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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0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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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의 생각으로는, ' 불교의 공즉시색 색즉시공은 양자물리학, 실존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의 무엇이든 최소까지 해체하면 입자가 되고 그 입자는 파동을 포함한 물리 조건의 기초조건이 되는 건데, 이런 것들이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현상의 원인과 결과죠. 그런데 우리가 감정이입 하는 대상이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거나 감정이입하는 대상이 아닌 것은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합니다. 적어도 실존적으로는. 저 몇 만 아니, 심지어 태양계 어디 행성이었나, 표면을 깨 보면 바다로 가득하다고 하는데, 그 바닷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이입을 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그런데, 이런 의미 부여나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면, 저 먼 행성의 바닷속이나, 내가 소유한 자동차나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을까요? 나나, 저 먼 행성의 바다는 동일하니까요.
이 세상 모든 것은 동일한 입자로 구성되어 있고 내가 실존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바라 본다면 나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저 먼 행성의 바닷 속의 현상이나 동일하다는 겁니다.
우주도 그런면에서, ' (누군가의) 인식된 범위 안에서 스스로 확장하는 존재 ' 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한하다는 게 이게 제 생각의 한계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또 그렇다고 우주의 유한성은 이해가 안 되거든요.
양자 물리학에서 양자얽힘이나 양자중첩 현상이 우주의 무한한 확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정말 학자들이 들으면 ' 문외한의 한계가 느껴지는 군' 이라고 하겠습니다만,
누군가에 의해 인지되는 순간 그 한계의 범위가 넓어지고 우주가 스스로 그 한계의 범위를 확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마,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해 봤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