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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2 06: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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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일단 돈, 화폐란건 기본적으로 교환가치란 것은 아시죠.
정상적인 경제환경, 사회를 벗어나면 돈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예를들어 아무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나, 무인도에서 돈은 아무런 가치도 없죠.
또는 화폐가 발달하지 않은 고립된 원시사회에서도 돈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겁니다.
요컨대, 돈은 그 자체가 실질은 아니며, 돈으로 교환할수 있는 다른 가치의 표상이란 겁니다.
얼마만큼의 돈이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고, 차를 살 수 있고, 집을 살수 있는지 나타내는 수치일 뿐인 겁니다.
돈은 비록 교환가치고, 그 자체가 실질은 아니지만, 그것이 교환되는 대상, 밥, 차, 집 등은 실재적입니다.
예를들어 작성자님이 식당에서 밥을 드신다고 해봅시다.
작성자님은 돈을 냈을 뿐이지만, 밥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작성자님이 스스로 밥을 지어먹는 대신, 누군가 밥을 짓는 노동력을 사는 것이죠.
누군가는 작성자님을 대신해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손수 요리를 하는 수고를 한 것입니다.
물론 작성자님이 식당 주방장의 노동력을 먹는 것은 아니죠.
식당에서 구매한 음식의 값에는 식당에서 제공하는 노동력은 물론, 음식의 재료 자체의 값도 포함되 있습니다.
식당에선 직접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대신 시장에서 재료를 사올겁니다.
식당은 농부가 쌀을 기르고 가축을 기른 노동력을 사는 것이죠.
작성자님이 식당에서 밥을 사먹기 위해 지불한 역시도 돈은, 허공에서 나타난 것이 아닐 겁니다.
작성자님이 일해서 번 돈, 또는 작성자님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누군가 일해서 번 돈인 거죠.
결국 돈을 교환한다는 것은 노동력을 교환하는 겁니다.
돈으로 표상되는 모든 실재적 가치는 누군가 노동을 해서 발생시킨 가치입니다.
어떤 상품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여러가지 재화가 필요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그 과정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의 합이라는 거죠.
이것이 노동 가치설이라는 겁니다.
자본거래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을 신봉하며
가치가 시장에서 창조되는 것처럼 믿지만, 사실 아담 스미스도 노동가치설에 기반해서 이론을 펼쳤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시장 거래를 통해 분업과 전문화가 발생하며
이를 통해 노동의 생산성을 향상시킬수 있음을 주장한 것이니까요.
즉 노동력의 교환은 내가 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밥도 짓는 대신,
내가 필요한 다른 재화의 생산은 그 분야에 뛰어난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전문화한 상품만을 생사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비록 내가 농부가 아님에도 걱정없이 밥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거죠.
가치가 노동을 통해서만 발생한다는 것은 일견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화폐란, 가치를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그럼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정량화 할 수 있을까요?
예를들어 물감을 찍찍 뿌렸을 뿐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화가 잭슨 폴록의 1948년작, No.5라는 작품은 약 800억원 상당에 거래되었는데,
그렇다면 잭슨 폴록이 물감을 한번 뿌리는 노동의 가치는 수억원의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요?
잭슨 폴록이 물감이 질질 흐르는 붓을 휘두르는 노동의 가치는 연봉 3000받는 공장 노동자가 몇년간 일하는 노동의 가치와 같을까요?
등산하다 우연히 수억원에서 최대 수백원에 이르는 20kg짜리 운석을 주운 사람은 어떤 노동을 했기에 그만한 돈을 버는 걸까요?
운석을 들고 나르는 과정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요?
그런 식으로 가치가 측정 되는 건 아닌 거죠. 마르크스는 초과이윤이 착취에서 나온다고 설명했지만,
그런 설명은 직원을 쓰지 않는 잭슨 폴록이나 운석을 주운사람에 대해선 설명하지 못하죠.
사실 꼭 신자유주의적 입장이 아니라도 현대 경제학에서는 노동가치설은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경제학에선 가치가 결정되는 방식을 희소성의 법칙이라고 부르죠.
인간의 욕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법칙.
이 법칙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것이 수요 공급의 법칙입니다.
수요, 즉 인간의 욕구의 크기에 비교해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공급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원리죠.
가치는 노동에서 발생하는게 아닙니다. 가치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동을 하는 거죠.
노동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시장이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면 노동을 통해서 쓰레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반대로, 욕구를 잘 충족시켜주시만 한다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심지어 운이 좋아 노력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가치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구를 읽어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를 읽어내기 위해, 시장을 분석하고 조사하는 것,
그 욕구에 부합하기 위해 재품의 품질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노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원을 적재적소에 분배하기 위한 투자분석, 경영자의 경영활동 역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을 투입하는 것,
일종의 지적 노동이라고 할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까지를 노동이라고하고, 어디서 부터 노동이 아니라고 구분해야 하는 것일까요.
현대 자본주의는 그보다 더 복잡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재벌들만 봐도 그렇죠. 사실 재벌 2세는 그런 지적노동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적 노동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면 되고, 자본과 구조를 소유하는 것만으로 더 큰 부가 들어오니까요.
이번 한진해운 사태의 경우는 가치를 파괴하고 파탄내면서도 자본가는 별 피해를 보지 않았죠.
현대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권력입니다. 마르크스적 관점이 아니라도 착취는 존재하죠.
이거에 대해서 더 자세히 쓰고 싶지만... 너무 길어지네요.
사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건 투기거래나 차익거래의 경우인데...투기거래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있긴하지만
나름 순기능을 하는 면도 있습니다. 투기자들 역시 단순히 도박성이 아니라, 이익을 보기 위해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기 때문에
가치평가에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시장에 반영하도록 만듭니다...
물론 경제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돈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과 실재성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가 되겠군요.
쓰고보니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은 전부 경제학적인 관점일 뿐이네요..
그래도 돈이 노동과 유리되면 실재성을 잃어버린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