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krippy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회원가입 : 11-01-21
방문횟수 : 4089회
닉네임 변경이력
일반
베스트
베오베
댓글
24 2011-02-28 20:42:58 0
[BMW] 될성부른 고문관 [새창]
2011/02/28 19:33:49
TV 봐도 되요? 다나까 요즘은 안쓰나요?
23 2011-02-28 19:29:26 0
오유에서 가장 사람없는 게시판? [새창]
2011/02/28 19:23:57
철학.
22 2011-02-15 07:45:11 0
(동영상) 내인생 최고의 광고 [새창]
2011/02/15 02:03:06
영국이나 호주광고인가봐요? 안전벨트 모양이 후측운전자석 모양이네요?
21 2011-02-10 06:13:54 0
물에 녹는 접착제 같은 건 없나요? [새창]
2011/02/10 06:02:20
조립식 같은건 접착력이 약하면 안붙어 있는데...

(양면)테이프나 딱풀/밥알로는 해결이 힘드신가요?

사용하시려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면 더 많은 의견이 올라올것 같네요.
20 2011-02-10 05:57:19 0
전도의 논리 [새창]
2011/02/10 03:05:14
아. 제 글은, 아잉님의 본문에 대한 해명보다는, 부분적으로 오해하시고 계신것이 느껴저서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기독교라는 종교자의 입장을 살짝 해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셨으니, 또 뜻하지 않게 종교를 살짝 옹호해 볼까 합니다.

결과론적으로는 죽기 직전 회개나, 지금 당장 회개나 차이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진리라는 가정 하에, 전자나 후자나, 결국은 천국행티켓 획득입니다.

뼛속까지 공리주의자 라고 하시면 할 말 없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는건 그닥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과정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람은 죽습니다만 지금 죽으나 50년 후에 죽으나 같은건 아니지 않습니까?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종교가 진리가 됩니다. 그리고 많은 종교인들은 종교 안에서 위안을 얻고 때로는 삶의 의미와 원동력을 얻습니다 (이게 올바른 현상인지는 제쳐두고 갑니다). 그럼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이 좋은걸 하루라도 더 빨리 한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고 싶은 심정일 수가 있습니다.

오십보 백보, 도망간 결과는 둘다 도망자입니다만, 도망의 의미를 따지고 보면, 백보 도망간 사람이 더 뛰어난 도망자겠죠.

이십대에 결혼하나 육십대에 결혼하나, 둘다 결혼은 한것이지만, 그 기간과 그 사이의 행동, 삶의 방식에 있어서 분명히 차이는 날껍니다.

종교인들의 최후 보루가 죽어가는 자에게 회개를 권유하는 것이고요 (가끔가다가 권유라기보다는 공포감으로 위협을 하는것 같다는 분들도 계시다지만, 제가 병원에서 봉사할때 뵌 분들은 꽤나 점잖으셨네요). 일반적인 형태가 하루라도 빨리 진리를 퍼뜨리고 싶은게 아닐까 하네요.

일단, 종교인들의 심정과, 결과만 놓고 볼게 아니란건 많이 부족하지만 일단 설명은 드린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종교인들의 선교활동에 약간은 지쳐있습니다. 제가 선교활동을 하는 분들께 단 하나 존경스러운 것은, 그분들의 열정입니다. 자신이 믿는 무엇가를 위하여 고생하시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다만 그 믿는 무언가가 제 생각과 안맞는게 문제긴 하죠.

종교인들이 귀찮게 전도하는 이유는 대충 두가지로 생각이 드네요:

첫째로, 그 방법이 의외로 먹힐지도 모릅니다. 사람 열 귀찮게 해서 한명이라도 건지면, 계속해서 한명씩 건지기로 밀고나가는 것일수도 있죠. 아주 효과가 없다면 안할것 같습니다만, 예전부터 이런식으로 어째어째 사람들을 교화시켜 온 전통적 방법으로.. 먹히는것 같네요. 부정적 시각의 부작용도 있지만요.

