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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7 18: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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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nh_005_0030_0020_0010
고국양왕대에서 광개토대왕 초기사이로 추정됩니다. ( 기원후 390~400년 사이 )
(고국양)왕은 4만의 병력을 보내어 요동을 습격케 하였다. 앞서 (後)燕王(慕容)垂가 帶方王 (慕容)佐를 龍城에 주둔케 한 바 있었다. (모용)좌는 고구려군이 요동을 습격하였다는 말을 듣고 司馬 郝景을 파견하여 구원케 하였으나, 아군이 이를 격파하고 마침내 遼東(郡)과 玄菟(郡)를 함락시키고 남녀 1만여 명을 포로로 하여 돌아왔다(≪三國史記≫권 18, 高句麗本紀 6, 고국양왕 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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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양왕 즉위초에 요동점유는 일시적이었고 이후 후연과 분쟁을 통해 요동지방을 확고하게 점유하게 된걸로 보입니다.
(광개토)왕이 군사를 보내어 宿軍城을 공격케 하니 (後)燕의 平州刺史인 (慕容)歸가 성을 버리고 도망갔다(≪三國史記≫권 18, 高句麗本紀 6, 광개토왕 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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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 11년의 기사는 요서지역에 대한 공세를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전에 요동지역에 대한 점유가 확고해진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