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
2016-07-01 21:31:02
76
외전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만남'도 잃어버렸다.
남편과 함께
모두 잃어버렸다.
전쟁이라는 것에 하루만에 모든것을 잃어버렸다.
그날 창밖으로 손을 흔들던 그의 모습이 이렇게도 선한데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들이 자라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게 되었어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기다렸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언제나 마루에서 달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어느날이었다.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나 싶어간 곳엔 까만 무언가가 있었다.
고양이었다.
나는 수척해진 고양이를 보고 통조림 하나를 까 주었다.
허겁지겁 먹는 그 모습에 옛날이 떠올랐다.
아이들과 함께, 그이와 함께 먹던 그 저녁 밥상이.
이젠 없는 그 저녁이.
미야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고양이는 집을 떠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또 놀러와라 소리는 못하고
그저 웃을 뿐이었다.
다음날, 고양이는 찾아왔다.
기특한 녀석이다.
그렇게 나는 밥을 줬고
그런게 하루, 이틀이 되고
한달, 두달이 되고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다.
이제는 아주 제 집이라고 왔다갔다 뛰어다닌다.
이름은 흰둥이로 지었다.
물론 나는 '말'을 잃어버렸으니 그저 마음속으로 부를 뿐이다.
그아이는 누구보다도 까맣지만
그 아이는 정말로 하얗게, 순진무구한 아이다.
그래서 흰둥이다.
밥시간만 되면
흰둥이는 정말 물만난 고기처럼 좋아했다.
옛날보다 시끄러워졌지만
옛날보다 행복해졌다.
오늘은 보름달이다.
하늘은 어둡고 달만이 저 멀리 떠있었다.
마루에 앉아 달을 보고 있었다.
이젠 그의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사실이 너무 서러워
눈물이 흘렀다.
무언가 옆구리가 따뜻했다..
흰둥이가 내옆에서 머리를 부비적대고 있었다.
정말, 하얀 녀석이다.
나는 흰둥이를 안고 그날을 보냈다.
그렇게 보름달 마다 흰둥이는 내옆에서 같이 있어주었다.
날이 쌀쌀해졌을때
나는 끝을 느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점점 몸에서 영혼이 나가는 듯,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제 곧 나는 죽게 되겠지.
세상에 여한이란 그뿐인 줄 알았건만
내 앞에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노는 이녀석이 눈이 남았다.
눈이 내린다고 발자국을 찍어대는 녀석을
나는 보고 있었다.
내 마음에도 어느새 발자국을 찍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돌연 그녀석이 눈으로 뛰어 폭삭 박혔다.
나는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내가 웃는 것을 보았는지
녀석은 연신 폭삭 폭삭 거렸다
흰둥이는 정말 흰둥이가 되었다
그모습이 너무나도 웃겼다.
그렇게 한바탕 웃었다.
흰둥이는 정말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고양이 이다.
그런 흰둥이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는게 너무 아쉬웠다.
몇번 시도해봤지만 안된다.
이미 '말'은 옛날에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어쩔 수 없이 나는 웃고 말았다.
고마움을 담아 웃었다.
그날 밤 나는 흰둥이와 함께 잠들었다.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눈을 뜨니 마루에 앉아 있었다.
어두운 밤이다.
보름달이 아름다웠다.
무심코 달을 보고 있게 될 정도로
그 달은 아름다웠다.
어디선가 미야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는 돌아왔다.
그는 웃으면서 저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아. 이런 얼굴이었다.
이런 목소리였다.
내가 사랑했던 그이는.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서 발돋움 했다.
그럴 것이었다.
1년전의 나였다면.
하지만 그 미야 소리에 나는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그런 나를 보며 기다리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에게 흰둥이 얘기를 해주며 흰둥이를 바라보고 있다.
떠나기 전에 흰둥이에 못한말이 너무 많았다.
내 아들이라는 말도 해주지 못했고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흰둥이는 나를 생각해 매년 우리집에 찾아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런 내 아들이다.
이 집이 허물어지기 전 마지막 날.
흰둥이는 우리집에 찾아왔다.
그리곤 내 묘소에 힘들게 올라
묘소 앞에서 웅크려 울고 있었다.
나는 그런 흰둥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안아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에 보답하듯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눈을 쌓였고
세상이 모두 하얗게 물들었다.
흰둥이도 하얗게 물들었다.
---------------------------------------------------------------------------------
나는 눈을 떴다.
그곳은 마루였다.
하얀 사람이 나를 안고 있었다.
이 따뜻한 품속은 할머니다.
그걸 알게 되니 마음이 놓였다.
옆엔 어떤 남자도 같이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아름답게 보름달이 떠 있었다.
모든 것은 꿈이었던 것일까.
"하고싶은 말은 정말로 많지만,"
"우선 이 말을 하고 싶었어."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잘 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