둘째로, 더 좋은 방법이 없거나 모르는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도 참 별의별 방법이 있습니다. 문앞에 성경책 들고와서 구원받겠냐고 묻는 몰몬교부터, 인터넷을 하는데 왠 여자사람이 행복해하는 동영상이 흐르더니 마지막에 전 기독교입니다~ 라는 멘트가 뜹니다. 티비에서도 광고에 뭐. 다양합니다.

참고로 저희가 일상에 보이지 않는 전도/선교활동도 많습니다. 몽고나 중국, 멕시코 등,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지역에 가서 집을 지어주고 (부가옵션: 교회) 사람들에게 영어도 가르치면서 (부가옵션: 성경공부), 가끔 무료로 식사도 대접합니다 (부가옵션: 식기도). 물론 해외에 국한된건 아니고 국내에서도 비슷한 활동들이 있겠죠.

((저 또한 무신론자로서 종교인들과 자주 대립을 합니다. 다만 종교인들이 선의로 하는 행위인걸 알고, 그 열정에(만) 경의를 표해서 상대해 줍니다. 저도 귀찮습니다만, 그들의 열정에 저도 제 열정으로 반박할 뿐입니다. 저도 선의를 가지고 바른 진리로 이끌어 주려고 말이죠! ㅋㅋ))
19 2011-02-10 03:28:02 0
전도의 논리 [새창]
2011/02/10 03:05:14
아.. 수정이 없는 관계로..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라는 영국 교수가 [모든]종교와의 전쟁중에 있습니다. 깊은 철학적 사고는 아니지만, 논리적인 반박을 합니다.

결국 추천해드리는건: 기독교의 자기방어는 종교의 인증론 서적을 찾아보시면 그들의 디펜시브 실드와 합리화를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킨스의 책/영상도 추천 드립니다 (Youtube도 꽤나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TED 에도 초빙된게 올라와있고요).
18 2011-02-10 03:21:36 1
전도의 논리 [새창]
2011/02/10 03:05:14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제 관점에서 약간의 해명을 하겠습니다.

일반 신도는 '믿음' 으로 전도합니다.

신도가 신을 믿는 이상, '내가 천사' 라는 마음으로 전도 하려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지옥에 가는것을 막아주려(?)고 전도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예로, 모퉁이를 돌면 지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할때, 기독교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모르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고 이를 알리려 하는 행위라고 보시면 됩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나름 순수한 동기로 전도를 시도합니다. 물론 귀찮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그리고 기독교인 중에는이 아니고, 왠만한 크리스쳔이라면 죄을 지은 자라도, 죽기전에 회개하면 천국에 간다고 하는게 정상일 껍니다. 감옥이나 병원 중환자실에 신부님이나 목사님들이 계신것도 이 때문인 이유가 많죠. 죽기전에 회개하고 그 인생의 죄의 사함을 받아서 천국에 가라는 거고, 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혹시나 사후세계의 두려움에 종교를 승인합니다.

기독교 교리 자체가 갓 태어난 아기도 아담과 이브에 의한 원죄 (죄도 상습된다고 하네요!) 때문에 죄인이라 보고 있습니다. 결국 신의 은총 (Grace of God)이 없이는 바로 살 수 없으며, 예수의 피로서 모든 죄가 용서되며 생명책에 이름이 오른다(천국행 티켓)고 합니다.

위의 글들은 그냥 기독교인들이 나쁜 뜻으로 전도를 하는건 아니라고 약간 미미한 정보를 드린것이고요. 전도 귀찮은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때 교회는 많이 이끌려 다녔지만 지금은 무신론자로서 전도를 자주 받는 입장이거든요.

저한테 꾸준히 전도하시는 분들은 인증론이라고 따로 공부를 해서 준비해 오신답니다. 항상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면서 토론하고 헤어지죠~ 이정도면 양반급 전도인듯요! 꽤 많은 일반인들이 인증론에 혹하고 크리를 받기도 합다고 들었어요.

