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인페이지
개인차단 상태
YouMeLove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회원가입 : 11-11-10
방문횟수 : 2007회
닉네임 변경이력
일반
베스트
베오베
댓글
8635 2015-10-17 13:36:49 0
국정교과서 찬성 교수 102인 명단 [새창]
2015/10/16 18:34:46
저렇게 국정교과서 만들어도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거부의사 밝히면됩니다.

원래 교과서 선정 기준이 학부모(학교운영위원회) 에 있는거죠. 그래서 교확과 교과서는 탈탈 털렸고

교학사교과서가 털리니 학교운영위원회도 어쩔방법이 없도록 국정교과서 를 만드는거죠

즉. 교학사죠과서= 국정교과서 말만바꼈을뿐입니다.

학부모들이 강하게 저항하면 국정교과서도 그저 라면깔개 수준이 될겁니다.

부모님들 꼭 거부합시다. 저도 제새끼가 저딴 쓰레기 교과서로 공부하는꼴 못봅니다.
8634 2015-10-17 13:31:58 17
아저씨 고기 그람으로 팔아요? [새창]
2015/10/17 00:01:07
아무리...노잼이라지만 사정도 모르고

mg(미리 그라믄) 안되
8633 2015-10-17 13:29:50 1
아기 낳아서 관절 아프다는 건 착각입니다. [새창]
2015/10/16 13:32:04
22개월 딸아이 아빠인데...애 때문에 아픈건 모르겠고..

잠을 좀 시원하게 잣으면 하는게....
8632 2015-10-15 17:16:38 0
손혜원의 친일독재 국정교과서 반대 이미지 29종 모음 [새창]
2015/10/15 02:35:24
김일성 우상화 안되 그거 좌빨이야

박정희 우상화 되! 그건 애국자야

새누리당 내로너불
8631 2015-10-15 14:54:57 16
큰일 났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아... [새창]
2015/10/15 09:56:46

새누리당 : 김일성을 비롯한 주체사상은 나쁩니다!!

그러나 박정희 우상 숭배는 좋습니다!!!!!!!
8630 2015-10-15 13:58:18 0
결국 JTBC토론이 자폭이 되는군 [새창]
2015/10/14 21:34:22
쌀지을 땅자체를 뺃어갔는데....땅은 수탈했지만...쌀은 수탈이 아니다???????????????

벼를 공중부양 시켜서 키웠나????????????
8629 2015-10-15 13:55:51 0
결국 JTBC토론이 자폭이 되는군 [새창]
2015/10/14 21:34:22
1 위 자료만봐도..수탈이지 이게 어떻게 수출일까................뇌가없나
8628 2015-10-15 13:54:52 0
결국 JTBC토론이 자폭이 되는군 [새창]
2015/10/14 21:34:22

문제는 증거가 없는것도 아님...
--------------
일제강점기 초기 전북 군산항에 쌓여 있는 쌀가마니. 호남과 논산평야에서 생산된 쌀은 ‘전군(전주∼군산)가도’를 따라 군산항에 모인 뒤 일본으로 반출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우리 근대의 잦은 풍경 중 하나는 ‘배고픔’이었다. 근대화의 꽃을 피우지 못한 식민지 국민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기도 했다.

한일강제병합 후 일제는 곧바로 토지조사사업(1910∼1918년)에 착수했다. 토지소유권을 보호하고 토지세를 공정히 걷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토지는 국책회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비롯한 일본 토지회사와 일본인들에게 싼값에 매각됐다.

당시 신문에는 소작인이나 지주들이 동척을 상대로 소유권 반환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 전남 나주에 있던 궁삼면(1914년 행정관할 구역 통폐합 이전의 전남 나주군의 지죽·상곡·욱곡면 등 3개 면) 토지 약 1200ha를 매입할 때는 권리를 주장하는 농민과 지주들을 헌병이 포위한 뒤 동척 소유임을 강제로 인정케 했다.

