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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44 2020-02-21 19:09:50 18
옷을 잘 못 구매한 누나 [새창]
2020/02/21 18:55:00
누나가 잘했네..
15543 2020-02-21 19:04:24 0
신천지때문에 자가격리중이네요.. [새창]
2020/02/20 23:10:09
렌드릿사/물론 조심해서 나쁠게 없죠..
그래서 집에서도 마스크 하셔야 한다고 쓴거고.
통계적인 근거로 볼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거지
아무런 조치도 할필요 없다고 한건 아니에요.
제가 안심시켜드리자고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니고,
틀린말 한건 없다고 생각해요
15542 2020-02-21 17:44:54 40
배달기사가 못 빼먹게 단단히 포장해주세요 [새창]
2020/02/21 17:42:09
바쁜데 저러고 싶을리가.. 해달라니까 한거지..
15541 2020-02-21 17:42:43 11/16
알바 잘린 이유가 타당하다 VS 오버다 [새창]
2020/02/21 17:34:04
그런 규정이 있나요?
15540 2020-02-21 05:13:17 7
이런 상상 안해보셨나요? [새창]
2020/02/21 04:06:20
와 저랑 완전 똑같음
15539 2020-02-21 03:27:24 0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18 05:13:34
미로의시련/음... 제가 님의 견해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님과의 대화는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댓글들을 삭제하셔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네요..
15538 2020-02-20 23:16:35 89
신천지때문에 자가격리중이네요.. [새창]
2020/02/20 23:10:09
인플루엔자는 노약자와 어린이 등, 면역력이 약한 계층은 모두 잘 걸리는 편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와는 다르게 고령자가 주로 걸리고 어린이는 오히려 잘 걸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절대라는 것은 아니니, 집에서도 마스크 잘 하고 손 잘 씻고 몇주정도 지내시는게 좋겠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거에요.
15537 2020-02-20 20:17:56 1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18 05:13:34
1.제가 주장하는 바는 1차원 척도의 가치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비존재는 하나의 특이점일 뿐입니다.
히파티아의 예시를 말씀하셨는데, 물론 우리는 단순화된 사고실험을 통해 어떤 답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화된 모델은 우리 삶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컨데, 죽음 또는 자살에 대해서, 우리는 물론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사느니 죽는게 차라리 낫겠다'는 선호를 가질 수 있겠죠.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수 있는 선호관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대로 사는 것'과 '죽음을 선택하는 것' 사이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호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선택을 내리지만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결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수능 시험을 망쳤거나, 사업에 실패하고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거나, 고통스러운 질병에 걸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결심했다가 돌아서기도 합니다. 그렇게 돌아선 사람들은, 결국 다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그 때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결국 무엇을 고르는 것이 더 나았는지 우리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서 엄밀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 누군가 '존재하지 않음'을 선호할 수 있다(또는 선호한다)는 특정 사실에 대해서 논리적인 문제는 없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그건 가치판단이나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이고 현상일 뿐이죠.
문제는 그러한 사실로부터 '비출생주의'를 결론으로 도출한다는 점입니다.
'우주가 존재를 탄생시킨 것은 죄악이다'와 같은 비약적이고 극단적인 주장과,
'존재하지 않음을 선호할수 있다'는 현상이나 가능성은 너무나 동떨어져있습니다.
위에서 말했지만, 그 사이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비출생주의는 하나의 대안일 뿐, 유일한 대안이 아니며 의무도 아닙니다.
비출생의 엄밀한 가치비교는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불가합니다.개별적 선호를 윤리적 근거로 삼는다면, 그에대해 반발하는 감정적 선호 또한 대등한 윤리적 근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3. 님의 논리에서 동의가 중요한 연결고리로 작동하는데,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동의는 분명히 중요한 윤리적 쟁점이지만,
모든 윤리적 딜레마에서 동의가 필연적으로 수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자유주의는 법률이 우리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로서 사회계약론을 통해
국가 제도와 법률은 가상의 사회적 계약이며 암묵적 동의가 존재한다고 설명하는데,
그러한 암묵적 동의는 엄밀히 말해서 존재하지는 않으며, 개개인에 대한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요컨데, 누군가 대마초를 금지하는 법률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할 때, 그 사람이 대마를 금지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순전히 우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런 우연성이 법률의 정당성을 해하지는 않습니다.

