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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20: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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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쓰라고 하면, 쓸 수 있는 글이였다.
그래서 나는 기억에서 희미해져가는 일까지 끄집어 내 무조건 글을 썼다.
굳이 썼던 그 글들 사이에 내가 놓쳐버린 사금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 사금이 모여
거대한 금덩어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을 순간의 과제와 흥미로 인해 놓쳐버렸다.
그래서 나는 죽은 채 떠돌고 있다.
고요한 심해를 돌아다니다 언젠가 돌고래가 말을 건 적이 있다.
너는 왜 여기 왔냐고. 글쎄?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필사적으로 헤엄쳐 밖으로
나와야 했어. 그런데 이제는 말을 걸어줄 돌고래조차 안타까운 눈빛으로 제 갈길을 가.
내게 남은건 심해새우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지 내 곁을 왔다갔다 하는
오징어와 아귀뿐이야. 여기서 더 밑으로 내려가면?
바다에 가면 죽은 듯 하지만 살아있는 해파리들이 있다.
형형색색의 색을 가진 그 해파리들은 문득 사람들 눈에 띄어 신기하다는 반응과 함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지언정 그저 수많은 해파리 중 하나로 지나치고 말 뿐이다.
나는 그와 같은 존재다. 그래서 여전히 허리아프도록 글을 써대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평범하고 흔해빠진 와중에 색깔만은 확실히 다르지만 곧 잊어버릴
해파리와 같은 존재다.
금이 금인지도 모르고, 순간의, 몇개의, 아주 작은, 그런 것들에 집착해 망쳐버린
수많은 소재와 놓쳐버린 작품들을 떠올려 보니 그것은 어느새 벼랑 끝에 있는 나와 함께
조용히 속삭인다.
'그냥 떨어져 죽어. 제발. 제발. 제발!!! 니가 떨어지면 우리가 재미있어!!!'
언제고 화살이 내 등뒤를 겨눈다.
수많은 활이 화살이 그리고 시위를 당기는 사람들이 언제고 내가 나락으로 빠지기만을 바란다.
수많은, 죽어버린 이성을 유지하려던 끝의 자아들이 나에게 언제든 이 나락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이성적으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술기운에 빌려 이야기하는것도 한두번.
이제는 술기운에도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한다. 처음 한두번은 그들이 나에게 손짓해
언제고 머물다 가라고 하지만, 손님이 오래되면 짐이 된다. 객쩍은 사람이 되고 가지고 있던
친분마저 없애는 존재가 된다. 스스로 그렇게 가라앉는다.
중독성 깊은 잠깐의 인기와 몇 개의 댓글이 나를 나락으로 몰아넣었다고? 그사람들이 날 그렇게
판단한게 나쁜거라고? 아니야. 당신은 원래 그런 인간이야.
단지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 내가 특별한 척 하다 제 무덤을 판 것이다.
활시위를 겨누더라도 나는 괜찮다고 말하던 시절은 단지 겪어보지 않았기에 몰랐기에 내가 견딜 수
있다고 오만했기에 호언할 수 있었던 그런 일들.
향에 취해 독인지도 모르고 중독되어 오르던 계단 뒤를 바라보니 나는 너무 먼 곳을 향해 온 것 같다.
그만하고싶다. 오만도 멍청함도 남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나의 우울함도.
이제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나는 무엇에 취해 살아가야 하지?
그냥, 이제 모든것을 끝내고 싶은 밤이다.
매일같이 책게를 드나들며 썼던 글도, 중단편이라고 생각한답시고 썼던 글도
그렇게 미친듯이 들던 짐짝에 그것이 마치 내 한줄기 성실함이라는 것으로 가식의 이불을 덮었던 삶도.
이제 뭘.
해야.
할까.