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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3 03: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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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삶의 가치를 단순히 쾌락(살고자하는 욕구충족)과 고통의 산술적 합계로 이익이냐 손해냐를 계산해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죽고싶을만큼 끔찍한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의 삶이 가치가 없었다거나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때로는 끔찍한 삶을 살더라도, 때로는 그 끝에서 죽음을 선택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사후 세계를 믿고 싶어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본능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미래를 꿈꾸는 존재입니다. 오늘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저축하는 것도, 죽음 앞에서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것도, 사후세계를 갈망하는 것도, 사후세계와는 별개로 내 사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것도, 때로는 신을 위해, 국가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서까지 헌신하는 사람들도 단순히 살고싶다는 욕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너머에 무엇인가 있는 거죠.
그것이 꼭 옳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허황된 믿음, 잘못된 가치관일지 모르죠. 그러나 인간은 목적적인 존재이기에, 단순히 쾌락이 가득하고 고통이 없는 삶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목적을 스스로 정할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을 향한 길이 고난과 고통의 가시밭길이라도, 자신의 가치에 부합한다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반출생주의를 자신의 가치관으로 삼고 자발적 멸종에 동의한다면, 그것도 또한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서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간은 저마다 양심의 자유를 가지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러하니 반출생주의는 진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고,
새로 태어나는 세대에게 출생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책임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일지라 하더라도, 그것이 곧 아이를 낳아서는 안되고 인류는 자발적으로 멸종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