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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06: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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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장미는 작은 장미보다 세 살 많았다. 둘은 같은 동네에서 자라 같은 여중과 여고를 나왔다.
동네사람들은 두 장미가 함께 걸어다닐 때 마다 꽃들이 지나간다며 반농 섞인 말을 하곤 했다.
한 동네에 한사람 있기도 힘든 장미가 두 사람이나 있었으니 그녀들이 유명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해서 장미들은 유명인사였다. 모두와 잘 지냈고 모두가 두 장미를 좋아했다. 큰 장미와 작은 장미도 서로를 좋아했다.
세월이 지나 큰 장미는 방직공장에 취직해 동네를 떠났다. 작은 장미는 동네에 남아 잘 알던 옆집 오빠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 뻔 했는데, 거듭되는 남편의 취직 실패와 시아버지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뻔질나게 중앙정보부라는 곳에 드나들었다.
가세는 기울었고 다정하던 남편은 주정뱅이로 변해갔다. 작은 장미는 돈을 벌기 위해 시내의 장미다방에 드나들어 커피를 배달했지만
늘어가는 것은 담배와 커피, 그리고 때때로 격하게 찾아오는 기침뿐이였다.
작은장미의 남편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였다. 장미다방에서 일하는 작은 장미의 소식을 알았을 때 그는 소주병으로 작은장미의 머리를
후려치고 '니년이 오입질에 미쳤구나' 하면서 동네 느티나무까지 끌고와 쥐어팼지만, 그녀가 때때로 가져다 주는 돈 만은 말없이 받았다.
큰 장미는 명절에 동네를 찾아와 작은 장미의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숨죽인 채 끌어안고 울었다. 한 줄기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같은 장미였다. 그것이 큰 장미가 작은 장미를 보며 느끼는 아픔의 감정, 그것의 원인이였다.
큰 장미는 마침내 작은 장미를 데리고 동네를 떠나기로 했다. 방직공장에 일자리도 주선해주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보듬어 줄 요량이였다.
큰 장미와 작은 장미는 명절이 끝나는 날 밤 짐을 챙겨 동네를 떠났다.
아무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것이다. 큰 장미와 작은 장미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멀고 먼 길을 떠났다.
새 담장을 찾으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