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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0 16: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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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문근영씨의 조부님은 동아투위 소속이셨답니다.
제가 20대때 친했던 어르신이 당시 부위원장이셨고(지금은 위원장이시네요),
문근영씨의 할아버지가 위원장이셨는데
손녀딸이 연기한다고 폰 보여주면서 맨날 자랑하신다고 말씀을 ㅋㅋ
동아투위에 대해선 제가 설명하는거보단 두산백과에서 인용하는게 나을것같네요.
이분들 정말 멋진 어르신들이세요.
재작년쯤인가.. 저도 광화문 세월호 일일동조단식 나가곤 했었는데
가보면 늘 부스 지키고 계시던 최연장자 그룹 분들이 이분들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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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투위라고도 한다. 1974년 1월 8일 선포된 대통령 긴급조치 1, 2호로 인해 유신헌법을 반대, 부정, 비방하는 모든 행위를 보도할 수 없게 되자, 그해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 180여 명이 동아일보사 사옥에 모여 언론인 스스로가 언론자유를 쟁취하자는 내용의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였다.
이로써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의 광고주들을 압박하여 광고를 끊게 하였으나, 대신 전국에서 밀려든 유료 격려광고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장기적인 광고 사태와 정부의 탄압으로 결국 1975년 3월 17일 자유언론에 앞장섰던 130여 명의 기자·프로듀서·아나운서 등이 강제 해고되었다.
이들은 다음날인 18일 언론회관에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신문·방송·잡지에 대한 외부압력 배제, 기관원 출입금지, 언론인의 불법연행 거부 등을 요구하며 자유언론을 수호하고 민주화 운동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하였다.
특히 1978년 10월 24일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 4주년을 맞아 발표한 ‘진정한 민주·민족언론의 좌표’와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 사건 일지’는 언론을 탄압하는 모든 제도와 법이 철폐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제도언론에 맞서 언론의 사명을 일깨운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활동은 한국의 언론사와 민주화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1980년대 민주언론협의회와 《말》지, 나아가 국민주를 토대로 한 신문인 《한겨레》 창간에 밑거름이 되었다. 2001년 2월 19일 정부에서는 이 위원회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東亞自由言論守護鬪爭委員會]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