시간이 되신다면, 세계의 종교에 대해서 읽어보는것도 재밋는것 같습니다. 동/서양 종교학을 예전에 전공때문에 살짝 배웠는데, 생소한 종교들에 대해서 대개적으로나 배워놓으니 적어도 여러 사람들 만나서 얘기할때 득이 되지 해가 되는것 같진 않더군요.
17 2011-02-09 18:16:27 1
베스트간 교수 vs 기독교 참 웃기죠 [새창]
2011/02/08 22:47:57
베오베 간 글: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46046&page=3&keyfield=&keyword=&sb=

DSGN 님/
수학자의 확률계산 인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자가 확률계산 한거는 있었죠. 그 철학자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찾지도 못하겠네요.

| 신을 믿지 않는다 | 신을 믿는다
========|=============================|===================================
유신 | 죽으면 지옥행(해) | 죽으면 천국행(득)
| |
==========================================================================
| |
무신 | 소신껏 살아간다(득) | 살아서 시관과 돈을 조금 소비(해)

^ 이런 논리로 [크리스쳔의]신을 믿는것이 신을 안 믿는 것보다 확률적으로 안전하다, 라고 한 방법도 있었죠.

위 방법은 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신이 존재 한다와 존재하지 않는다의 가정 하에 믿고 안믿고의 이득과 손해를 따졌을때, 확률적으로 손해와 이득의 차이가 심하게 나기 때문에, 신의 존재여부를 불론하고 신을 믿는게 더 안전한 방법이다 <<-- 라고 했더랬죠. 하지만 철학은 이런것 보다는 차라리 신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데 관심이 있겠죠 (중세철학자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요즘은 포기한듯 하네요).

베오베간 교수v종교 얘기도 그렇고 이 도표도 그렇고, 요즘 철학하는 사람들에겐 큰 관심을 끌만한 얘기는 못됩니다. 다만 기독교의 인증론 (신의 존재 증명) 에서나 이에 반박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고, 일반인들의 흥미는 충분히 끄는것 같습니다.

베오베의 글이 철게에서 나온게 아니고 유게에서 나온것이 그 진지성을 살짝이나마 대변한다고 봐야죠. 여기에 같은 글이 올라왔다면 추천은 모르겠지만, 상당한 지적을 받았을테니깐요.
16 2011-02-07 23:11:41 1
토론거리 2개요 [새창]
2011/02/07 16:08:16
사회관계는 패스하겠습니다.

닭과 알의 문제 또한 패스하지만 지적사항이 있어서 댓글을 답니다.

아마도 닭과 알의 문제는 한국에서 발생한 문장은 아닌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닭과 달걀 이라고 하는데요. 달걀 (닭의 알) 이라는데서 외국 문장과 살짝 다릅니다.

영어로는 Which came first, Chicken or Egg? 인데요 단어의 부족으로 달걀이 아니라 그냥 알이라고 표기됩니다.

다른분들께서 진화론이라고 들으신 것은 영어 문장을 토대로 할때에 "닭 이라는 종(spicies)보다는 알을 낳는 종자가 먼저 있었다" 를 전제로 답을 낸 겁니다.

즉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여기서 언젠가 알을 낳는 동물이 생겨났고 (여기서 "알" 이 먼저입니다), 그 알을 낳는 동물들이 묻으로 올라오고, 파충류와 양서류등이 진화하고 조류가 생기고, 그 조류의 진화중에 지금의 닭이 생겨났기 때문에, 닭보다는 알이 먼저라는 거죠.

원문의 한국 문장처럼 닭과 달걀을 두고 따진다면 영원한 굴레, 파라독스에 빠지게 됩니다.
15 2011-02-07 22:29:53 1
윤리학 - 어떤 행동이 '올바른 것' 인가? [새창]
2011/02/07 22:20:03
칸트의 의무론 입니다.
14 2011-02-07 22:25:17 1
행복과 고통? 고통이 없으면 행복할까요? [새창]
2011/02/07 20:03:05
괴로움의 부재가 행복일 필요는 없습니다.

