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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3 01: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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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꼬장 제대로 부리고 나온 생각 나네요.
90년대 중반에 군대에 컴퓨터가 보급 되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는 표도 손으로 그리고, 다 손으로 썼죠.
다른 사람들 컴퓨터 어렵다고 손으로 할 때,
저는 밤 새워 가며 컴퓨터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그 결과, 군대에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알에는 통달을 했죠.
전역 1년 남았을 땐 일을 안 시켜서
그냥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했어요.
가끔 행정병 휴가 가라고 행정 업무 대신 해주기도 하고…
평소에 저를 무시하고 막 대하던 CPO(상사, 원사)들 몇이
자기네 직별(병과)이나 부서 행정 업무를 저한테 시키더군요.
자기네 애들은 바쁘니까 할 일 없는 네가 하라면서…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다 전역하면 다시 안 볼 사이라
그냥 군소리 없이 해줬습니다.
그런데, 전역할 무렵이 돼서 파일 정리를 하다 보니까
행정병 업무를 제외하고
함내 행정업무의 약 70% 가량을 제가 했더라구요.
참 쓸 데 없는 일을 많이도 했더군요.
그때부터 저는 꼬장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한테 일을 미룬 직별이나 부서에서
서류 양식이라도 하나 달라고 오면 절대로 그냥 안 줬습니다.
반드시 직별장(CPO)이 직접 음료수라도 하나 들고 와야 줬습니다.
처음엔 싸가지 없다고 욕하던 직별장들이
자기들 목줄을 제가 쥐고 있으니까
와서 부탁을 하고 사정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대망의 전역이 다가왔습니다.
평소에 저랑 친하고 제게 잘 해주던 직별과 부서에는
파일을 종류별로 날짜별로 정리해서 다 넘겨줬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직별들 건 들고 나왔죠.
배에선 비상이 걸렸습니다.
함내 행정업무의 절반 가량이 멈춰 버려서
과거처럼 손으로 쓰게 생겼으니 난리가 났죠.
게다가 레퍼런스가 사라졌으니 지옥문이 열린 겁니다.
특히나 함장 바뀌고 1주일 후에 제가 전역했으니…
함장한테 보고할 서류가 제대로 된 게 없으니
부서장(소령, 대위), 직별장 개박살 난 건 당연한 거고
함대 행정검열에서도 완전 작살이 난 거죠.
그 전해에 행정우수함 상까지 받은 배가
1년 만에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함장은 완전히 좆 된 거죠.
아! 함장은 무슨죄냐 하실텐데,
그놈은 그런일 당해도 싼놈입니다.
제가 전역한 후에도 저한테 구라 처서
저를 이용해 먹고 입 닦은 놈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