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대양거황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회원가입 : 15-01-12
방문횟수 : 2005회
닉네임 변경이력
일반
베스트
베오베
댓글
2973 2018-08-19 12:10:33 2
K-POP의 긍정적인 영향력 [새창]
2018/08/18 20:17:31
글쎄요,
이명박이 독도 방문하고 일왕한테 사과 요구했다가
그 이후로 일본에서 한류가 박살난 걸 보면...
케이팝 같은 한류의 영향력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당장 일본 총리 아베의 마누라가 한류 팬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우경화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아무런 지장도 없는 걸 보면 말이죠.
2972 2018-08-19 12:07:13 0
한국에서 강제 탈출 당한 외국인 의대생. [새창]
2018/08/18 20:15:12
동감입니다...
2971 2018-08-19 11:34:25 0
하와이가 러시아 땅이 될 뻔한 사연 [새창]
2018/08/16 11:19:15
감사합니다.
2970 2018-08-18 10:36:37 10
길거리에서 쓰레기줍는 통영명예시민 [새창]
2018/08/17 16:20:30
성룡씨가 젊은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서...
한국에 대한 애정과 호감이 강하다고 하더군요.
2969 2018-08-18 10:27:38 0
위안부의 원조는 19세기 일본의 가라유키상 [새창]
2018/08/15 10:45:40
참고로 일본에서 여자들의 보통 선거권이 인정된 시기는 1946년부터였습니다.
즉, 패망하기 전까지 일본 여자들은 보통 선거권도 안 주어질 만큼, 차별을 받았던 거죠.
2968 2018-08-18 10:25:51 0
위안부의 원조는 19세기 일본의 가라유키상 [새창]
2018/08/15 10:45:40
그렇죠.
애시당초 제국주의 시절 일본은 자국민들의 인권도 형편없이 대하던 나라였으니까요.
2967 2018-08-15 19:09:10 24
조선총독부 철거 전과 후.jpg [새창]
2018/08/15 11:22:21
저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는데
정작 해체를 맡은 대학 교수가 면밀히 검토한 끝에
문화유산이나 건축학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서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총독부 건물 해체에 국민 여론은 90%가 찬성했죠.
2966 2018-08-15 19:05:26 43
대만이 처한 현실 [새창]
2018/08/15 10:58:21
그게 좀 웃긴데,
대만인들은 자기들이 진짜 중국이고, 1949년부터 지금의 중국 본토를 차지한 공산당 정권은 가짜 중국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중국 본토보다 중화사상이 더 강했고,
그런 이유로 한국을 자기네 속국이라고 깔보아서 혐한이 강성했죠.
아울러 한국이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대만과 수교하고 중국과 단교 상태에 있었다가
1992년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지금 중국 공산당 정권)과 수교를 하니까
한국이 자기들을 배신했다면서 혐한에 미쳐 날뛰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 대만의 혐한은 매우 강했죠.
2965 2018-08-15 11:57:37 24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네, 맞습니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집요하게 거론하는 일본 극우들이
그런 식으로 자기네의 전쟁 범죄를 물타기 하는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순진한 진보들이 그런 일본 극우의 물타기에 아주 잘 이용당하고 있죠.
2964 2018-08-15 10:28:22 29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수기 '전투감각'으로 유명한 서경석 장군의 경우에는 적을 크게 무찔러서 훈장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사로잡은 포로들을 구타한 것이 드러나서 훈장 서훈이 취소될 정도였습니다. 포로 구타 정도로도 상부의 반응이 민감했는데 구수정이나 증오비 주장처럼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강간하고 죽이고 사지를 절단했니 어쩌니를 밥먹듯이 했다는 말은 신빙성이 더욱 떨어집니다.

참고로 월남전 기간 동안 최고로 유명한 학살 사건인 미라이 사건 당시 사망자 수가 300~500명 추산인데, 학살을 실제로 한국군이 수도 없이 벌였다면 선전거리 수집과 심리전에 필사적이던 당시 베트콩이나 북베트남 그리고 현 베트남 정부가 자초지종과 학살 규모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대형 사건이 여럿 터졌다면 베트남전쟁 당시에 남베트남 전역에서 한국군 몰아내자는 운동이 벌어지고도 남을 대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반전여론을 지지하며 베트남 전역을 들쑤시고 다니던 미국 언론부터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라이 학살을 예로 들자면 미라이 학살 이후로 베트남전에서 미군의 이미지는 완벽히 쓰레기로 전락해서 전쟁지속의 의지와 여론마저 바닥으로 끌고 갔습니다.

