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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9 04: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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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거쳐 미대에 오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때 학원에서 칭찬을 받고, 구에서 주최하는 대회에서 대상을 받아 미술에 재능이 있나? 라고 생각을 했죠.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선생님이 항상 이거 그려라, 저거 그려라. 이렇게 시켰어요. 어린 저는 정말 짜증나고 이해는 안갔지만 하라니까 했습니다. 중학생때도. 고등학생때도. 카피는 완벽하게 똑같이 할 수 있는 기계가 되었지만 서도, 직접 상상해서 그리는것은 중학생 수준이여서, 오히려 미술을 배우지않은 친구들의 자유로운 그림을 보고 질투도 많이 했어요. 오히려 입시미술을 할때는 억압되어 있지만 기술적인 테크닉을 수도없이 반복을 해서 그런지 머릿속에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싶다는 끊임없는 갈증이 있었죠. 그래서 그런지 입시미술이란 것을 하면서 계속 카피,카피하면서 속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틈만 나면 학원에 대한 욕을 했어요. 카피만 주구장창시킨다고. 하지만 힘없는 학생이 별 수 있나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으면, 대학을 가야한다니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교를 오게됐습니다. 제가 질투하던, 미술을 하지않지만 그림을 잘그리는 학생들은 미술진로를 가지않아서 오히려 제가 더 잘 그리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억압받는 것이 아무것도 없자 손과 머리는 자신이 해오던대로, 편한대로 카피만 습관적으로 할 수 있더라구요. 억울했습니다. 오히려 저처럼 말잘듣는 학생의 예상가능한 어디서 본듯한 그림보다는 톡톡튀는 제멋대로 인 학생들의 신선한 결과물이 더 주목받고, 칭찬받는 걸 보고 난 왜 여태까지 카피만 하고 살았나. 하고 분통이 터졌어요. 자신의 진로에 회의도 느껴지고, 내가 여태 해온 것은 무엇인가하고, 우울증도 왔어요. 그래도 차차 알겠더라구요. 나는 탄탄한 기반, 흔들리지 않는 '기본기'가 있다는 걸. 특이한 아이디어도 그런 기술이 있어야 '전문성'과 '간지'가 증명되요. 특이한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있어도 기술, 전문성, 미술이 기본이 되지않으면 의미만 그럴듯한 쓰레기, 일뿐이에요. 그림, 회화 쪽이라면 더더욱.
또, 전 원하는 방향이 게임쪽이여서 방학동안 실무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직접 배워본 경험도 있는데(그 중 한분은 아키에이지 작화를 맡으신 분이였습니다), 저는 그냥 멍했죠. 와 이분은 어떻게 이렇게 잘 그릴 수가 있나.. 정말 이렇게 난 그림을 그리는데 후에는 이런 분들과 어떻게 경쟁을 해야하나. 싶었습니다. 그분들은 대부분 30~40대이셨고 그런 제 열등감을 알아차리셨는지 안심시키려고 말해주시더라구요. 오히려 그 분께서는 제 나이대에는 저보다도 그림을 못 그렸다고. 처음에는 믿지않아서 그냥 예의상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정말로 20살, 졸업할 당시의 그림을 보니 놀랐습니다;; 정말 그림이 그분 말씀대로 저보다 못그렸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계속 그리다보니. 주변 사람에게 배우고, 알아가고, 그리게 되어서 이렇게 잘 그리게 된것이라는 것을 정말 깨달았죠.
후에 2학년이 되고 심도있는 전공수업을 들어가게 되고, 무언가를 생산하는 '상상력'을 요구하는 수업을 듣게 되면서, 캐릭터를 디자인해와라, 배경을 디자인해와라, 스토리를 써와라, 레퍼런스를 가져와, 이런 요구들을 거쳐가다보면 알게 돼요. 아무도, 무언가를 참고하지않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림을 무에서, 허공에서 팍 떠올라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림을 그리기 전에 참고자료를 찾고, 그 참고자료로 배경을 구성하고, 그것을 다시 배치해서 재조합해서 자신의 방식대로 그리는 방식이 '자기의 스타일' 이예요.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이 배경과 참고자료를 머릿속에서 가져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미술에서 실제감과 현실감, 설득력있는 그림을 그리려면 보고 묘사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입니다.
글쓴이는 그림을 자기 생각대로 그릴 창의력이 없는게 아니에요. 자신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창의적인 그림을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를 모를 뿐이라고 생각해요. 또, 칭찬의 부작용이라고 많이들 유명할텐데. 칭찬만 받고 자란 아이는 그 칭찬에 길들여져서 칭찬이 없다면 아무 노력을 하지않습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아무도 칭찬을 하지않는 다면 보상이 없기때문에 해야할 이유를 느끼지 못해버리기 때문이라고 해요. 글쓴이의 상황은 재능이 없다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림을 잘 그렸음에도 주변에서 칭찬을 해주지않기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생각하는 것인데, 무엇을 할때 칭찬을 받는것이 좋아서 하는 사람과, 그 자체로 좋아서 하는사람 중에서는 후자가 더 장기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오래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남이, 보는 눈이, 칭찬하는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내가' 그림그리는 것이 재밌고, 좋아서, 더 배우고싶어서 하는 거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재능'이란 것은 단 열매(보상)가 없어도, 쓰디쓴 상황을 거쳐가는 과정을 묵묵히 참고 하는 내성, 어떤 말에도 상황에도 남의 시선에도 평가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도 너무 좌절하지 말아요. 저도 초등학교 때까진 주변에서 천재다 잘그렸다 재능있다 소리만 듣다가 중학생되보니 ㅋㅋ너무 저보다 잘그리는 사람이 많아서 좌절했지만., 못그리는 거 알아도 당당하게, 나는 (못그려도) 내가 그린 그림이 좋아!(내가 그렸으니까)하며 그리다 보니 지금은 그 때의 사람들보다 내가 훌쩍 저만큼 멀리 가고 있다. 는 것이 느껴져요. 그 당시에는 자기애가 강해서 그래도 내가 잘낫어, 이런 느낌이었지만요. ㅋㅋ대학교에서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도 확실히 훌륭해. 하지만 내가 아이디어가 덜 기발한 것같아도, 나는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나온거야. 그러니까 나는 내 그림이 좋아. 라고 자신의 그림을 존중하면서 남의 그림도 인정 할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해요. 그래야 상처받지않고 오래오래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그림을 놓지않고 하는것이 제일 중요한데 그러다보면 남에게 부끄럽지않을 어느정도의 실력은 갖추게 됩니다 ㅎ(문제는 자신이부끄러워서그렇지) ㅎㅎ 좋은 그림 그리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