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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2 14: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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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체리양 아버지가 인터넷에 쓴글)
//부산외대 사고,,,,,,진실 혹은 거짓
어제 동아일보 기사가 나간후 엄청나게 매스컴들의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일단 이렇게 많은 네티즌들이 모인 보배드림에 이렇게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고 슬프기만 합니다 제 딸아이를 두번 죽이게 되는것 같아 저도 무척이나 괴롭고 죽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일단 제 소개를 해야할듯 합니다.
전 지난 2월17일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 숨진 윤체리의 아빠입니다. 어차피 모든 매스컴에 제 딸아이와저의 실명이 기사화 되었기에 아무 거리낌없이 실명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기사가 나간후에 모든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건 이혼의 귀책사유가 누구한테 있는거냐 하는거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모의 귀책이 있기에 아빠가 아이를 맡아서 키운거라 생각들 하셨는데요. 맞습니다,
제 딸이 7살 되던 해에 생모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전화요금이 부쩍 늘어났고 밤 늦은 귀가에 술이 쩔어 들어오는 날도 있구요. 그러다가 생모가 바람이 났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실을 알고 난후 생모는 가출을 하였지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목포에 다른 남자랑 숨어 사는걸 찾아내서 집으로 데려오곤 하였지요. 찾아서 데려오면 도망 가고 데려오면 도망가고.
생모가 그렇게 도망 가는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임신이 된 것이지요. 저는 체리 태어난 후에 정관 수술을 하였기에 아이를 가질수 없었는데 생모라는 여자는 오랬동안 피임 없이 생활을 해서 그런지 본인이 가임 기간인줄 도 모르고 그 남자랑 바람을 피운게 바로 임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뱃속의 아이를 나 몰래 지운다고해도 제가 모를수는 없겠지요,,이 여자는 그게 두려웠던 겁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한 여자가 바람 피워서 임신한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생모한테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애들을 위해 다 잊고 열심히 살자고 하였지만,,이 생모라는 사람은 또 다시 가출을 하더군요,,저의 인내심이 바닥이 나서 목포를 이잡듯이 뒤져서 생모와 그남자 가 사는 집을 경찰과 함께 현장을 덮쳐서 두사람을 간통으로 고소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바로 하루 뒤 다시 영암경찰서로 달려갔지요. 그래도 애들 엄마인데 이 다음에 세월이 흘러서 애들이 다 성장 했을때 그래도 엄마인데 구속 시키는건 너무한거 아니냐는 아이들의 원망을 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생모가 앞으로는 당신하고 애들만 바라보고 정말 열심히 살께 제발 용서해줘 하고 울면서 말하길래 그 말을 믿고 고소취하를 하고 경찰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생모라는 여자가 경찰서 밖에 나오자마자 하는소리는 당신먼저 가 난 여기서 할일이 있어 이러는게 아닙니까 정말 죽여버려야 겠다는 살인의 충동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꾹 참고 집으로 데리고 왔지요
그때부터 이혼해 달라고 아주 당당히 요구 하더군요
이혼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내 앞에서 버젓이 간통했던 남자하고 전화질을 해댑니다 고소취하하면 같은건으로 고소가 안된다는걸 이 여자는 알고 이렇게 행동 하는거겠지요? 이혼 안해준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괴롭히더군요 그 꼴 보기 싫어서 이혼해주엇습니다.
그래서 협의이혼이 성립된것이고 딸 아이 둘 (그당시 체리가8살 체리언니가 13살) 을 내가 키우게 된것입니다.
이혼해 주면서 생모한테 한가지 요청을 하였습니다.
갈때 가더라도 체리 초등학교 입학식만큼은 엄마 손 잡고 학교 가서 엄마랑 입학식만 보고 가라고 그래야 체리가슴에 상처가 덜 생기고 생모 본인 한테도 조금이나마 양심을 지킬수 있는거라고,,,
하지만 나의 바램은 산산조각나고 이혼후 바로 바람 피웠던 남자를 집으로 불러 들여서 자기 짐보따리는 양말 한조각 팬티 한쪼가리 안남기고 싸그리 차에 싣고 도망 가고 없더군요,,
큰딸아이가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집에 도둑든거 같아"
"빨리 와 봐 무서워 죽겠어"
"엄마는 어디갔니?"
"몰라 나혼자야,,ㅠ,ㅠ"
이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갔더니 이미 도둑이 온 집안을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해 놓고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일상생활은 처참해지기 시작했지요. 아이들 밥 해서 먹이는 거부터 해서 빨래 그리고 아이들 청결 문제까지 다 내몫으로 남더군요 사내들이엿다면 그냥 아무렇게 뒹굴어도 되겠지만 딸아이 둘이다 보니 이만저만 신경쓰인는게 아니더군요.
그렇게 아내는 다른남자와 도망가 버리고 혼자서 딸 둘을 키우는데 동네분들의 눈초리에 더 이상 아이들 상처 받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사를 결심 했습니다 왜냐 하면 아이들이나 저나 집으로 갈때 골목길앞에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다가 "저런 쯧쯧 애들 엄마 없이 불쌍하구만"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기에 아이들이나 저를 위해서 이사를 하게 된것입니다
체리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없는 표시 안나게 하기위해 엄청나게 신경쓰며 키웠지요. 체리가 생일이 다가오니깐 얼굴표정이 안좋아집니다 제가 "왜 그래 체리야" 라고 물으니 "자기 친구들은 생일때 집으로 초대해서 생일파티 해주는데 자기 생일이 다가오는데 난 어떻게 하냐"면서 울더군요
"체리야 걱정 하지 말고 친구들 다 불러와 아빠가 멋지게 다 해줄께" 이랬더니 정말로 체리가 친구들 다 불러오더군요. 전 아이들끼리 신나게 놀게 하려고 통닭과 피자 햄버거 등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한보따리 준비해주고 3시간동안 밖에서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렸지요.
파티후에 집에 온 아이들 전부 다 집으로 차 태워서 보내주엇답니다. 다음날 당연히 체리가 인기짱이 되엇지요.이렇게 온 신경을 다 쓰면서 키운 체리입니다.
체리가 4학년때 지금의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아내와 체리는 친엄마,친딸 이상으로 서로를 생각하며 행복하게 잘 지내왔지요. 작년에 지금 집사람이 목 디스크로 수술을 받았는데 체리가 "엄마 아픈거 내가 고쳐주려 했는데 약속 못 지켜 미안하다"며 수술비 보태라고 새엄마한테 50만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렇게 착하고 예쁜 딸이 대학 생활을 시작도 하기전에 하늘나라로 보내는 이 아비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데 생모라는 여자는 돈에 눈이 뒤집혀 영결식 끝나자마자 보상금 받을수 잇는지 알아보는 파렴치한 짓을 햇더군요,,,ㅜ,ㅜ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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