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논 슴가노출이 거리낌없이 행해졌다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흉부는 치마말기라는 가슴가리개로 꽁꽁 싸매고, 거의 가슴 밑까지 치마를 올려 입었져. 다만 저고리가 워낙 짧은덕에 치마 사이에 빈공간이 생기고 치마말기가 드러나는데, 이게 그 당시의 여성의 매력을 드러내는 복식 유행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부라자(....) 드러내며 섹시어필을 하는 식이랄까요.
아무튼 그 당시의 복식유행이지, 유교나 성리학의 폐혜와는 일절 관계가 없습니다. 애초에 여성인권 축소를 모티브로 한 폐쇄적인 폐혜인데 자칫 문란해질 소지가 다분한 짓거리가 파생될리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