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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2 23: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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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창제 이후 관공서에도 적극 사용하려 했으나
사대부들(관료층과 유학자 유생 중심)이 반대가 극렬해서
조선 전기에는 공식적인 문서에 쓰이지 못했음.
그러나 중요하게 백성들에게 알려야 할 것은
한자로 된 공식 벽보(대자보 포함) 옆에
언문(한글) 옆에 같이 붙이기도 했음.
이러한 공식적인 내용과 상관없이
사적으로는 왕과 왕족은 물론이요
사대부들 사이 특히 가족간에는
신분 고하를 물론하고
한글을 아는 자끼리
한글로 서신 왕래를 일반적으로 했음.
조선 중기 이후로는
소설이나 수필, 기행문 형식의
한글 문학이 자리 잡았으며
백성들 사이에서는
사적인 의사 소통을
문자로 할 때에는 한글이 우선이었음.
사회적으로는 한자를 많이 ㅆ는 것이
지식인 티를 내는 용도이지만
사적으로 한자를 모르는 여성(엄마, 아내, 여동생 등)과
어린 아이들과 문자적 교류를 하려면
반드시 언문(한글)을 써야 했던 것인데,
한자 많이 쓰면서 지식인 층 구별하려던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풍토가 1980대까지 이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