괴로움의 부재는 괴롭지 않음 이겠죠.

행복의 부재 또한 괴로움일 필요는 없습니다.

행복의 부재는 행복하지 않음 이겠죠.

행복은 고통이 없이도 다다를 수 있고 지속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다른분들 말씀처럼 쓴맛을 알아야 단맛도 안다고 합니다만, 쓴맛은 쓴맛, 단맛은 단맛입니다. 이는 별개로 느껴지는 것이지만, 두가지를 경험하게 되면 비교하게 되고, 어느쪽을 더 선호하는줄 자각하게 되죠. 하지만 쓴맛을 모르기 전에 단맛을 못 느낀건 아닙니다. 다만 쓴맛을 느낀 후에 "난 단맛이 더 좋아" 라고 자각을 하게 되는거죠.

여기서 행복을 자각하지 않음은 진정한 행복인가? 라는 질문이 나올수 있겠네요. '진정' 한 행복이란 자각을 해야 '진정'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고통을 경험해야 할까요? 고통은 자각의 한 매개체 이지만 유일한 매개는 아니라고 봅니다. 행복과 행복의 비교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탕과 초콜렛의 단맛을 비교하고 자각이 가능하듯이요.

여기까지 써놓고 본문을 다시 읽어보니 행복의 정의를 물으신 것이였네요. 아하하... 딴소리를!

행복이란, 현재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정의라면 고통이나 쾌락 없이도 도달 가능하다는 제가 위에서 한 말과도 일치하는것 같네요. 부모가 아기를 보고 좋아함은 행복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살짝 부족한 느낌이 있네요. 행복과 기쁨과 희열 등, 다 다른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일단 부모의 기쁨도 현재의 만족이라는 부분적 일치라고 봐도 제가 억지를 부리는건 아니겠죠?

찍찍이님께서 사전의미를 달아주셨듯, 차지 않거나 모자람 없이 마음이 푸근함이 현재의 만족에서 오지 않나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13 2011-02-07 18:41:12 1
[펌]한나라당 골수 지지자인 아버지를 설득해 낸 딸의 편지 [새창]
2011/02/07 18:10:51
무플 베오베인가요?!

TL;DR
12 2011-02-07 18:26:40 1
In regards of 'thinking'. [새창]
2011/02/07 15:22:04
Hello, a little late in joining your discussion here.

About death, I would say it is too narrow to define it as "incapability to think." While I will avoid the very complex question of defining "life" (is a virus alive? is an unconscious person dead?), I would still argue things that cannot "think" as the author defined may still very well be alive, therefore not dead. For example, plants are without centural nervious system (CNS) and therefore, physiologically unable to think. But plants are very well alive. There are plenty other organisms (all alive) that lack CNS, therefore without the ability to think. I would say a more refined terminology is required.

Quite fitting to your user identification, your ending reminds me of Rene Descartes' "Cogito Ergo Sum," or "I think, therefore I am." One big difference between R. Descartes, and the author is that while Descartes used such thinking to twart cynicism that this may be a dream-world (this world is not real, or that our existance is not real. Think of the movie Matrix); the author used it to prove thinking as an antithesis to death, therefore life. Again, this may be problem because with this line of thinking defines other living things as non-living as stated in above paragraph.

Overall, the term "think" needs to be more specific, in order to answer any philosophical inquiries. If thinking involves any sort of brain activities, then certainly the question about sleeping person would never have come up. In one of the replies I saw that the complexity of thinking process may depend on experience or other factors. Does that mean an animal given the same experience as humans would be able to think on the same level as humans?