학살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으면 기밀로 남기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이미 예전에 다 알려져서 이제와서 발견될 것도 없습니다.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투입한 한국군이 그런 악행을 베트남 전역에서 시도때도 없이 벌이고 다녔다면 이미 진작에 미라이 학살 사건의 여파 뺨치는 대 특종이 되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몇 명의 생존자들과 기념비 혹은 추모비 이외에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될 만한 학살의 흔적은 하다 못해 유골과 전투 흔적 하나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일부 학살이 벌어졌다는 마을 이름들은 심지어 지도에서 지명조차 찾을 수 없는 마을들이거나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라는 자료 역시 원본이 진짜 존재는 하는 것인지조차 입증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 정황을 참고하여 한국군과 파병군인들 측의 의견도 들어야 하며 각각의 글을 그대로 믿는 우를 범하지 말고 자신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해야 합니다.
2963 2018-08-15 10:25:14 24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이런 학살 이야기의 문제점은, 오로지 피해자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위의 푹미나 홍차우 사건같은 진짜 민간인 피해에 여론의 관심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사실 한국군의 학살이 퍼진건 국내의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일본 혐한들의 주요 떡밥으로 퍼뜨려서 이기도 합니다.
한국군의 학살 이야긴 한국어 위키보다 일본어 위키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요.
귀목걸이, 코목걸이 이야기하면서 너희도 똑같으니 우리가 학살한거에 대해 떠들지 말라는 거죠. 몇몇 한국사람들은 거기게 동조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과장때문에 정작 우리가 사과해야할 명백한 잘못은 무시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네 들이 보기에 푹미나 홍커우사건의 피해는 언급하기엔 너무 피해자 숫자가 너무 적으니까요. 이런 사건은 위키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또 우파쪽 반박하는 사람들은, 이런 적은 피해는 의도한게 아니라 그저 오인사격일뿐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아무도 '진짜' 피해자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을 안하는 거죠.
다시말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보상받길 거부했으니, 보상을 위해선 베트남 정부를 통해서가 아닌 남아있는 피해자들을 직접 조사하는수 밖엔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진짜 피해자에겐 관심도 없으면서, 막무가내로 정부에다 보상하라고 우기면 정부는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2962 2018-08-15 10:24:13 34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그밖에 미군이 벌인 미라이 학살까지 한국군이 한게 되버린다던지, 한국군의 열배가 넘는 베트남인과 함께 합동작전을 해도
도중에 나온 민간인피해는 모두 한국군이 저지른게 되버린다던지, 공병대대밖에 안가지고 있던 불도저가 모든 학살사건에 죄다 등장해서
마을과 시체들을 묻어버렸다던지, 이루 말할수 없는 왜곡이 정말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학살을 주장하는 글들을 보면 당시 마을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던 구호물자를
'~학살에 대한 사죄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몰아가고 있고
한국인들이 세운 위령비는 어쩔땐 빈호아 학살때문에, 어쩔땐 고자이 학살때문에 세운거라며 학살의 근거로 돌려가며 쓰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들의 신빙성을 따지자면,
고자이 학살 증언의 경우 하늘을 뒤덮는 헬기가 나타나 380명을 1시간만에 죽였다는데, 한국군은 헬기가 하늘을 뒤덮을 만큼 많기는 커녕,
사건이 일어난 66년엔 한대도 없었습니다. 한국군은 68년이 되서야 헬기를 보급받았습니다.

빈호아 학살의 경우 마을운동장에서 사람들을 기관총으로 쏴댔다고 하는데, 사건이 일어난 66년엔 한국군은 카빈이나 개런드 밖에 없었지
M16같은 연발식 소총은 아직 보급도 안된 때 였습니다.

더 결정적인건 당시 증언에 의해 만들어진 위령비 인데, 한국군이라고 묘사된 군인의 부대마크가 증오비에 써진 가해자인 맹호부대 마크가 아닌
흑표무늬의 마크 입니다. 그런데 흑표무늬는 당시 베트남 레인저부대의 마크였습니다. 위의 채명신 장군의 증언과 연결해 생각하면
진짜 학살의 가해자가 누군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증언의 신빙성 이외에도 베트남전 당시의 한국군의 학살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되는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베트남전 당시의 전과를 평가하는 방법은 노획한 무기의 수량이었지, 귀나 코를 잘라와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평가방법은 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위한 방책이기도 했습니다.
또 전시에 군인에 의한 강간은 매우 중한 군법위반으로 엄격히 다스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군대에서 그런 행위를 용서할리가 없지요.
게다가 하물며 민간인 살해는 더 위중하게 다스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군은
1. 죽여봤자 아무런 성과가 없는 민간인을
2.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3. 살인충동과 성욕을 채우기 위해 학살했다
4. 그리고 이런 학살은 상부의 명령으로 불도저와 비행기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5. 또한 미군의 기록에 남지 않을 만큼 철저한 기밀속에서 이루어졌다.
라는 건데... 솔직히 납득이 안갑니다. 인터넷에선 이런식으로 무려 9000여명의 민간인 피해가 났다고 주장하는 글이 떠도네요.

