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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0 0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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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도나 추모의 뜻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신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인간스러워'지는 건 아닙니다. 아 뭔가 더 길게 쓰고는 싶은데 졸려서 제대로 써지지가 ㅇ낳지만 그래도 설명을 해보자면.... 아 씨 졸려.
까고 말해서 인간은 언제나 죽습니다. 나 아니면 너 아니면 우리 모두 중 누군가는 죽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기 위해선 나 자신과 그 대상의 죽음 간의 연결고리가 필요한 법입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말입니다. 화를 낼 수도 있고 엉엉 울 수도 있습니다. 조용하게 그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리거나, 그 사람이 죽었으니 속 시원하다고 후련하게 오줌을 싸갈기거나 말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죽음이 나와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건 애도고 추모고 뭐고 다 자기만족입니다. '아, 나는 인간답게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겠다'정도의 자기위안에 지나지 않아요. 감정이 흔들리고 분노하거나, 그 죽음의 원인에 대한 공분이 일어난다던가 항거하고자 하는 생각이 나던가 하는 정도, 그러니까 '저 죽음은 나와 직.간접적으로 이어진 무언가가 존재한다'라는 식의 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힘없는 노동자의 죽음? 나 혹은 나의 친근한 누군가가 저 자의 길을 걸을 지 누가 아는가?
여고생들의 억울한 죽음? 꽃다운 청춘이 피어나지 못하고 스러지는 동안 우리나라의 안전을 지키는 이들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뭐 예를 들자면 이런 거죠.
개인의 비극이 꼭 남의 비극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흘려야 할 눈물이 꼭 우리들의 눈가에 흐를 이유도 없죠. 다만 그 사람이 눈가를 시큼하게 할 '이유'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솔직하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눈앞에 들리는 죽음에 대해 감정이나 생각의 흔들림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꼭 누군가의 길을 빌어줄 만큼의 당위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 그냥 '인간으로서'라는 애매모호한 대답 말구요.
그런 식이면 우리들은 저 멀리 아프리카 평원에서 코뿔쏘 뿔 갈다가 빡친 코뿔소에게 괄약근을 관통당해서 절명한 흑형의 죽음에도 애도를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린 그런 흑형 따위 죽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고 살죠. 물론 모르고 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알아도 우리들은 어처구니 없는 죽음에 헛웃음만 짓고 말 뿐입니다. 애도를 하진 않죠. 그 양반이 죽어서 좋은 곳에 가건 말건 관련이 없으니 말입니다.
님들이 싸구려같이 흘리는 애도와 추모, 전 항상 보면 이가 갈립니다. 님들이 그렇게 저 멀리 있는 벌레새끼들한테 그렇게 능욕당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단어의 의미를 자신도 모르게 망가뜨린다는 게 참으로 열불이 터집니다. 싼 값에 두 개 사면 하나 끼워주는 사은품같이 취급하는 애도와 추모가 참으로 애석합니다.
인간의 도리라구요? 글쎄요, 인간의 도리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앵무새처럼 남들 하는 거 보고 우르르 몰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주관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 말입니다. 그게 진정한 인간이죠.
죽은 사람을 향한 도리를 챙길 바엔, 전 제 자신이 스스로 인간임을 정의내릴 수 있는 생각을 따르겠습니다. 단지 그것 뿐이에요.
아 왠지 이거 쓰고 쓰러지고 잠들고 일어나서 난 이불을 뻥뻥 걷어찰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상관없지....
P.S 아, 열사니 뭐니 어쩌고 하는 그런 데이터 쪼가리에 전전긍긍하지 마세요. 그들에게 이 죽음은 그저 신명나고 자극적인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더 새로운 '장난감'이 등장하면, 내팽겨칠 게 뻔합니다. 여태까지 그래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