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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3 2018-08-15 10:25:14 24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이런 학살 이야기의 문제점은, 오로지 피해자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위의 푹미나 홍차우 사건같은 진짜 민간인 피해에 여론의 관심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사실 한국군의 학살이 퍼진건 국내의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일본 혐한들의 주요 떡밥으로 퍼뜨려서 이기도 합니다.
한국군의 학살 이야긴 한국어 위키보다 일본어 위키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요.
귀목걸이, 코목걸이 이야기하면서 너희도 똑같으니 우리가 학살한거에 대해 떠들지 말라는 거죠. 몇몇 한국사람들은 거기게 동조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과장때문에 정작 우리가 사과해야할 명백한 잘못은 무시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그네 들이 보기에 푹미나 홍커우사건의 피해는 언급하기엔 너무 피해자 숫자가 너무 적으니까요. 이런 사건은 위키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또 우파쪽 반박하는 사람들은, 이런 적은 피해는 의도한게 아니라 그저 오인사격일뿐이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아무도 '진짜' 피해자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을 안하는 거죠.
다시말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보상받길 거부했으니, 보상을 위해선 베트남 정부를 통해서가 아닌 남아있는 피해자들을 직접 조사하는수 밖엔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진짜 피해자에겐 관심도 없으면서, 막무가내로 정부에다 보상하라고 우기면 정부는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2962 2018-08-15 10:24:13 34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그밖에 미군이 벌인 미라이 학살까지 한국군이 한게 되버린다던지, 한국군의 열배가 넘는 베트남인과 함께 합동작전을 해도
도중에 나온 민간인피해는 모두 한국군이 저지른게 되버린다던지, 공병대대밖에 안가지고 있던 불도저가 모든 학살사건에 죄다 등장해서
마을과 시체들을 묻어버렸다던지, 이루 말할수 없는 왜곡이 정말 많습니다.

게다가 이런 학살을 주장하는 글들을 보면 당시 마을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던 구호물자를
'~학살에 대한 사죄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몰아가고 있고
한국인들이 세운 위령비는 어쩔땐 빈호아 학살때문에, 어쩔땐 고자이 학살때문에 세운거라며 학살의 근거로 돌려가며 쓰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들의 신빙성을 따지자면,
고자이 학살 증언의 경우 하늘을 뒤덮는 헬기가 나타나 380명을 1시간만에 죽였다는데, 한국군은 헬기가 하늘을 뒤덮을 만큼 많기는 커녕,
사건이 일어난 66년엔 한대도 없었습니다. 한국군은 68년이 되서야 헬기를 보급받았습니다.

빈호아 학살의 경우 마을운동장에서 사람들을 기관총으로 쏴댔다고 하는데, 사건이 일어난 66년엔 한국군은 카빈이나 개런드 밖에 없었지
M16같은 연발식 소총은 아직 보급도 안된 때 였습니다.

더 결정적인건 당시 증언에 의해 만들어진 위령비 인데, 한국군이라고 묘사된 군인의 부대마크가 증오비에 써진 가해자인 맹호부대 마크가 아닌
흑표무늬의 마크 입니다. 그런데 흑표무늬는 당시 베트남 레인저부대의 마크였습니다. 위의 채명신 장군의 증언과 연결해 생각하면
진짜 학살의 가해자가 누군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증언의 신빙성 이외에도 베트남전 당시의 한국군의 학살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되는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베트남전 당시의 전과를 평가하는 방법은 노획한 무기의 수량이었지, 귀나 코를 잘라와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평가방법은 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위한 방책이기도 했습니다.
또 전시에 군인에 의한 강간은 매우 중한 군법위반으로 엄격히 다스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군대에서 그런 행위를 용서할리가 없지요.
게다가 하물며 민간인 살해는 더 위중하게 다스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군은
1. 죽여봤자 아무런 성과가 없는 민간인을
2.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3. 살인충동과 성욕을 채우기 위해 학살했다
4. 그리고 이런 학살은 상부의 명령으로 불도저와 비행기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5. 또한 미군의 기록에 남지 않을 만큼 철저한 기밀속에서 이루어졌다.
라는 건데... 솔직히 납득이 안갑니다. 인터넷에선 이런식으로 무려 9000여명의 민간인 피해가 났다고 주장하는 글이 떠도네요.

