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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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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철학자의 한계였겠죠. 분석, 판단, 사고의 기반으로 조직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고위직 '책임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법철학의 영역입니다. 아히이만의 법률적 방어 논리를 확대하여 해석한 건 무리죠. 좀 과하게 던진 테제가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결국 '악의 평범함'의 철학적 산물은, 현실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완결이 났다고 봅니다.
'책 읽어 주는 남자'의 주인공 한나가 그러합니다.
그런 평범함의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수준을 '백치' '문맹' '맹목'과 같은 원시적인 수준까지 낮췄는데, 기본적으로 현대 국가 조직 시스템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인물이죠.
현실에서는 국가 단위의 큰 조직이 시스템적으로 악을 행할 때는 온갖 쓰레기들이 요직을 차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이코패스, 기회주의자, 무능력한 출세지향자.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광신자, 가학적 성취자, 전체주의자 등등 '목적'하는 바는 다르더라도, 구체적인 피해자가 적시되는 '악'한 행위에는 적극적 참여자가 핵심 줄기를 구성해야지 '효과적인' 시스템이 운용되기 때문에, 평범한 동조자 방관자들은 요직에서 배제가 됩니다.
오히려 악의 광범위한 포용성이 어디까지인지가 연구 방향이겠네요.
그러니까 더 이상의 그들의 '평범함'의 인정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해 줄까, 라는 방패는 걷어 차 주는 게 철학적 사유로도 합당하다는 겁니다.
법적 처벌 대상이 되는 수준의 '책임' 있는 자리라면 '특출함'이 기본 바탕이라고 보면 됩니다.
혹여 한나 같은 면죄의 대상 조차도 스스로 죄를 인식하는 순간에서는 처벌을 피하지 않음으로 '죄와 벌'이 완성되니 철학적으로 깔금한 결론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