특히 무지주 무신고 토지는 그대로 총독부의 소유가 됐고 강제로 매입이 이뤄져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충남대 허수열 교수(경제학)에 따르면 1900년대 초반 일본인 소유 논밭의 면적은 전체의 10%대였지만 비옥한 토지를 주로 차지했기 때문에 쌀 생산량의 비중은 25%나 됐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는 산미증산계획을 펼쳐 천수답을 수리답으로 만들고 금비(화학비료) 사용을 강요했다. 1921년 1400만 석이던 쌀 생산량은 1928년 1700만 석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일본으로 빠져나간 쌀의 양은 300만 석에서 700만 석으로 늘어 증산량보다 많았다. 쌀의 보관과 수송에 필요한 가마니 확보를 위해 초등학생들에게 겨울방학 숙제로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게도 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 총독부가 식량 강제 공출에 나서 식량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순사와 면서기를 앞세워 집 안에 숨긴 쌀 적발에 나서고, ‘조반석죽(朝飯夕粥) 운동’ ‘한 숟가락 덜 먹기 운동’도 벌였다. 쌀이 귀해지자 총독부는 밀가루와 메밀가루를 압착해 쌀알처럼 만든 면미(麵米)를 유통시켰다.

총독부는 또 회사령과 광업령 등으로 조선인들이 허가 없이 회사나 광산을 가질 수 없도록 해 산업화의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했다. 허 교수는 “수탈의 개별 사건들은 겉으로 매입 등 합법적인 방식을 띠었지만 일제는 소작체제라는 거대한 사회시스템을 이용해 구조적으로 수탈을 했고, 조선 기업의 성장을 막아 근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빼앗았다”고 말했다.
8627 2015-10-15 13:43:02 0
결국 JTBC토론이 자폭이 되는군 [새창]
2015/10/14 21:34:22
태평양전쟁 (1941~1945)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 일대와 동남아시아 지역을 무대로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중앙 태평양 전선과, 중국 전선 및 영국-인도군이 주도한 버마-인도 전선, 호주군이 주공을 맡은 남서태평양 전역을 포함한다.

자유시민: 4년동안 만 수탈해 갔어요 그전에는아닙니다

일반시민: 뭔개소리예요

자유시민: 1941년 전에는 1000원짜리 1원이라도 주고 가져갔으니까 수출이구요. 1941년후에는 1원도안주고 가져갔으니 수탈 이겠지요

일반시민: ?????????????????????????????????????????????무슨소리에요??

자유시민: 태평양전쟁전에 쌀을 수탈해 갔다는 증거나 기록이 없어요..그니까수출이죠

일반시민: ???????? 증거가없으니 수출이다??????????????????????????
8626 2015-10-15 13:41:51 0
결국 JTBC토론이 자폭이 되는군 [새창]
2015/10/14 21:34:22
그래서...정당하게 수출했다는 증거나 기록은 어디있는건가요??
8625 2015-10-15 13:40:41 0
결국 JTBC토론이 자폭이 되는군 [새창]
2015/10/14 21:34:22
태평양전쟁 터진 다음에야 쌀 수탈이 일어났지만
그전에는 일제가 강제로 쌀을 빼았아 갔다는 기록은 별로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제가 전쟁전에는 쌀을 강제로 뻇어가지 않았다는 거지요
--
------
전쟁전에는 수탈이 없었다. 왜냐면 기록이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출이다 .
--
이게 뭔 개소리지....이해가안되네 당췌...
8622 2015-10-14 14:37:11 3
[새창]
박희팔
8621 2015-10-14 14:30:21 1
황교안 "日 자위대, 부득이한 경우 한반도 진출 허용" [새창]
2015/10/14 12:47:58
아니 이럴라면 군대는 뭐하러 유지해

전쟁나면 돈주고 자위대랑 미군불러다 용병처럼 써먹지 ..시발..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 106 107 108 109 110 >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