게다가 베트남에서 사업차 온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여자와 결혼한 다음 전쟁이 끝나 귀국해서 생긴 라이따이한문제까지
한국군이 강간을 저질러 일어났다는 글도 보이니 참...
2961 2018-08-15 10:22:45 30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그리고 또 이후에,
김대중대통령, 노무현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방문때 정부에 민간인 피해와 베트남 참전에 대해 사과했고
(근데 우리가 이긴 전쟁이고 냉전시대의 어쩔수 없었던 일이었다며 베트남 정부는 사과랑 보상을 받길 거부했습니다)
2004년엔 시민사회들이 모금활동을 벌여 베트남 퐁티에 사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를 건립하였습니다.
-------------------------------------------------------------------------------------------------------------
딱 여기까지가 베트남전 한국인 학살의 진실입니다.
위키나 신문기사에 존재하는 빈호아, 타이빈, 고자이, 퀴년, 하미 등등의 사건들은 증언만 있고 근거가 없는 사건들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들 자체도 너무 허무맹랑해서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자주 나오는 증언의 레파토리가 융단폭격으로 마을을 쓸어버렸다거나 독가스를 썼다는 것인데,
미군의 지원이 있어야만 할수 있는 융단폭격을 일개 한국군 대대가 요청한다고 미군이 들어줄리도 없을 뿐더러,
길을 만들거나 고엽제 살포같은 일에나 쓰이는 전략폭격을 하나의 마을에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독가스를 사용했다는건 한국군이 화학전을 했다는건데, 당시 매우 허름한 장비밖에 없었던 한국군이 화학전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요.
2960 2018-08-15 10:21:55 35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그리고 발견한 세건의 사건이
69명의 사상자를 낸 퐁니퐁넛 사건,
22명의 사상자를 낸 푹미사건
4명의 사상자를 낸 홍차우사건입니다.
이중 푹미사건은 마을 진압과정중 오인사격으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생긴 사건이고,
홍차우 사건은 지뢰등으로 사망자가 생기자 흥분한 해병이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사상자를 낸 퐁니퐁넛 사건은 의혹이 많은 사건입니다.
짧게 설명하자면 제2 해병여단의 1개 중대가 이동중 퐁넛마을에서 사격을 받자 소탕 작전을 수행했는데, 비슷한 시각에 인근의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학살을 저지르는것이 목격되자 학살의 주범으로 이 해병들이 지목된 사건입니다.
근데 당시 채명신 장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민간인을 구해라' 라는 지침을 전군에 내린 상태라는것과,
퐁니퐁넛 마을 주변이 베트콩들이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한국군의 잔학성을 홍보하고,
한국군의 옷을 입고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자주 목격되던 곳이라는 점 때문에 한.미.월합동 조사를 통해서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합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언급하는데 절대 설렁설렁 조사가 아닌, 사진자료와 관련자들을 철저히 심문하고 분석한 조사였습니다)
이런 전쟁범죄들에 대한 한국정부는,
69년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이후 68~73년 사이 구속군인 561명가운데 전쟁수행과 관련된 자를 제외한
40여명을(상관살해,현지인강간,살인) 미복권 미사면하여 무기징역,종신형,사형등을 집행했습니다.
2959 2018-08-15 10:21:08 30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베트남 민간인 학살 주장의 근거 대부분은
한겨레 21 기자인 구수정의 리포트인데,
문제는 그 구수정 리포트의 신빙성이 매우 의심된다는 거죠.
그리고 베트남 증오비들의 내용도 거의 그 구수정 리포트 복붙이라서...
http://cafe.daum.net/historywar/Nwp/2864
1999년에 한국에서는 국제민주연대.민변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 가 모여,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의 진실에 대해 조사합니다.
참고로 이 조사가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닌 이유는, 이 조사과정을 주도한 인물들이
바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학살을 열심히 보도하고 알린 한겨레 신문 기자 및 강정구 교수,한홍구교수 등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문서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옵니다.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 176 177 178 179 180 >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