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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7 01: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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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랬어요. 어느 날 갑자기, 계란프라이를 했는데 닭냄새(?)가 나더라고요. 그 이후로 한 삼 년 정도는 계란찜이나 프라이 등 계란 단독 요리는 못 먹었어요. 빵이나 케이크 안에 들어가는 계란은 먹고요. 그러다가 집에서 닭을 키우게 되었는데, 사료가 아니라 일반 밥이나 풀, 과일 같은 걸 먹였어요. 사료에 배란촉진제 같은 게 들어있는데, 그런 사료를 안 먹이니까 알은 하루이틀에 한 알씩? 너무 춥거나 더워도 안 낳고 털갈이 할 때도 안 낳고...그냥 자기들 컨디션 좋으면 낳더군요. 풀어 기를 때는 알을 숨겨서 놓는 애들이 있어서 농장 갈 때마다 숨은 알 찾기 ㅎㅎ (아, 얘기가 샜다;;) 아무튼, 그렇게 키운 우리 집 닭의 알은 그 특유의 냄새도 없고, 작성자님 말씀처럼 노른자도 샛노랗고 위도 도톰하고 반숙으로 먹어도 고소해요. 그 때부터 다시 계란프라이 먹게 되었어요.
그 무렵, 농장이 있는 동네에서 소 한마리 잡아서 제를 지내고 집집마다 나누는 뭐 그런 연례행사 같은 게 있었는데, 소 부위별로 해체해서 모아둔 곳에 갔다가, 냄새에 질려서 쇠고기를 못 먹게 되었어요. 삼계탕, 사골 등과 같은 육수 우러나는 음식도요. 유난하다며 엄마는 이해를 못 하셨고, 서운해 하시기도 하고 스트레스 받으시기도 했지만 (본인께서 자식에게 맛나게 먹이시려고 열심히 만드셨는데, 정작 그 자식은 냄새 때문에 못 먹겠다고 고개를 절래절레 흔드니까요;;), 나중에는 그러려니- 원래 까탈스러운 애려니- 하시며 넘겨주시더라고요. 그 때까지는 생선은 잘 먹었거든요. 또 몇 년이 지나, 이번에는 고등어와 같은 등푸른 생선을 못 먹게 되었어요. 비린내야 그렇다치고, 먹고 난 후 생목이 오르는 현상이 있어서 속이 편치 않더라고요. 대신 그 즈음에는 사골, 백숙 같은 육수 있는 음식을 조금씩은 다시 먹게 되었죠.
지금은 계란프라이, 사골, 백숙, 고등어 다 먹을 수 있어요. 다만, 일부러 찾아 먹지는 않아요. 어머니께서 만드신 음식에 한해서 사골이나 백숙은 먹어요. (옛날, 계란 냄새에 예민하게 되기 전까지는 모두 좋아하던 음식들이었는데. 흑흑)
이거다! 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동물들이 어떤 것을 먹으며 자랐는가도 냄새의 중요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요즘은 소나 돼지, 닭 같은 경제 동물들에게 사료를 먹이잖아요? 예전에는 소는 짚과 콩대 등을 삶아 쇠죽 끓여 먹였고, 돼지나 닭에게는 사람이 먹던 잔반을 주기도 했는데, 요즘은 경제적 또는 정부의 압박으로 모두 사료... 거기에는 여러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배란유도제와 같은 게 들어 있고, 또 닭 사료에 생선 부속과 같은게 들어도 있고... 그러다보니, 그 고기와 알 등에서 비린내 같은 냄새를 더 많이 느낀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까지 미국 사는 가족을 방문해서 장기 체류 했는데, 그 때 풀 먹여 방생하는 쇠고기나 유기농법으로 키운 돼지, 닭고기, 계란과 우유 등만 먹었어요. 그 집의 룰이었거든요. 식재료는 유기농. 그 때는 육류와 계란, 우유를 진짜 맛있게 잘 먹었어요. 그러다가 한국 돌아왔는데, 확실히 육류의 질과 냄새가 달라요. 수돗물에서는 염소 냄새가 너무 강해서, 저희 집 빌라 물탱크에 소독약을 들이부었나 싶기도 했고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감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들은 다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용납하기 어려운 것. 나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은 안 괜찮은 것. 작성자님과 저, 함께 댓글 달아주신 님들은 그것이 식재료에서 느끼는 비린내이고, 우리는 단지 그걸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이라 생각해요. 예민하다, 까칠하다, 너만 느끼는거다라며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지만....우리가 그 냄새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느끼는 게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력이 더 좋은 사람도 있고, 후각이 더 발달한 사람도 있고, 남들은 못 듣는 소리까지 듣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 아닐까요? 그렇다고, 나는 분명히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너는 왜 이걸 못 맡아? 라고 언쟁할 수도 없고... 감지를 못 한다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저는 그냥 '남보다 까칠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그냥 살고 있어요. ^^;; 가족은 '쟨 그냥 그런 애'라며 이제는 넘겨주세요. 저도 웬만하면 같이 먹으려고 노력하고, 못 먹겠다싶어 말씀드리면 알았다고 넘어가주세요. 친구들도 고맙게도, 각자 먹지 못하는 음식은 인정하고 서로서로 그런 류는 피해서 식당 선택하고요. (생선과 가금류만 먹는 친구, 생크림과 키위 못 먹는 친구, 물에 담겨있는 고기나 계란찜, 조개 싫어하는 저 등등)
얘기가 또 딴데로 샌 듯 한데요, 아무튼 그 비린내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은 하나의 캐릭터이고, 그 냄새가 잘 감지되지 않는 식재료가 보다 더 자연에 가깝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