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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2014-10-31 12:55:48 0
오카모토 콘돔 쓰지 마세요.JPG [새창]
2014/10/31 08:28:27
콘돔이 아니라 콘돔 제조사를 문제 삼는 거 아닌가요? 칭다오는 이미 독일기업이 아닌 중국 소유고. 비유가 부적절한 듯...
940 2014-10-31 12:52:54 38
21세기 한국현실을 정확하게 예언한 플라톤의 격언 [새창]
2014/10/31 08:33:53
흔히들 하는 말 "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 " <-- 정치는 시민의 권리인데?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바로 가장 정치적으로 기득권, 현정권을 보호하려는 자들이죠.
939 2014-10-31 12:51:27 2
P라는 사내 [새창]
2014/10/31 09:32:02
이런 글엔 꼭 세심한 반대가.. 반대하려면 논리라도 펴든지.. ㅉㅉㅉ
938 2014-10-30 10:35:13 0
파스칼의 도박 논증 [새창]
2014/10/30 09:56:46
1 네 파스칼의 논쟁을 님처럼 그렇게, 즉 "기댓값에 대한 논증일 뿐"으로 이해하면 되는 건데.
저 같이 머리가 단순한 사람들은 파스칼의 논증을 신이 존재하는 증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신을 믿어야 하는 당위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파스칼의 논쟁의 한계에 대한 글을 올린겁니다.
937 2014-10-30 10:03:10 0
파스칼의 도박 논증 [새창]
2014/10/30 09:56:46
1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파스칼에게는 그 신이 XX겠죠. 아마도.
936 2014-10-30 09:51:29 1
[새창]
마틴 루터가 지동설 믿는 소리 한다.

(실제 마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에게 한 말
"이 바보가 천문학이라는 과학을 통째로 엎어 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성서에 분명히 쓰여 있듯이, 여호수야가 멈춰라 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다.")
935 2014-10-29 20:45:46 1
국적이 뒤바뀐듯한 포털들의 국적.capture [새창]
2014/10/29 20:29:37
특목고나 자사고, SKY 에 자식 보낸 강남 어머니의 Role model? 흑인도 자유를 얻은 21세기에 왠 시대착오적인.... 차라리 허난설헌이나 유관순이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저 시절에는 신사임당이 최선의 행동이였다? 라고 얘기 하시는 분들께 이런 말을 하고 싶네요. 아들이 이율곡이 아니였다면? 아무 의미없는 강릉 촌 아낙네의 인생...
934 2014-10-29 20:42:05 5
국적이 뒤바뀐듯한 포털들의 국적.capture [새창]
2014/10/29 20:29:37
신사임당 얘긴가요? 솔직히 신사임당이 제일 가치가 높은 지폐에 그려져 있는 현실에 화가 나는 1인입니다. 도대체 여가부나 페미니스트들은 뭔 생각들인지..
933 2014-10-29 20:33:31 0
10월 26일 이토를 처단한 이유 [새창]
2014/10/28 08:36:26
글쎄요.. 명성황후 대목은.. 우리 조선 동포가 프랑스 혁명처럼 조선 민중이 나서서 죽여야 했는데 일본놈 니들이 먼저 죽인 죄..? 로 바꿔야 할 듯.
932 2014-10-29 20:27:46 1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이야기 [새창]
2014/10/28 03:48:05
무플 방지 엔하위키 내용

1. 소개
한국의 독립운동가, 법조인이자 정치가이다. 호는 가인(街人)이다.

2. 일생
2.1. 구한말 ~ 일제강점기
1887년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집안의 가장이 되었으며, 조선 최후의 거유(巨儒)라 불리는 간재 전우 문하에서 전통적인 성리학 교육을 받다가 1906년 창평군의 창흥학교에 입학했다.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전문부 법학과와 메이지대학 야간부 법학과에 입학하여 동시에 두 학교를 다녔으나 폐결핵으로 귀국했다. 1912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3학년에 편입하여 이듬해 졸업하고, 1914년 주오대학 고등연구과를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한 뒤 경성전수학교와 보성법률상업학교의 강사로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맡았으며, 1919년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서 개업했다. 변호사 시절 그는 수많은 독립운동 관련사건을 무료변론하였으며, 다채로운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으며, 1927년 좌우합작 성격의 합법적인 단체였던 신간회에서도 적극 활동했다. 대표적인 민족변호사로서, 긍인 허헌, 이인과 더불어 '3인'(세 사람 모두 이름이나 호에 '인'이 들어갔으므로)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1932년부터는 경기도 양주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광복될 때까지 13년간을 은둔생활로 일관하였다. 따라서 창씨개명하지 않았고, 일제의 배급도 받지 않았다.

