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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 21: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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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형 과장. 나이 38세. 자기관리에 철저한 독신주의자이며,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남에게도 엄격한 이성적인 사람. 언제나 말끔히 세탁된 정장을 입으며 지각은 물론이고 아파서 조퇴 한 번 안 해본 바람직한 직장인상.
그러나. 뒤집어 말하자면 지독한 노총각 히스테리. 부하직원들의 근무태도는 물론 복장에까지 남다른 오지랖을 선보이며 휘하의 직원들을 모두 자신의 복제품으로 만들려는 사람. 보통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쓰이는데, 이 인간을 보면 그 히스테리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그의 별명은 ‘T-1000’. 로버트 패트릭이 안경을 쓰고 이마가 조금 덜 까졌다면 이미지가 비슷할 거다.
오늘도 한 명 제대로 걸렸다. 죄목은 ‘지시사항 불이행.’
그러나 이번에는 당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조미영. 입사 1년 차. 무식해서 용감한 건가, 아니면 그냥 용감한 애가 무식한 짓을 하는 건가. 이제 2년차에 접어드는 사원과 과장 사이, 산 넘고 물을 건너야 그나마 곁에 가볼까 싶은 상사의 갈굼에도 시선을 피하거나 움츠러드는 일이 없다.
“신 대리가 조미영 씨한테 전달해두고 갔다는데, 왜 조미영 씨는 모른다는 겁니까?”
“저는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뭘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전달받은 바가 없습니다.”
불룩. 과장의 이마에 핏줄 하나가 솟았다. 과장의 사진을 찍어놓고 분노의 인간 온도계라고 이름 붙이면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 것 같다.
성냥 대가리 같은 과장의 얼굴을 보는 건 큰 재미지만 저대로 뒀다간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과장의 성격으로 미루어보건대, 자세히는 몰라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말로 큰 문제였으면 말단 사원인 조미영 씨를 갈구고 있을 리 없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수습하느라 바쁠 테니까. 기껏해야 신 대리가 외근 나가면서 뭣 좀 전해주라고 했던 것에 약간의 오차가 있었을 것이다. 신 대리가 거짓말 같은 걸 할 사람은 아니고, 정신이 없으니 말한 적이 없는데 했다고 착각하는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조미영 씨가 계속 저런 식으로 뻗대면 불똥은 신 대리에게 튈 것이다. 과장도 체면이 있으니 언제까지 말단 사원을 붙잡고 말씨름을 할 수는 없을 거고, 신 대리가 외근에서 돌아오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
그렇다면.
“아이고! 깜빡했네!”
조미영 씨를 제외한 과장 및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다. 최대한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조미영 씨는 그때가 돼서야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뭐야 최 대리는?”
“아이고 과장님. 그거 전달받은 게 저인 거 같은데요.”
“뭐?”
과장의 한쪽 눈썹이 찌그러졌다.
“아까 신 대리가 나가기 전에 조미영 씨한테 뭐 좀 전해달라고 했었거든요. 그냥 대충 말하면 알 거라고. 근데 제가 전달하는 걸 까먹은 것 같습니다.”
흔들리던 과장의 눈동자가 1초 안 되는 순간 잽싸게 조미영 씨의 뒤통수를 훑고 제자리를 찾았다.
“커흠. 뭐?! 아니 그걸 인제야 얘기하면 어떻게 해!”
“아유, 죄송해요. 저 오늘 점심도 못 먹고 과장님이 시키신 거 했거든요. 조미영 씨 들어오면 말해줘야지 하다가 일에 집중하느라 온 줄도 몰랐습니다.”
“크흠! 최동명 대리! 아무리 집중을 하고 있어도 그렇지, 자기 테리토리 안에 들어온 일이면 책임감을 갖고 팔로우를 해야 할 거 아녜요!”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전달해서 필요하신 거 받아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됐어요! 어차피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까, 신 대리 들어오면 내가 따로 체크하겠어요. 최 대리는 그냥 하던 거나 하세요.”
과장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조미영 씨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내 얼굴에 박혀 있던 동료들의 시선이 뽑히는 걸 느꼈다.
유일하게 조미영 씨만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눈짓으로 그녀의 자리를 가리켰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행여나 질질 짜는 건 아닐까 싶어 슬쩍 곁눈질을 했다. 우는 기색은 없었다. 애초에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긴 하지. 누가 감히 손 과장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할 말을 다 하겠어?
다만 노트북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두고 멍하니 책꽂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과장의 갈굼을 당하면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한동안은 혼이 빠져나가 버리니까.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도 신 대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과장은 신 대리와 이야기를 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잊은 건지, 퇴근 시간이 되자 칼 같이 짐을 챙겨 일어났다. 보통 독신에 워커홀릭이면 퇴근 시간도 잊고 일한다던데, 저러면서도 윗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걸 보면 대단하긴 하다. 그 스트레스를 우리한테 풀어서 균형을 맞추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역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휴대전화가 몸을 떨었다. 이 시간에 문자나 전화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기껏해야 준호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 역시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이후로는 연락이 뜸하다. 나쁜 놈.
휴대전화를 흔든 건 한 통의 문자였다. 모르는 번호. 그러나 내용을 보고서 누가 보낸 건지 알아차렸다. 회사에서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니까.
[선배, 벌써 지하철 타셨어요?]
이렇게 묻는 의미가 뭘까. 붙잡아 놓고 고마웠다고 인사라도 할 셈인가. 으으 닭살. 안 봐도 비디오다. 이제 갓 연기를 시작한 아이돌과 플롯이 뭔지도 모르는 각본가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공감 –100%의 훈훈한 대화 장면. 사양이다.
그러나 조미영 씨가 나한테 고마워 한다는 건 알겠다. 문자를 무시하기도, 그렇다고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기도 난감한 상황. 자유로운 손으로 마구잡이로 얼굴을 문질렀다. 뭐라고 보내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얼버무리기 교과서가 있다면 반드시 실렸을 법한 문장을 적었다.
[네. 오늘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과장님 원래 그래요. 내일 봬요.]
문자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지하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두어 걸음 다가갔을 때였다.
“선배!”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앳된 인상의 여성 한 명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그녀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두드렸다.
“어... 으... 그러니까...”
숨을 고른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커피색을 닮은 밤색 머리카락이 뺨과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혹시 왜 거짓말을 했냐고 추궁할 셈인가? 최대한 얼굴에 티가 나지 않게 주의하며 적당한 변명을 쥐어짰다.
“그게 그러니까요...”
“커피 드시러 갈래요?”
“넹?”
나도 모르게 고등학교 시절 메신저에서나 쓰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커피?”
“네. 커피요.”
“어... 커피를 먹으면 내가 잠을 못 자는데...”
멍청이! 자판기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인간이 그런 말을 하면 씨알이나 먹히겠냐!
그러나 조미영 씨는 나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짓궂은 미소를 띤 채 그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 음... 딱 한 잔만...?”
그러자 그녀가 꺄르르 웃었다.
“뭐야~ 2차까지 안 가요! 선배 말대로 우리 딱 한 잔만 하고 해산해요.”
나는 모든 걸 체념하고 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궁지에 몰아넣은 사냥감을 손에 쥔 게 자랑스러운지,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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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반적인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해보질 않아서 디테일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