게다가 베트남에서 사업차 온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여자와 결혼한 다음 전쟁이 끝나 귀국해서 생긴 라이따이한문제까지
한국군이 강간을 저질러 일어났다는 글도 보이니 참...
2961 2018-08-15 10:22:45 30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그리고 또 이후에,
김대중대통령, 노무현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방문때 정부에 민간인 피해와 베트남 참전에 대해 사과했고
(근데 우리가 이긴 전쟁이고 냉전시대의 어쩔수 없었던 일이었다며 베트남 정부는 사과랑 보상을 받길 거부했습니다)
2004년엔 시민사회들이 모금활동을 벌여 베트남 퐁티에 사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를 건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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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여기까지가 베트남전 한국인 학살의 진실입니다.
위키나 신문기사에 존재하는 빈호아, 타이빈, 고자이, 퀴년, 하미 등등의 사건들은 증언만 있고 근거가 없는 사건들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들 자체도 너무 허무맹랑해서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자주 나오는 증언의 레파토리가 융단폭격으로 마을을 쓸어버렸다거나 독가스를 썼다는 것인데,
미군의 지원이 있어야만 할수 있는 융단폭격을 일개 한국군 대대가 요청한다고 미군이 들어줄리도 없을 뿐더러,
길을 만들거나 고엽제 살포같은 일에나 쓰이는 전략폭격을 하나의 마을에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독가스를 사용했다는건 한국군이 화학전을 했다는건데, 당시 매우 허름한 장비밖에 없었던 한국군이 화학전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요.
2960 2018-08-15 10:21:55 35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그리고 발견한 세건의 사건이
69명의 사상자를 낸 퐁니퐁넛 사건,
22명의 사상자를 낸 푹미사건
4명의 사상자를 낸 홍차우사건입니다.
이중 푹미사건은 마을 진압과정중 오인사격으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생긴 사건이고,
홍차우 사건은 지뢰등으로 사망자가 생기자 흥분한 해병이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사상자를 낸 퐁니퐁넛 사건은 의혹이 많은 사건입니다.
짧게 설명하자면 제2 해병여단의 1개 중대가 이동중 퐁넛마을에서 사격을 받자 소탕 작전을 수행했는데, 비슷한 시각에 인근의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학살을 저지르는것이 목격되자 학살의 주범으로 이 해병들이 지목된 사건입니다.
근데 당시 채명신 장군은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민간인을 구해라' 라는 지침을 전군에 내린 상태라는것과,
퐁니퐁넛 마을 주변이 베트콩들이 매일같이 사람들에게 한국군의 잔학성을 홍보하고,
한국군의 옷을 입고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자주 목격되던 곳이라는 점 때문에 한.미.월합동 조사를 통해서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진 못합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언급하는데 절대 설렁설렁 조사가 아닌, 사진자료와 관련자들을 철저히 심문하고 분석한 조사였습니다)
이런 전쟁범죄들에 대한 한국정부는,
69년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이후 68~73년 사이 구속군인 561명가운데 전쟁수행과 관련된 자를 제외한
40여명을(상관살해,현지인강간,살인) 미복권 미사면하여 무기징역,종신형,사형등을 집행했습니다.
2959 2018-08-15 10:21:08 30
스압,외계통신) 4탄 한국과 얽힌 베트남의 슬픈 비밀. [새창]
2018/08/15 00:03:35
베트남 민간인 학살 주장의 근거 대부분은
한겨레 21 기자인 구수정의 리포트인데,
문제는 그 구수정 리포트의 신빙성이 매우 의심된다는 거죠.
그리고 베트남 증오비들의 내용도 거의 그 구수정 리포트 복붙이라서...
http://cafe.daum.net/historywar/Nwp/2864
1999년에 한국에서는 국제민주연대.민변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 가 모여,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의 진실에 대해 조사합니다.
참고로 이 조사가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닌 이유는, 이 조사과정을 주도한 인물들이
바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학살을 열심히 보도하고 알린 한겨레 신문 기자 및 강정구 교수,한홍구교수 등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문서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옵니다.
2958 2018-08-14 12:34:06 139
일본이 김연아 선수 금메달 박탈을 모의했던 사건 [새창]
2018/08/14 12:15:04
사실 개인적인 신상 문제라면 아사다 마오쪽이야말로 더 문제가 되죠.
아버지는 호스트바 사장에 어머니는 유사 성행위 종사자였는데...
그런데 한국의 마음씨 착한 김연아 팬들이
아무리 아사다 마오가 미워도
개인적인 가정사는 들춰내지 말자고 합의해서 일부러 이야기를 안 한 겁니다.
정작 한국의 언론들은 아사다 마오의 아버지가 무슨 대학 교수고 어머니는 전통 무용 강사라는 엉터리 선전을 해댔죠.
2957 2018-08-12 12:10:02 0
군사력이 약한 나라의 슬픔 [새창]
2018/08/11 10:49:53
아르헨티나는 광활한 팜파스 초원이 있어서 소고기 값이 무진장 싸지요.
그래서 20세기 초에는 그 소고기 수출로 엄청난 돈을 벌어서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그러나 계속된 군사 독재 정권들의 횡포와
결정적으로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한테 참패하는 바람에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은 걸핏하면 경제 부도 위기에 시달리는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2956 2018-08-12 11:59:12 1
대륙의 한자사용 근황 [새창]
2018/08/11 06:34:15
진시황의 진짜 업적은 중국의 통일이 아니라 문자(한자)의 통일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죠.
하지만 한자는 그 글자수가 무려 6만 개나 되다 보니,
평생을 배워도 다 못배웁니다.
그래서 근대 이전 중국의 문맹률이 굉장히 높았고,
그러다 보니 중국 지식인들이 한자 대신 영어 알파벳을 쓰자는 말도 했을 만큼(실제로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들여온 알파벳을 씁니다.)
한자가 근대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 있었죠.
결국 중국 본토에서는 한자의 획수를 줄인 간자체를 쓰게 되었죠.
만약 우리도 한글이 없이 계속 한자를 썼다면,
아마 문맹률이 꽤 높았을 겁니다.
실제로 한글 전용 교육을 실시하기 전인
195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의 문맹률은 대략 전체 국민의 3분의 1 정도나 되었습니다.
2955 2018-08-10 15:11:59 2
[새창]
그래도 나폴레옹 전쟁과 2차 대전에서 승리한 덕분에
러시아(소련)가 한동안 국제 무대에서 초강대국 노릇을 했었죠.
2954 2018-08-07 18:41:49 12
세계가 멸망할 뻔한 순간 [새창]
2018/08/07 10:55:50
하지만 저 쿠바 위기 말고도
이른바 우발적 핵전쟁이라고 해서
미군이나 소련군이 서로의 행동을 핵무기 발사라고 잘못 판단해서
실수로 핵전쟁이 벌어질 위험도 무려 150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냉전 시대에 끝내 핵전쟁이 안 벌어진 것도
어떻게 보면 기적입니다.
2953 2018-08-07 18:38:10 7
세계가 멸망할 뻔한 순간 [새창]
2018/08/07 10:55:50
1970년대까지 미군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저 쿠바 위기 때 미국과 소련 정부의 협상이 제대로 안 되었다면,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핵무기도 소련이나 그 동맹국들한테 사용되었을 테고, 그 반격으로 소련이나 중국의 핵무기에 한반도가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2952 2018-08-07 18:32:29 6
"한국은 이미 경제 선진국" 중국반응 [새창]
2018/08/06 01:48:51
주로 조모씨 같은 극우 인사들이 한글 전용이 나쁘다느니 하며 일본처럼 한자 혼용하자고 하는데
문제는 그런 식의 주장을 한국의 지식인 언론인 정치인 기업인들한테 슬슬 부추기는 쪽이
바로 일본의 극우 세력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한국의 여론 주도층을 부추겨 한자 혼용하라고 하는 이유는
그래야 한국의 정보를 지금보다 더 쉽게 빼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951 2018-08-07 18:13:54 5
"한국은 이미 경제 선진국" 중국반응 [새창]
2018/08/06 01:48:51
가오리 빵즈의 어원을 일제 앞잡이 조선인들한테서 찾는 소리는
마치 남경대학살의 주범이 일본군에 소속된 상투를 기르고 다니는 조선인들이 저질렀다는 식의 소리와
똑같은 차원의 헛소문입니다.
이런 내용은 정확하게 파악해서 사실과 거짓을 구분해야지,
그렇지 않고 무분별하게 인터넷에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면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뜬소문에 휩싸여 매우 악화될 우려가 큽니다.
2950 2018-08-07 18:06:58 8
"한국은 이미 경제 선진국" 중국반응 [새창]
2018/08/06 01:48:51
일제가 중국을 쳐들어 갔을 때, 일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앞잡이가 되어서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중국놈들 겁나게 패댔답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가오리 빵즈에요./

