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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6 20: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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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님 말에 공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식민 시대와 625전란, 패망한 국토와 거기에 생존한 자들의 처절한 생존기 입니다.
이런 저런거 생략하고 이런 측면으로 볼때, 우리는 국토와 국민성이 초토화 수준으로 망가저 있던 시기였습니다만
이전의 영광을 기억하기에 다시 회귀하려는 재생활동을 했습니다.
없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던 나라의 재건이며, 그것도 더 발전한 민족의 부활 이었습니다.
해서 식민시대를 이겨낼수 있었던 겁니다. 주최성과 존재의 당위성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국가는 국토의 회복과 발전뿐만이 아니라 가난과 투쟁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상태와, 절망
등으로 만연한 대다수의 국민들의 의식의 회귀와 발전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혼란중에 혼란을 극복하는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무었일까요?
그것은 혼란하지 않은 무언가를 혼란에 빠진 나와 비교를 하여 정상적인것이 무었인지를 찾는 것일 겁니다.
"이래서 안되" 라는 말속에는 "이 것은 이래야 하는데, 너는 이렇게 했다" 라는 의미에, 개인적 사심과 분노와 조소 절망등의
감정이 결합된 "그러니까 너는 않되"라는 의미가 합처진 것이라 생각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발끈 하기도 하겠지만, 문제자각 의식이 생김으로 인해 "이것은 이래야 하는것" 이란 기준점을
찾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 오며 이제것 생존하고 발전해 온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거울의 도입이 분명 최단기간의 의식정의에는 도움을 주기는 하는 것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눈치보기의 영역임으로 근분족으로 자아를 성숙케 하는 도구는 될수 없는 것이었조.
인성교육에 소흘한 국가의 발전상황이 절망과 조소를 함유한 유행어를 지금까지 이어오게 하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그런 논지에서 볼때 "우리는 이래서 않되" 는 근거 없는 말이 아닌 것이조.
다만 "정말 안되"가 아니라 "되긴 하지만 늦어"라는 것은 좀 오랜 후에나 알게될 것 같습니다.
국가가 담당해야할 인성교육이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이전과 같은 교육 방식은 이전 세대에 필요한 방법였습니다만 더 발전한 교육사상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전에 사상으로 생존한 새대가 주류인 현 사회의 2차 진화는 더디고 느를수 밖에 없는 거겠지요.
지금 중국을 보면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와는 방식과 경우가 상당히 다르긴 하지만
중국은 국민 전반적으로 의식발달 수준이 낮다보니, 파렴치하거나 염치없거나, 양심에 어긋나는 사고가
수두룩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국민의식 수준을 끌어 올리는 교육을 하지 못한 공산정권의 과오였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모두가 나름의 주장을 제한적으로나마 펼수 있는 시기가 도례하다보니 국민의식 미달이 어떠한 부작
용을 낮는지 보게 된거지요. 양심불량..
이를 극복키 위해 필요한 것은 나은교육.
그러나 교육을 통한 발전은 장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단점으로 발전하는 경제속에에 국민의식 상승을 맟출수가
없기에 인민 훼방꾼 공화국 중국이 택한 방법은 더 염치없이 아시아는 중국꺼였다. 이에 반대하는 아시아국가
들은 다들 하등생물이다로 대동단결 하는 분위기, 잘난 우리민족중에 너처럼 파렴치한 넘은 매장해야한다 라는
우월 귀족주의, 등으로 개념 노선의 돌연변이가 파생하는 분위기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속 상처로 인해 피해 의식과 패배주의를 의지한 생존성향 이라는 과제가 있다면
중국은 우월주의에 의한 양심불량에 대한 해결책에 대한 과제가 남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성교육, 즉 투명한 거울의 제시와 성숙한 시야를 보장해 주는 쾌적한 환경 조성이라는 장기적 교육의
실천하나면 해결될 일인데 여가지 이유(이득과, 기득권, 정치적 포지션)들로 돌연변이적 "당장생존 전략"에만 의지하는
나약함이 문제 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