좀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 운전이라는 행위는 잠재적으로 교통사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운전을 하기 위해 매일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겁니다. 동의를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운전이라는 행위는 인권의 관념에 기준해 볼때 매우 범죄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판단할 수 있습니까?
적어도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동의여부나 극단적인 잠재적 가능성을 두고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운전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개별적 상황에서 운전자가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한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를 따질 것입니다.
그러한 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는 우연적 요인에 의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의 책임을 묻지 않거나 감경되기도 합니다.

부모의 책임 또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동의 여부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출산 그 자체에 대해서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출산이 비윤리적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삶의 결과론적인 행복 여부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녀를 갖는 것에는 분명 여러가지 윤리적 의무들이 뒤따르며 무거운 책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의무들을 다 이행했다면 윤리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5536 2020-02-20 19:50:26 2
우한 바이러스라는 호칭? 회사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새창]
2020/02/20 17:10:43
병명에 지역명을 붙이지 말자는건 권고죠.
지역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고, 실제로 우한이나 중국에 대한 혐오도 많이 나오기도 했죠.
그런 표현을 기피하자는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메르스 때도 중동이라는 표현을 빼야한다는 이야기가 조금이지만 나왔습니다.
기존에 해왔다는게 계속 그렇게 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수는 없습니다. 이전에 잘못해온 것은 바꿔나가는게 맞는거죠.
우한폐렴이라는 말을 굳이 고집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것뿐이죠.
15535 2020-02-20 19:29:21 0
지역명 국가명을 붙이는건 차별입니다 [새창]
2020/02/20 19:25:55
원자력11이 맞는거 아닐까요
15534 2020-02-20 11:59:26 0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18 05:13:34
제가 공리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의 글을 쓰긴 했으나, 저는 평소 공리주의와 자본주의를 긍정합니다. 다만 명확히 존재하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칸트의 사상은 이성을 강조하므로 합리주의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종합한 것이지 경험론을 배척하는 사상은 아닙니다. 따라서 칸트가 경험론자인 버클리, 흄과 명백하게 대립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또한 전혀 대립관계가 아닌데, 공리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의 하나입니다. 공리주의의 대표 사상가 중 하나인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주의 이론에 있어서도 지대한 공헌을 한 철학자입니다.
...
그리고 그냥 궁금해 여쭙는 것인데요,
저분을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수치플레이 같은 건가요..?
15533 2020-02-20 11:36:26 0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18 05:13:34
null과 0이 다르다는 말씀은 동의합니다.
제가 비존재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확실히 null에 가까운 개념이겠죠.
좋은 표현을 제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죽어서 사라진다고 해도 null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리적인 '시공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물질적 연속성이 있다는 점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물질적 구성은 주관, 자아, 정체성을 가지는 단위로서 '나'의 존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구성하고 있던 신체의 세포들은 시간이 지나면 죽어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것들은 저를 구성하던 물질이지만 저 자신이라고 하지는 않죠.
좀더 극단적으로 말해 저의 팔은 제가 아닙니다. 제 팔을 잘라 놓는다고 그게 곧 제 자신이 분리되는 건 아닙니다. 저의 시체, 저의 잔해 또한 제 자신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 중에는 과거에는 누군가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성분일지 모릅니다. 거름이 되고 먹이가 되어 그것을 먹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을지 모르죠. 그렇다고 그 사람이 우리가 된 것은 아닙니다. 명백히 그 사람은 현존하지 않죠.
15532 2020-02-20 08:48:44 3
엘지 디스플레이 근황.gif [새창]
2020/02/20 07:24:46
55555!의 값은 아래 링크에 나와있습니다.
https://ko.numberempire.com/gammafunctioncalculator.php?number=55556&_p1=2374
참고로 무량대수는 셀수없이 큰수라는 말이지만 구체적으로는 10의 68제곱 또는 10의 128제곱, 즉 128자리 수인데, 55555!는 대략? 20만자리 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15530 2020-02-20 07:51:57 0
비존재의 가치 [새창]
2020/02/18 05:13:34
미로의시련/
저도 사변적인 논쟁은 별로 안좋아하는데요..
뭔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좀 난해하네요.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분명하게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깊이는 스스로 명상해서 찾으시던 하시고,
남의 인생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으면서 깊이가 어쩌네 하시진 마시길 바래요.. 완전 꼰대..

