이는 한일고대사에서 더 풀어나가야할 숙제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대해 한일양구긔 연구자들께서는 다양한 의견을 보이시지만 아직은 확정지어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숙제 풀었넹.. 풀어야할 문제 많은데 일부러 숙제를 만들지는 맙시다
1029 2016-01-24 15:29:44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사실.. 저도 그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전방 후원분 인공 위성 사진을 보면 뚜렷이 어떤 방향을 나타내고 있거든요. 이것은 물론 천손 사상의 반영이라고 보는데 이게 꼭 일관되지는 않습니다
1028 2016-01-24 15:28:51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코피나님 질문입니다

후나야마고분와 닌토쿠왕릉을 예로 들어주셨습니다. 후나야마의 경우 고분안에서 확인 된 부장품이 한반도의 것도 흡사, 혹은 같게 보고 있어 근거로 드시것같습니다. 그러나 주체부에서 확인 된 가형석관의 경우는 고훈시대의 특징적인 석관입니다. 인덕릉은 제가 자세히 모르니 가볍게 언급하자면 전방후원분의 대표격이라고 할수있는 고분이라 하겠습니다. 어느 나라, 어떤시대이든 묘제란 가장 늦게 변화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님의 의견대로 도래인의 흔적으로 묘제가 바뀐것이라면 굳이 전방후원분의 형태를 사용하였을까요?? 또한 일본에 있는 고분군 중 백제계도래인들의 고분군이 현재남아 있습니다.

제 답입니다. 물론 열도의 백제 신라 짬뽕형 고분이 반도의 것과는 조금씩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현대에도 제사 지낼 때에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역시 출토되는 유물로 볼 때에 저게 백제 신라 짬뽕형 고분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묘제가 백제 신라 짬뽕형으로 바뀐 것은 이런 정치적인 이유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제계 고유의 고분도 있고 신라계 고유의 고분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신라 가야인들이 열도에 정착하고 여기에 숟가락을 얹은 것이 백제인들입니다. 이들의 정치적인 통합은 5세기 초가 될 것입니다.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하던 전성기가 369년.. 그리고 백제가 다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열세로 돌아선게 5세기초.. 이들 열도 백제 신라 세력이 배반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혼재 되는 형태로 나오는게 맞을 겁니다
1027 2016-01-24 15:19:58 2
전방 후원분의 진실.. [새창]
2016/01/24 15:07:57
http://blog.daum.net/santaclausly/11793509 보스톤 박물관 소장 인덕릉 유물은 링크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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