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1228050
박창화의 소위 광개토왕 기사입니다. 당장 유적기록과도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광개토대왕이 어머니와 사이에 세째 아이를 낳는다니요. 이 무슨 일제도 안한 기가막힌 역사모독입니까.
"광개토왕 22년 임자(412년) 3월 풍발(북연국 천왕)이 딸을 광개토왕에게 후궁으로 보내고 장무성과 숙차성을 달라했으나 불허하였다."
여기서 숙차는 숙군(軍)의 오자이고 장무성은 천진 부근으로서 대릉하 조양시에 수도를 둔 북연왕 풍발의 영토로부터 서쪽이다. 즉 풍발의 동쪽에 있는 나라 고구려에게 풍발의 서남쪽 땅인 장무성을 달라고 할 수 없다. 즉 역사적으로 허위다.
"광개토왕 23년 계축(413년) 2월 태후(광개토왕의 친모)가 (광개토왕의 딸) 호태를 낳았는데 태후의 보령이 59세였다. "
이게 벌써 천강태후가 낳은 광개토왕의 세 번째 애다...그러나 정말 다행히도 광개토왕은 22년 412년에 돌아가셨고 414년 9월에 능을 만들었다. 즉 광개토왕 23년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말짱 다 거짓이니 박창화의 광개토왕에 대한 거짓 모욕은 명백하게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 아무렴 마흔줄의 광개토왕이 환갑된 어미에게서 세째 아이를 낳겠는가?
"24년 갑인(414년) 5월 광개토왕은 태후와 온탕에 갔다. 6월에는 부왕 국양릉에 갔다... 7월에 주류궁에서 돌아가셨는데 춘추 39세였다. 왕비 평양후가 황산에 순장되었다."
광개토왕은 412년에 39세였고 그해 돌아가신 것이다. 이는 광개토왕비문에 드러난 사실이다. 414년은 돌아가신지 2년후인데 3년장을 치른 해이고, 광개토왕의 나이를 따지면 41세다. 광개토왕은 391년에 18세로 즉위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