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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9 00: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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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에는 위아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생명이 평등한 것 역시 아닙니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농담 중에, 두 사람이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하겠냐는 질문이 있죠.
이런 질문은 대체로 갈등이 될만큼 중요한 사람들끼리 붙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묻겠습니다. 님이 만약 자녀가 생긴다면,
님의 자녀와 생판 모르는 남, 두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누구를 구하시겠습니까?
다른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님이 물에 빠졌고, 님의 같은 반 아무개가 물에 빠졌습니다.
옆에는 한사람이 겨우 매달릴수 있는 판자가 떠있다고 칩시다. 두사람 모두 매달리면 둘 다 가라앉게 됩니다.
님은 같은 반의 아무개에게 그 판자를 양보하실 겁니까? 아니면 님이 살기 위해 판자를 빼앗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그 자신이 타인보다 중요하고,
자신의 가족, 친구, 그밖에 가까운 존재가 남보다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닙니다.
동물과 식물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문제는, 모두가 그런 이기주의를 추구한다면 결국 모두가 파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를 공감하고, 윤리를 적용하는 범위를 확장해 왔습니다.
나>가족>친구>이웃>국가>인류>동물>식물>모든 생명체>무생명체와 같은 순서로 윤리 적용의 범위는 차츰 넓어져 갑니다.
이것이 피터싱어가 주장한 윤리적 하노이의 탑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최상위 범위, 그러니까 생명체와 무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윤리적 대상으로 보는 것만이 유일한 판단기준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도덕적 갈등의 기로에서, 나와 내게서 가까운 존재의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 아니면 보편적 존재의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 반드시 고민하게 됩니다.
물에빠진 자식과 전혀 모르는 타인 둘 중에서,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선택하는 것이 옳을까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객관적인 태도로 결국 타인을 구하는 것을 선택했다면,
누군가는 그런 선택을 한 고귀한 희생정신이라고 칭찬할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기 자식조차 버린 냉혈한이라고 욕할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결국 근본적인 이기심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공감이 가지 않는 먼 존재 보다는 공감이 가는 가까운 존재를 더 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생존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틀린 것 또한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