On the superiority of human versus animals, again, I will pick on the issue of lacking specification. Humans and animals are superior in different aspects. Humans have better logical intellect, while animals (depending on spicies) have better physical attributes. While different lifeforms have different strengths and weaknesses, all living things hold a same inherent value for their existance. This is a crucial point in environmental ethics.

It would be dangerous to say humans are superior to other life forms, because it may give rise to further reasoning and justification to abuse or control those inferior to humans, because we know better and can do better than nature.

I will end here before I go on. Sadly, not enough time for me.

그럼 좋은 하루 되셔요~
11 2011-02-06 21:25:23 0
심심해 하시는 철학자분들을 위해 고뇌할거리 하나 투척! [새창]
2011/02/06 19:49:29
일단 운명이란 단어가 약간 꺼림칙하기 때문에 (마치 Determinism의 정해진 운명이란 해석이 가능해서요) 그냥 한 사람이 "일생동안 사는 길/행동" 이라는 해석 하에 얘기를 진행하겠습니다.

자아라는 단어 또한 제가 살짝 생소해서 더 자세한 정의를 부탁드리고 싶네요. 위에 동물의 예를 드셨는데, 동물들 중 코끼리나 돌고래는 거울속 자신을 알아본다고 하니, 그것을 자아로 치는 건가요? 즉 self 의 개념이 있다는 말인데요. 아니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 성찰을 하는 자아를 말씀하신건가요.
==========================================================================

1. 제 입장 (이는 믿의 "인간의 본능? 본성?" 글에 단 댓글과 같은 맥락입니다)

일단 제 입장은 사람이 사는 방식은 유전+환경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입니다. 여기서 유전은 제한된 가능성을 이야기 합니다.

==========================================================================

2. 식물로의 예 (제 입장 설명)

먼저 자아를 배제하고 쉽게 식물로 부터 예를 들겠습니다. 나무의 씨앗이 있습니다. 이 씨앗은 씨앗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갼략 입니다만) 씨았으로의, 그리고 새싹을 통한 나무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씨앗이 유전자(genotype) 입니다. 이미 씨앗인 이상, 이 씨앗이 새가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반복하지만, 유전자는 제한된 가능성을 이야기 합니다.

환경은 이 유전자의 가능성을 발현(phenotype) 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씨앗의 예에서는 대기, 토양, 햇살, 수분 및, 기후와 해충, 인간과의 근접도등 씨앗 이외의 거의 모든것이 직/간접적으로 포함됩니다. 중요한 것은 씨앗 그 자체만으로는 가능성으로 끝나지만. 환경이 가능성을 현실로 발현 시킨다는 것 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명확히 해 둘것은, 환경이 비록 가능성을 발현시키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고 하지만, 환경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가능성을 골라서 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환경이 바닷속 소금물 뿐이라면 씨앗은 나무로서의 가능성을 발현하기 보다는, 해저생물체의 먹잇감으로 발현되게 됩니다. 하지만, 충분한 토양과 수분, 그리고 햇살이 있고, 광합성 작용을 지원하는 대기가 있다면 그 씨앗은 나무로서의 가능성을 발현해 나갈 것입니다. 허나, 나무로서의 가능성이 발현되면서 부터는, 점점 환경의 역할이 무뎌나가기 시작합니다. 새싹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었떤 산들바람이, 조금이라도 나무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 더 이상 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비록 햇빛의 방향과 바람의 강약, 방향이 나무의 가지가 어느 방향으로 남는가에 영향을 줄지 언정, 나무는 토양과 수분등을 기반으로 갖추어진 나무로서의 발현을 위하여, 모든 방향으로의 가지를 뻗으려 할 것입니다. 즉, 환경은 가능성의 발현의 전제조건이지만, 또한 절대적으로 가능성을 통제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

3. 동물로의 예 (댓글에서 개의 생각)

씨앗의 예로 유전+환경 으로 발현되는 개인의 가능성을 얘기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식물 외의, 동물과 인간은 어떨까요?

