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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03: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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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저도 이미 그렇게 말했지만,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은 오직 남의 죽음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오롯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겁니다. 죽음은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것들이죠.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의미부여가 정신승리에 불과하다고 하기엔, 우리 삶의 너무 많은 것들을 바꾸어 버립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듯,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타인의 죽음은
많은 경우에 그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물론 누구도 그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죠. 그리고 자신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알수도 없구요.
그러나 우리는 미래의 자신의 죽음 뿐 아니라, 당장 내일의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내일 내가 무슨 일을 겪을지, 그 일로 내일의 나는 어떻게 바뀔지, 죽어있을지 살아있을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다만, 기대할 뿐이죠.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가 반복될 거라고, 또는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바꿀수 없고, 오늘의 나는 결코 내일의 내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를 기대하고, 과거를 후회하죠.
죽음 이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후 세계에 대한 기대는 망상에 불과하지만, 나의 사후에 내가 살아가던 세계에 나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있길 기대하는 것은
내일의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미래의 내가 그 기대가 실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현재의 내게는 무차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아무리 자신이 죽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후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우리의 행동을 바꿉니다.
극단적인 예로서...사회에 대한 불만을 무차별 학살이라는 방식으로 표출하고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후에 대한 어떤 기대나 미련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며, 가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높은 확률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들 용기를 가진 사람들,
물론 그 자신도 살기를 원할 것이고 살아날 희망을 품고 행동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사후에 그가 그 행동의 결과를 확인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지금의 내가, 나의 죽음(의 가능성)과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의 가치를 무게질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런 자기희생적인 고귀한 행동의 결과로 죽음을 맞이 했을 때, 그에 걸맞는 존중심을 가지는 것은
죽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고 살아가는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 부여가, 단순히 정신승리와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이라 하기엔 너무나 무겁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