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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23: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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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고통받다가 죽느냐,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서는 우리는 경험을 토대로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고,
사고실험 속의 히파티아의 경험을 우리는 직접 겪지 않더라도 그 관점에 이입하여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죽음 이후나 탄생 이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관점에 이입 한다는 것도 엄밀히는 불가능하죠.
물론 비존재 상태에 대해서 상상하는게 꼭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생명체가 탄생하지 않은 가상의 우주, 완전한 無의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는 분명히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치체계도 없고 어떤 주관도 존재하지 않겠죠.
만약 무의 세계에서 어떤 관점을 상정한다면, 그건 실재하는 관점이 아니라 현존하는 우리가 만들어낸 가상의 관점에 불과합니다. 그건 천국이나 지옥, 유니콘에 대해서 논하는 것 만큼 허황된 이야기가 되겠죠.
그래도 상상하는게 불가능 하지는 않으니 그런 관점이 존재한다고 가정합시다. 이를테면 Fishcutlet의 사후, 세상이 멸망하고 모든 존재마저도 사멸한 이후에 Fishcutlet의 관점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아무런 행복도 고통도 느끼지 않겠죠.
집합론을 비유로 드셨죠. 공집합은 모든 집합에서 부분집합으로 들어간다구요.
비존재가 그렇다고 그런 존재라고 칩시다. 우주가 공집합이 아닌, 지금 우리 현실의 세계에도 비존재는 개념적으로 존재하죠.
태어날 수도 있었겠지만 실현되지는 않은 가능성의 존재들, 또는 이미 사라져버린 존재 같은 것들이요.
Fishcutlet이 죽고 난 이후에 우주가 무로 돌아가기 전까지, 비존재가 된 Fishcutlet의 관점에서 존재하는 우주를 바라봅시다. 완전한 무의 세계와 뭐가 다를까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완전히 무차별하죠. 어떠한 차이도 구분할수 있는 주관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모든 가치 판단은 존재하는 주관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사후 세계에 대한 망상이든, 완전한 무의 세계에 대한 상상이든 오직 지금 이 시점에 생생하게 현존하는 존재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지, 비존재의 관점이 아닙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는 무의 세계가 더 나쁘다는게 아닙니다.
단지 무의미하다는 거죠. 문자 그대로 無의미라는 겁니다.
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처럼 세상을 無로 되돌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히파티아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논해야는 것은
죽음이라는 상황까지가 삶의 과정이기에 어떻게 죽는 것이 더 나은가, 곧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가에 대한 논의이지,
'그런 끔찍한 삶을 사느니 차라리 일찍 죽어버리거나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는 논외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