193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중일전쟁 때가 무슨 몽둥이 들고 싸우던 원시 시대였습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위의 지문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죠.
2949 2018-08-07 18:01:24 9
"한국은 이미 경제 선진국" 중국반응 [새창]
2018/08/06 01:48:51
조선국의 백성들을 세속에서 고려봉자(高麗棒子)라고 부른다. - 《황청직공도(皇淸職貢圖)》(1751)
수십 명 아이들이 떼를 지어 가오리방쯔(高麗幇子)라고 고함을 지르며 쫓아왔다. - 홍대용(1731~1783)의 《담헌서(湛軒書)ㆍ연기(燕記)/
"조선 공사(貢使)의 종자(從者) 이외에, 오가면서 일을 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빵즈(棒子)'라고 불렀다. 그 나라(조선)에서 부녀가 음행을 저지르면 관기로 만드는데, 관기가 자식을 낳으면 '방자'라고 했고, 일반 백성들이 멸시했다. 머리는 봉두난발이며 망건을 할 수 없었고, 만리를 걸어가도 말을 탈 수 없었으며, 풀을 깔고 땅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고, 구들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나라안에서 천한 일을 하는 자들이다."
청나라 강희제때 왕일원(王一元)의 요좌견문록(遼左見聞錄)

이미 청나라 시기인 18세기부터 쓰였던 말이 가오리방쯔인데요?
무슨 일제 강점기 타령입니까?
님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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