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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3 19: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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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istudy.com/history/animal_mazlish.htm
데카르트의 시대에는, 그에게 두 방향의 적이 있었다.
전통주의자들은, 동물이 영혼이 없는 기계라는 주장에 반대하고 동물이 인간과 더 가깝다고 보았다.
진보적인 사상가들은, 동물이 기계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이것을 인간에게도 적용했다.
여기에서는 논쟁의 본질을 시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만 몇 가지 사례를 들겠다.
데카르트와 그의 지지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에 따르면 생체 해부를 하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데카르트가 나중에 인정했지만, 그는 동물이 오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극적인 일화가 있다.
데카르트의 지지자인 말브랑슈 Malebranche 는 온화한 인물이었지만, 임신한 개를 발로 찼다.
친구인 퐁트네유 Fontenelle 가 나무라자,<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라고 차갑게 대꾸했다.
나중에 살펴볼 파블로프조차 이렇게 신랄하지는 못했으리라.
데카르트의 반대자들은 이 점을 공격했다. 드 세비뉴 de Sevinge 부인은 1672 년에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기계, 어떤 사람과 친한 기계, 질투하는 기계, 두려워하는 기계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웃음 거리일 뿐이다.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이런 것을 믿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퐁트네유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이 시계와 마찬가지로 기계라고 말하는가? 미스터 기계 개와 미스 기계 개를 함께 두어보라.
둘 사이에서 작은 기계 강아지가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시계 둘은 평생을 함께 두어온 다른 시계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동물은 고통을 느끼고, 질투하며, 번식한다고 데카르트의 반대가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틀렸다. 그렇다면 이것이 동물도 이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유명한 우화 작가 라 퐁텐 La Fontaine 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의 불멸의 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교활하고 지능적이다.
그래서 라 퐁텐은 부엉이가 현명한 새라고 썼다. <부엉이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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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 엉혼이 없다는 주장이 진보로 분류되던 시절도 있었고,
불과 10년전 인터넷이 확산될때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사실들'이란 주제의 글 속에
"동물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란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개인적인 기억)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함께 유입된 사상 중 하나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