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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08: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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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가 2학년때였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비강에 생긴 종양이 뇌쪽으로 퍼져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못 깨어나셨죠.
수술 직전에 병실에서 뵈었을 때, 머리를 다 밀고 절 보며 미소짓고 계셨는데... 병실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할아버지께 가까이 가질 않았었습니다. 그게 마지막으로 뵌거였죠.
장례식 후 49제때였나 천도굿을 한다고 한밤중에 산을 올라갔어요.
어렸던지라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곳 옆에 넓은 평상이 놓인 원두막에서 굿을 했지요.
밤 12시 무렵에 막 꽹가리 치면서 무당할머니가 뛰면서 울고불고 목소리도 바뀌고, 호통을 막 쳐서 무섭기도 하고, 여름이라 날벌레도 날아댕기고, 늦은시간이라 졸려서 저랑 제 동생은 모포 뒤집어쓰고 자다깨다 했던 것 같아요.
굿 시작하면서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그래서 분위기는 더 을씨년스러웠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비가 막 미친듯이 퍼붓기 시작해서 굿이 중단되었어요.
아버지가 저랑 동생 막 깨우면서 가야된다고 해서 비몽사몽 일어나서 가는데...
올 때 그냥 참방참방 건널 수 있던 개울이 급류가 되어있는거에요.
로프가 건너편까지 연결되어있어서 그걸 잡고 건너는데 깊이는 어렸던 제 허벅지까지밖에 안 왔지만 물살이 세서 순간 휩쓸릴뻔했다가 뒤에 있던 어른이 잡아줘서 무사히 건넜어요.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어른들끼리 '비 예보는 없었는데 이게 무슨일이야?' '그러게요.' 이런 대화 하며 가시는데
무당할머니랑 딱 눈이 마주쳤어요.
'할애비가 손주를 데려가고 싶었던거구만.'
쯧쯧쯧. 무당할머니 혀 차는 소리랑 저 말이랑 날 보던 굳어진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