일단 포괄적으로 볼때, 본능이나 자아 또한 유전적 가능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봅니다. 즉 본능과 자아 또한 가능성이 발현된 것이라는 것이죠.

개가 위험에 빠진 주인을 도우려는 것은 본능이라고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생존본능 이라고 하면 자기 보호(self-preservation), 식욕, 성욕-번식으로서의 유전자 분포, 즉 자기 영위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본능의 발전단계가 집단구성 (생존전략) 집단의 보호 (공동체 보호로서 자신을 보호) 등입니다.

이쯤에서 인간과 동물의 범위를 구분짓게 됩니다. 개가 "이 사람이 나한테 밥을 주니까 살려야지 내가 먹고 산다" 라고 느낄리가 없습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해석입니다. 동물의 경우 고위의 이성적 사고나 판단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즉 개가 주인을 구함은 생명을 근본적 선으로 인식하고, 이를 막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건 쉽게 납득하실 겁니다.

일단 동물은 본능에 충실하다 (즉 자유의지가 없다)는 보수적 입장으로 말하자면, 개가 주인을 지킴은 그러고 싶어서 입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없이, 본능적으로 그러는 것이라 봅니다.

==========================================================================

4. 외부의 무언가 모를 힘? (원문에서)

문장 자체가, 뭔지 모른다는 표현으로는 쓸게 없군요. 외부의 영향이라면 환경에 포함시켜 버리겠습니다.

==========================================================================

5. 해명

굉장히 방대한 질문을 해주셨군요. 철학 외에도 사회학이나 심리학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만한 질문인데요.

댓글에 추가로 동물의 자아나 본능에 대한 질문까지 추가하셨군요.

일단 "자아"를 "유전과 환경속에 나타는 발현현상"으로 정의함으로서 글쓴이님의 1번 옵션을 지워버린 꼴이 되어버렸네요.

맹모삼천지교 관련 댓글또한 세부적이지 못해서 불편합니다만, 맹자의 입장에서 맹모는 환경에 포함되게 됩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유전을 3번째 옵션으로 친다고 하셨는데, "맹자의 어머니의 '운명,자아'가 맹자의 운명을 가른것이니.." 라고 하신건 제가 해석하면 "맹모의 삶이 맹자의 삶을 가른것이니, 이런 경우는 유전에 속할 수 있을까요? 라는 해석이 나오는데.. 약간 헷갈립니다.)

==========================================================================

제가 정신적 여유가 없어 부족한 댓글 달은것 너그러이 봐주시고, 글쓴님의 의문에 조금이나마 새로움 시점을 더했다면 좋겠네요.
10 2011-02-06 09:36:28 0
사색의 마지막 장, 자살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새창]
2011/02/06 01:09:24
생은 절대 선의 하나입니다.

이 절대적 선을 거스르는 행위로서 자살은 보편적으로 좋지 않게 봅니다.

하지만 윤리적 시스템을 어떤쪽을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답이 나올 수 있는데요.

칸트쪽 같은 의무주의? (duty theory) 쪽은 자살은 절대 안되는 거다라고 하겠고.

공리주의쪽은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자발적 희생(그래서 자살) 을 선한 행동이라고 하겠죠.

저도 예전엔 자살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었고, 일본 사무라이들의 배가르기(?) 등을 명예롭다 라고 하는 것에서 착안하여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최근엔 무조건 안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네요. 길게 설명한 문장력은 없고.. 그저 '생' (life)를 더욱더 절대적 선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봐야겠네요.

예를들면, 암말기로 시한선고를 받은 사람이 의사에게 부탁하여 미리 고통없이 죽을 권리가 있는가? 에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또한 전쟁터에서 큰 중상을 입은 혼자 남은 병사가 구출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을 줄이기 위하여 자살을 택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도 그르다고 생각합니다. (권리를 따진다기 보다는,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지금 사는게 힘들다고 자살하는 것도 그르다고 봅니다. 저 한때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서도요.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 21 22 23 24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