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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8 21: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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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있어서 '구현'이 없는 아이디어는 의미가 없다는데는 동의합니다만, 그렇다고 아이디어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는데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술의 본질이 표현이고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본다면,
이는 '대화'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만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대화, 즉 커뮤니케이션은 성립하지 않죠. 예술 또한 아이디어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동일한 뜻이라도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청자에게 어떻게 받아 들여지는지는 천차만별일 수 있고, 그렇기에 고대로부터 수사학, 웅변 같은 기술들이 발전해 왔죠. 예술에 있어서 기법, 기교들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말의 기술이 아무리 중요하다한들, 그것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배제하면 남는 것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예술에 있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의미를 배제하고 결과물만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말을 들을 때 배경지식이 없어도 언제나 이해가능하고 평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물론, 맥락을 전혀 모르고 어떤 작품을 접하더라도 얻을수 있는게 전혀 없는것은 아닙니다. 마치 자신이 전혀 모르는 타국의 언어를 듣더라도, 그 사람의 억양, 표정과 말투로부터 그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음색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이를테면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프랑스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중국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중국어를 흉내내는 개그에 웃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언어를 모르면서 어떤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죠.
예술, 특히 미술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사상, 이념, 가치관 등등... 예술은 시대정신을 배경으로 탄생합니다.
이를테면, 이집트 미술이나 중세 미술, 불교 미술에서 그 시대를 지배한 종교적 이념에 대한 이해 없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 존재하죠.
마찬가지로, 현대 미술 또한 결과물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맥락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기존의 미술과 현대미술의 차이는, 그 맥락이 얼마나 보편성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죠.
맥락이 보편적일수록 이해하기 쉽고, 특수성을 띌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이 됩니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산업이 분업화 되어 있으며 옹갖 문화가 뒤섞여 공존하는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완벽히 보편적인 컨텍스트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보편성을 추구해 '대중문화'라고 불리는 예술분야조차,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는 없고, 각자의 틈새시장을 추구하죠.
때때로 현대 미술은 스놉 효과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상업적이고 저속한 대중문화와 분리되기 위해 더욱 난해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죠.
부유하고 고상한 상류층만이 이해할 수 있는, 또는 그글 조차도 스스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마치 이해하는 것처럼 포장함으로써 돈으로 자존감을 구매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특수한 맥락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