2.2. 미군정 ~ 대한민국
8.15 광복 직후, 초창기에 건국준비위원회에 가담하려 했으나 이내 곧 건준위 내부에서 급진화되어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되자 이에 반대의사 밝히며 합류하지 않고 9월 초,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1946년 좌우합작운동 활동 당시 합작노선을 지지표명하며 한민당을 탈당했다. 이후 남조선 과도정부 사법부장을 지냈다. 1948년 초대 대법원장, 1953년 제2대 대법원장이 되어 1957년 70세로 정년퇴임하였다. 동지 허헌과는 달리 보수주의자로 6.25 전쟁 중 북한군에게 아내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공보다 인권을 우선시하였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1950년에는 골수암 치료 때문에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다리를 절단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터져서 불편한 몸으로 피난 생활을 겪었다. 이 때 아내를 친정인 담양으로 보냈다가 북한군에게 아내가 살해당하기도 했다.
제왕적 사고를 가지고 있던 이승만과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대립하는 관계였으며 초대 대법원장 임기 중 반민특위 활동 적극지지하였고 반민족행위 처벌 재판 판사로 활동하여 이승만과 대립하기도 했다. 또한 전시중이던 1952년 이승만이 일으킨 부산 정치파동에도 반발하였다. 이승만이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자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면 될 일'이라고 받아친 것은 오늘날까지도 명언으로 꼽힌다. 그가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소장 판사들을 보호한 덕에 사법부는 비교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후임으로 친일 판사 백한성, 민복기, 김용철 등 그의 후임 대법원장들은 그만한 역량이 없거나 오히려 독재정권에 아부한 탓에 사법 파동, 10월 유신을 거치면서 사법부의 독립은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정년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하였으며 1960년 총선 때 고향인 순창군에서 민의원 후보출마했으나 낙선했다.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의 민정 참여와 군정의 지속을 반대하였으며, 1963년 민정당 대표최고위원과 ‘국민의 당’의 창당에 참여하여 그 대표최고위원으로 윤보선, 허정과 함께 야당통합, 대통령 단일후보 조정작업 등 야당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듬해인 1964년 별세하였다.
말년에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후손 중에는 손자 김종인이 있다.

3. 흑역사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씨와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이태영이 여성 인권의 향상을 골자로 한 가족법 개정안을 제출하자 "천오백만 여성들이 불평 한 마디 없이 다 잘 살고 있는데, 법률줄이나 배웠다고 건방지게 법을 고치라고 나서다니!"며 호되게 꾸짖었다고. 이것은 그가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받은 보수주의자임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봐야할 것이다.
신간회 활동 당시, 지도부 위치에 올랐을때, 자치론자들과 제휴를 모색하는 등 타협적인 노선을 띄어 지방의 신간회 지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타협적인 지도부의 등장은 이후 신간회 해소론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고, 조직은 급격한 쇠퇴의 길로 빠져들게 만든 장본인으로 비판받는 시각도 있다
931 2014-10-26 19:32:52 1
10월 26일이 되면 생각나는 인물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새창]
2014/10/26 18:31:03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제 생각도 밝히겠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고요.

김재규 영웅만들기는 저도 반대입니다. 또 다른 영웅사관 냄새가 풍겨서요..
그러나 독재자가 죽은 사실과 그로 인해 민주화가 되었던 안되었던 간에
김재규의 의도가 우발적이였든지 계획적이였는지를 떠나서
그 사건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후락 및 부패 정치인들 싹 몰아내는 등 상당부분 정권 물갈이가 이루어졌고
전두환 이후의 대통령들이 독재의 꿈을 버리게 된 점 등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0월 26일이 되면 김재규가 생각나구요.

뭐 정권 실세로 잘 먹고 잘 살았던 놈이지만 그래도 제 마음 속에는 긍정적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930 2014-10-26 19:13:42 1
10월 26일이 되면 생각나는 인물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새창]
2014/10/26 18:31:03
1 주어는 밝히지 않았는데... 진지 드시다 체하실라.
929 2014-10-26 18:42:54 1
매트릭스를 한국식 억양으로 [새창]
2014/10/26 18:09:39
오... 그동안 리스닝이 좀 늘었네. 토익 다시 봐볼까?
928 2014-10-26 18:34:01 1
10월 26일이 되면 생각나는 인물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새창]
2014/10/26 18:31:03
물론 주어는 없습니다.
927 2014-10-26 18:15:57 2
오늘은 의거일입니다 [새창]
2014/10/26 17:31:47

1979년 10월 26일

1919년 후 정확히 60년 한갑자 지난 후 의 사건.

그렇다구요....

의거(義擧)라고는 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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