1.가치판단-존재판단이 분리 불가능하다는 말씀에 대해:
제 논지에서 '존재 판단'이라는 개념은 사용하지 않았고,
님도 따로 정의하거나 부연하지 않으셔서 존재 판단이란게 명확히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가치판단과 존재판단이 분리 불가능하다는 님의 말씀에 대해선 맞다 틀리다 드릴 말씀이 없네요.

다만 '판단'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이 있는 '존재'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고, 당연히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현실세계의 '존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가치관의 영향은 필연적이므로, '존재 판단'이 무엇이든 간에 가치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말하긴 어렵죠.
만약 이런 점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존재를 배제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존재라는 표현 때문에 의미가 와전된 것 같은데,
제가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실재하는 존재, 실존으로서의 개별자인 개개인에서 확장해 주관을 가지는 모든 존재로 일반화하고자 사용한 표현이지, 존재 여부를 판단하자는 사변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2.예시와 논의 자체에 내포된 자기모순적 한계에 대해:
자기모순적인 한계가 암시되어 있다고 주장하시는 근거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무엇을 비판하고 싶으신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모순이라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런 예시를 사용한 이유를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단순히 쾌락과 고통의 합산으로 가치판단을 내릴때 모순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보이고자 든 예시이니 모순으로 보이는게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물론 논증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칠지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는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과는 무슨 관련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 칸트가 시도한 '주관과 객관을 구분하려는 논의'의 연장:
사실 저는 칸트 철학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난해할 정도로 엄밀하지만, 그런 엄격한 논리의 결과물이 별로 현실적이진 않으니까요..
말씀드렸지만 저도 사변적인 논쟁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피하지는 않겠지만요.

어쨋든 그래서 제 주장이 칸트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신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제 주장은 딱히 칸트와는 관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 관점은 유아론에 더 가깝습니다. 누누히 말하지만 저도 사변적인 논쟁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인식론까지 거슬라 올라가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사변적 주장을 굳이 하지면, 본문에서 이미 언급한 바 대로 '가치는 오롯이 주관의 존재로부터' 나온다고 봅니다.
바꿔 말해, '나'라고 라는 유일하게 실존하는 주관에 의해 가치판단이 이뤄집니다.

물론, 객관이라는게 완전히 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님이 인용하신 흄의 '관념의 다발'이라는 걸 제가 알고 있는 다른 표현으로 말해본다면, '객관은 다수에 수렴하는 주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결국 절대적인 객관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객관 또한 주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관이 완전히 배제된 세계에서 객관적 가치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비존재가 비교 불능이라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흄의 입장을 취하든 버클리의 유아론적 입장을 취하든,
당신의 스승이신 미사타스빈 님의 주장이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보는 이유는 그것이 미사타스빈 님 개인과 그에 동의 하는 일부의 주관 속에서는 비록 참일지 모르나,
그를 일반화하여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거나 '출산은 비윤리적이다' 같은 명제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당위라고 주장하는 것이, 타자의 주관을 침범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4.가치의 비교불능성에 대해:
분명히 해두자면, 저는 가치 중립이 어떤 방식으로도 비교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가치가 언제나 비교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 하나로서 비교불가능한 가치중립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삶은 매순간의 선택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개의 선택은 언제나 가치비교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 비교가 항상 일관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삶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모순으로 가득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치는 A<B<C 같은 식으로 정렬되는 일차원 척도가 아닙니다.
A와 B가 주어졌을 때는 A<B,
B와 C가 주어졌을 때는 B<C라는 가치판단을 하더라도
A와 C가 주어질때 A<C라는 판단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며, A>C라는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윤리적 딜레마와 가치판단은 주어진 상황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일률적이고 일차원적인 단순척도로의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가치를 일차원척도로 비교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제도가 바로 자본주의이며, 자본주의가 비록 효율적이긴 하나 수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어쨋든, 개별적 상황과 입장에서, 삶보다 죽음이 더 낫다고 판단하거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편이 나았다고 가치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개별 존재의 주관을 배제하고, 가치의 다원성을 부정한채, 존재보다 비존재가 더 옳고 더 낫다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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