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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1 17: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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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일본 본토에 공습을 하게 된 계기는 일본군이 중국 대륙에 공습을 한 충칭대공습 같은 사례에서 비롯되었죠.
"전력선이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충칭의 급수시설도 마찬가지였다. 불길 외에는 어떤 빛도 없었고, 불길을 잠재울 물도 없었다. 불은 충칭 구시가를 오르내리며 확산되고 있었다. 불이 대나무를 태우면서 대나무 마디가 팡팡 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은 소음으로 꽉 차 있었다. 여자는 통곡하고, 남자는 고함치고, 아기는 울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은 채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울부짖었다. 나는 뒷골목에서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언덕 작은 길에서 큰길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옷은 불길에 타올랐고, 이내 그 불을 끄기 위해 바닥을 뒹굴고 또 뒹굴었다."
"우리가 일본인을 폭격하게 되었을 때, 나는 결코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 당시 충칭에 있던 타임의 통신원 시어도어 화이트(Theodore White)
"일본인을 향한 무차별 공격을 열망했던 사람들 중에는 중국에서 복무했던 미군도 있었다. 이들은 유럽지역의 미군들과는 달리,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에게 가했던 방식과 동일한 수법으로 보복하기를 강렬히 열망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일본 본토 폭격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전략폭격을 주도했던 커티스 르메이도 있었다. 일본군의 소이탄이 무차별적으로 투하되던 중국의 도시들은 미군의 피의 보복을 위한 리허설 현장이었다."
- 김태우,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2013, 창비, 5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