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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0 23: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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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이 조선에 조공을 했던 기록을 보면 동아시아에서 기본적으로 조공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알수 있습니다.
조공은 정치적 종주권을 인정하는대신에 반대급부로 제공되는 경제적 시혜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진도 그랬고 여타 중국의 북방민족들도 중국과 그런 형태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nh&setId=1420557&position=201 / 신편한국사 22권
여진은 명뿐만 아니라 조선에 대해서도 조공을 하였다. 지리적 관계로 건주여진이 조선과 빈번히 교섭을 가졌고 내지의 해서·야인여진도 끊임없이 조공하여 왔다. 특히 지리적으로 명보다는 조선과 교섭을 갖는 것이 유리하였던 야인여진이 조선에 입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진은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하여 명에 입조하여 위소를 설치받았고, 명의 관직과 勅書를 받은 대소 추장들은 조선에도 입조하였다. 두만강 일대에 거주하던 건주좌위와 모련위의 여진족들 중에는 조선에 복속하여 都萬戶, 萬戶 등의 관직을 받았으나, 명 성조의 초무를 받아 명에 복속하여 명의 관직과 칙서를 받은 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대다수의 여진은 명과 조선의 양국에 입조하여 조공을 하고 관직을 받았다. 양국에 조공하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화를 더 많이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