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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21: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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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이었어요
당시 유행하던 필리핀-호주 연계 어학연수 가려고
공장에서 알바를 몇달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학원에서 캐드 두달 배운걸로 취업했는데
그 회사는 플라즈마로 큰 철판을 조각조각 잘라서 납품하는 ㅇㅇ정공이란 회사였고요
제가 할일은? 각양각색의 제품 조각들을 최대한 로스(버리는 부분)을 줄이도록
철판 안에 캐드로 그려넣는, 커팅 플랜(CP)을 짜는 작업이었죠
처음 업무 인수인계받을때도 그냥 CP 짜면 된다고 했는데
대충 가르쳐준 상사도 CP가 뭔 뜻인지도 몰랐고
저 혼자 캐드 사용자 모임이며 이곳저곳 가입해서 스스로 공부했네요 ㅋ
근데 한달쯤 일하다보니 이게 정말 단순한 작업이잖아요
플라즈마로 절삭하면서 녹는 오차범위만 고려해서
빈공간을 최소화해서 적절하게 제품을 배치하는 작업은
사람이 하는것보다 프로그램을 짜면 더 효율적일텐데.
그래서 더 알아보니, 파워캐드니 뭐니 하는 Add-on 방식의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고
이 회사에 맞는 프로그램을 따로 주문제작해도, 제 월급 두달치 정도 비용밖에 안든다는...
물론 그렇게 하면? 제 일자리가 없어지겠죠 ㅋㅋㅋ
그래서 일단은 입 다물고 묵묵히 일하다가, 반년쯤 돼서 목표한 금액이 모이고
그만둘떄쯤 되어서 (원래 한 반년 다닐 생각이라고 얘기했었으니)
사장에게 이 내용을 보고했어요
그냥 관심 없더군요 ㅋㅋ 뭔 쓸데없는 소리냐고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된다고 ㅋㅋㅋ
애초에 그 사장이란 사람 마인드 자체가 글러먹은 사람이었던지라..
점심시간에 그 캐드사용자 카페 같은데 게시판 눈팅하고 질문글 올리고 하는걸 보면서
"뭐허냐? 또 채팅 허냐? 유부녀 꼬실라고?" 매일같이 이딴 소리나 내뱉고
(당시만해도 허구헌날 tv뉴스에 채팅으로 불륜 어쩌고 하는 뉴스덕분에 '채팅=불륜'으로 생각하는 꼰대들 많았음)
컨테이너 사무실 안에서 바로 제 책상 뒤에 사장 책상이라
제 뒤통수 바라보고 앉아서는 담배연기 훅~ 내뿜고 (금연 3개월차라고 얘기했건만 ㅠ)
하루종일 뽕짝 트로트 틀어놓는건 애교..
사장 마누라라는 사람은 와일드한 성격에 사장보다 더한 갑질..
철판 싣고 내리고 나르는 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개처럼 부려먹다가
못버티고 그만두면 "야 또 도망갔냐? 원곡동 가서 한마리 새로 줏어와라"
이런 사람들이었던지라, 그냥 그 이상 제가 뭘 더 기여할 필요는 없겠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그만둔다 하니 사장 딸 남친이라는 놈이 그 자리 꿰차게 됨
그래도 뭔가 남기고 가야지 싶어서, 참 원시적이던 작업방식을 그동안 개선해온 업무매뉴얼이랑
결국 자체 프로그램 개발은 못했지만 그동안 카페 눈팅하며 얻은 정보와 오픈소스 이용해서
제품 종류, 수량 입력하고 실행하면 자동으로 그려주도록 세팅해서 넘겨주고 그만뒀어요
몇달뒤에 연락이 닿았는데.. 그냥 원래 하던대로 하고있더군요 ㅋㅋㅋ 노답 회사는 그냥 노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